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레이스
[아츠앤컬쳐] 아시아 남부 히말라야 산맥을 짊어지고 있는 지구상 마지막 샹그릴라Shangri-la. 국민 대부분이 라마교를 믿는 나라. 지구상 몇 안 되는 왕을 섬기는 나라. 세금이 없고 도로에 신호등이 없는 나라. 국민을 우선으로 생각하기에 우리에게는 지구상 행복지수가 1위인 국가로 알려진 나라, 부탄 Bhutan!
2013년 6월 초 이곳에 전 세계 20개국에서 38명의 철각들이 모였다. 선수들은 자신이 먹을 식량과 장비를 짊어지고 부탄 서부 산악지역의 요새와 같은 Punakha Dzong(*Dzong : 수도원)을 출발해서 5박 6일 동안 200km의 산악지역을 달려 Paro 계곡의 해발 3,100m 절벽에 매달려 있는 Taktshang Goemba Dzong(*The Tiger’s Nest monastery)을 향해 달렸다.
나도 방콕과 부탄 팀푸 Thimphu를 거쳐 푸나카 Punakha로 들어가 이 대열에 합류했다. 몬순 영향으로 부탄은 벌써 우기가 시작됐다. 기상 악화로 태국 방콕에서 한나절 이상 비행기가 연착됐지만 내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내가 만난 부탄은 비가 많이 내리고 나무가 무척 많았다. 그리고 수천 년의 전통문화와 생활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한 나라였다. 하지만 마리화나와 들개들의 천국이기도 했다.
6월 2일 아침, 푸나카 수도원 앞마당에서 500여 명의 현지 고등학생들과 시장, 스님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레이스 첫날을 맞았다.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 종전까지 웃음 띤 선수들은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성난 야수처럼 전방을 향해 뛰쳐나갔다. 6일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는 빗속을 뚫으며 32km-30km-29km-37km-56km-16km의 레이스가 힘겹게 이어졌다.
위기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레이스 첫째 날, CP2를 통과하기도 전에 연거푸 세 차례의 근육 경련이 일어났다. 원주민 마을의 논두렁을 지날 때 종아리에서 시작된 쥐는 순식간에 허벅지와 복부까지 이어졌다.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중심을 잃고 개울에 몸을 처박았다. 피눈물 나는 고통이 온몸을 휘감았다. 소리를 지르며 절규했지만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뒤틀린 사지를 버둥거리며 가까스로 흙벽에 기대앉았다. 이빨을 악물었지만 흙탕물로 뒤범벅이 된 채 꿈쩍할 수 없었다. 이런 고통을겪으며 죽음을 맞이하는 건 불행한 일이었다.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었던 절체절명의 순간,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남루한 원주민이 소리 없이 다가왔다. 그는 검은 피부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나의 몸 상태를 살피는 듯 했다. 그러더니 다정하게 내 손을 잡아준 후 엉켜버린 전신의 근육을 사정없이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생살이 찢어지는 고통이 따랐지만 그의 헌신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사십 분 넘게 계속된 마사지 덕택에 틀어진 근육이 점차 제 자리를 잡았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잠시 후 그의 손에 이끌려 다시 일어섰다.
호랑이 공격을 받아 소가 흘린 핏자국을 따라 수백 미터의 질컥한 산비탈을 기어올랐다. 나뭇가지에 스치고 흙탕물이 첨벙거릴 때마다 팔뚝과 종아리에 달라붙은 거머리들이 사정없이 살 속으로 파고들었다. 물어뜯긴 온몸이 붉게 피로 물들었다. 구름 사이로 내비친 햇볕은 젖은 피부를 순식간에 익혀 버릴 기세로 이글거렸다. 히말라야는 그리 쉽게 자신의 영역을 허락하지 않았다.
주로는 빗줄기와 물안개를 가르며 험준한 협곡과 능선을 넘어 폐허가 된 Drukyal Dzong으로 이어졌다. 이제까지 달려온 레이스를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에너지는 방전됐지만 두 다리는 여전히 앞을 향해 발 디딤이 계속됐다. 휘청거리다 고꾸라지고 발목을 접질리며 레이스가 계속됐다. 시시각각 포악하게 달려드는 개떼들의 공격을 피해가며 용케도 6일간의 레이스는 종지부로 치달았다.
레이스 마지막 날, 물안개가 짙게 깔린 부탄의 산야는 여전히 궂었다. 이젠 주로에 선 선수들의 몸짓도 심하게 흐느적거렸지만 The Tiger’s Nest를 넘으려는 그들의 눈빛만은 유난히 번들거렸다. Taktshang Goemba Dzong 건너편 Paro 계곡 앞에 다다르자 숨이 막힐 듯한 대자연의 장엄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오르고 또 올랐다.
지구상 가장 아름다운 신비의 수도원, 결승선이 있는 호랑이 둥지 The Tiger’s Nest monastery가 손에 잡힐 듯 시야에 들어왔다. 격한 박동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경이로움과 전율이 먼저 온몸을 휘감았다. ‘이제 내 몸에 남은 한 줌의 에너지까지 모두 태워야겠다.’ 수도원 앞마당으로 다가서는 마지막 수백 개의 계단 앞에 선 나는 가쁜 호흡을 몰아쉬며 배낭 속 대형 태극기를 펼쳐 들었다.
사막과 오지를 달리다 보면 원주민들과 눈인사로 만나 손을 흔들며 헤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비록 다시 볼 기약은 없지만 그들에겐 한결같이 환한 웃음이 가득하다. 때로는 짧은 만남이 소중한 인연이 되어 긴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사막과 오지나 우리의 일상의 모습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이제는 낯선 사람에게 더 친절해야겠다. 어쩌면 그는 변장한 천사일지도 모르니까…
부탄레이스 http://www.global-limits.com
김경수
서울 강북구청(팀장)에서 근무하면서 10년 넘게 여행을 핑계 삼아 지구상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달리고 있다. 제31회 ‘청백봉사상’과 2013 ‘올해의 닮고 싶은 인물상’을 수상했다. 강연(명강사 제128호, 한국강사협회 선정)과 집필 <미쳤다는 말을 들어야 후회 없는 인생이다>, 방송활동도 활발하다. 선거연수원 초빙교수도 겸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