[아츠앤컬쳐] 요즘 세계뉴스를 보면 떠들썩하게 스코틀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하겠다는 투표에 들어갔고 결과는 근소한 차이로 독립을 안 하는 쪽으로 결과가 나왔다. 잉글랜드는 아일랜드를 잃어봤기 때문에 결코 이번에는 안 된다는 각오로 캠페인에 임했고 반면 스코틀랜드는 북해 유전의 석유를 혼자 소유하면 경제적으로 충분히 독립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스코틀랜드에 가보면 억양이 다른 사투리라 그렇지 똑같이 영어를 쓰고 있고 돈은 그림이 좀 달라서 그렇지 잉글랜드 은행의 파운드와 공용으로 쓰고 있다. 필자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유학시절에 느낀 다른 점이라고는 억양의 차이뿐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눈으로 봐서 통일이 우리의 소원인데 그들은 왜 분리독립이 소원일까? 그것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쉽게 알 수 있다. 잉글랜드 지역까지 점령한 로마 군대조차 엄두도 못 내던 곳이 스코트족이 9세기경부터 왕국을 건설한 스코틀랜드였다. 후대에 세익스피어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지고 베르디의 오페라로 만들어져 더욱 유명세를 탄 11세기 스코틀랜드의 장수였던 ‘맥베스’가 주군인 ‘던컨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르는 스토리이다.

결국, 잉글랜드로부터 장수와 1만 명의 병사를 지원받은 던컨왕의 첫째 아들 말콤에 의해 종말을 맞이한다. 작품에서 보여진 권선징악적인 내용은 극적이나, 이렇게 11세기 중반부터 말콤왕을 지원한 대가로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에 대해 사실상 지배권을 갖게 되고 착취가 시작되었다. ‘브레이브 하트’라는 영화를 통해 잘 알려진 스토리로 1292년 존 1세가 스코틀랜드의 왕위에 오르자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는 아예 스코틀랜드를 소유하고자 침공을 감행, 존 1세를 포로로 잡아가고 잉글랜드의 학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에 대항하며 영화에서처럼 윌리엄 월리스가 전쟁을 주도해 나갔고 결국 잉글랜드의 차기 왕 에드워드 2세까지 이어진 오랜 전쟁을 두고 교황 요한 22세의 중재(1320)를 통해 정전 및 각각 주권국이 되었다. 이후 두 나라가 통합된 시점은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서거(1603) 후 대를 이을 왕세자가 없자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왕위계승 최우선 순위로 올라서면서 결국 잉글랜드에서 제임스 1세라는 타이틀로 왕위에 등극했다.

이때부터 섬나라 영국은 통일국가가 되었다. 그런데 왕이 된 제임스 1세의 어머니는, 자신의 사촌 간이었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에 의해 처형된 비운의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였다. 그러니까 어머니의 피 값으로 왕이 된 것이었다. 조선 시대 사도세자의 죽음의 대가로 아들 정조가 왕이 될 수 있었던 비슷한 스토리다.

메리 스튜어트의 스토리는 괴테의 절친이었던 독일 작가 쉴러에 의해 연극화(1800)되었고 도니젯띠가 오페라 ‘Maria Stuarda’라는 이탈리아식 이름으로 1835년 12월 30일 밀라노의 라 스칼라 무대에 올렸다. 실제로 한 번도 얼굴을 대면한 적이 없던 엘리자베스 여왕과 메리 스튜어트는 실러의 연극 속 그리고 오페라에서 만나게 된다. 이 오페라는 밀라노 공연에 앞서 나폴리에서 1834년 전혀 다른 Buondelmonte 이름으로, 다른 시대, 다른 장소의 배경으로 올려져 6번의 공연을 끝으로 사장되는데 이유는, 나폴리 왕의 무지막지한 검열을 통해 제대로 된 작품을 올릴 수 없었다는 것이다.

왕비가 메리 스튜어트의 직계 자손이었기 때문에 처형되는 직계 왕족 조상님을 무대에 올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메리 스튜어트 여왕이 엘리자베스 여왕 면전에 대고 ‘더러운 잡종ㄴ~’이라는 단어를 확 뱉어 버리는 장면이 나오니 더욱 허락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다음 해 올려졌던 ‘라 스칼라’ 공연에서도 ‘더러운 잡종ㄴ~’이라는 단어를 ‘더러운 여자’로 바꾸자고 한 정부, 극장 측의 제안에 메조소프라노 주연 성악가 Malibran은 단호히 거절했다. 결국, 이탈리아에서 공연이 더 이상 힘들어지자 영국 본토에서 공연을 계획 중 Malibran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한 나라의 왕이 어찌 올라가지도 않은 오페라의 내용을 알고 상연금지 시켰을까? 하는 당연한 궁금증이 드는데, 당대 최대의 스캔달 중 하나인 사건과 관계되어있었다. 오페라 리허설 도중 메리 스튜어트가 엘리자베스 여왕 면전에 던지는 대사 중 ‘더러운 잡종ㄴ~’이 있는데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지 엘리자베스 1세 역할을 맡은 소프라노가 그 대사를 듣고 갑자기 달려들어 주인공의 머리채를 부여잡고 얼굴에 펀치를 마구 날렸단다. 결국, 기절한 주인공은 들것에 실려 나갔다는 쇼킹한 사건으로 오페라 대사의 부적절성이 대두된 것이었다.

이후 극장이나 정부의 비협조로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고 결국 사소한 요소가 이 오페라를 사장되게 만들었다. 오페라 주인공 Malibran이 원했던 런던공연은 만고 끝에 130년이 지나서 1966년 3월 1일 올려졌다. 참 많이도 돌아왔다. 조금만 참지….

도니젯띠가 엄청난 검열과 개정 과정에 대해 화나서 그랬단다. ‘그렇게 해보라고 해, 지들은 100년 살 줄 아나 보지?’ 근데 정말 100년 훌쩍 넘어 130년 걸렸다. 극장에 있던 사람들은 아무도 없고 다행히 작품은 살아남았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작품을 공연할 수 없게 된 도니젯띠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가끔 욱해도 참을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일화다. 

신금호
경기도 교육연수원 발전 전문위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서울대 음악대학 /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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