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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츠앤컬쳐] ‘물의 도시’라고 불리는 베니스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제70회 베니스국제영화제가 8월 28일부터 9월 7일까지 개최된다. 베니스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인 알베르토 바르베라는 ‘역사는 달리고, 영화는 걷고, 영화제는 제자리걸음’이라는 말을 일축하고, 폴 슈레이더가 언급한 “세상은 변하고 있다. 영화제는 이전보다 영향력이 강하기도 하고 약하기도 하다. 영향력이 강한 것은 박물관이나 갤러리의 새로운 큐레이터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고, 영향력이 약한 것은 영화제에 참가하는 새로운 독점권이 직접 배급 경로를 약하게 했기 때문이다.”라는 말로 올해로 70회를 맞이한 베니스국제영화제를 소개하고 있다.

바르베라는 크고 작은 영화제들이 가진 문제점에 대한 해답을 내놓지는 못했지만, 영화제의 필요성과 변해가는 대중과 상황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베니스국제영화제의 기원
1932년 8월 세계 최초로 베니스에서 ‘국제예술영화제’가 개최됐다. 첫해에는 작품들끼리 경쟁하는 영화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시상식이 없었으며, 1938년부터 프란체스코 파시네티가 영화제를 경쟁작 형식으로 기획했다. 루치아노 테오는 영화제를 진취적으로 추진했으며, 지오반니 볼피는 리도 해변에서 영화를 상영할 것을 권장했다고 한다.

베니스국제영화제는 당시 이탈리아 정부가 경제부흥정책의 하나로 문화사업에 개입하면서 시작됐지만, 영화제에 정치적인 성향의 개입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파시즘의 절정을 이루는 시기에 영화에 대한 본질과 양식을 추구한다는 것은 일종의 모순이고 모험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이탈리아의 정치 전략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탈리아 정부가 영화제를 지원한 이유 중 하나는 영화가 그들의 이데올로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정부는 사람들이 정치적 성향이 없는 오락영화에 길들여지면 이념적인 문제에 무감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1938년에 영화제의 메인 행사장인 팔라조 델 치네마(Palazzo del Cinema)를 짓게 됨으로 이탈리아 정부의 직접적인 간섭은 시작됐다. 정부의 주목적은 영화제가 정치선전용으로 아주 훌륭한 수단이라 여기고, 행사의 운영을 원활하게 하여 조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투자로 개최된 베니스영화제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됐고, 이후 베니스비엔날레로 그 열기가 이어져 이탈리아가 현대적이고 세계적인 국가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시도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등에 업고 영화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제로 성장한 토론토영화제의 등장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가 선두주자로서의 우위를 잠식당하게 되었다. 베니스국제영화제는 1998년에 40대였던 알베르토 바르베라를 집행위원장으로 선임하게 되면서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 가동에 들어갔다.

바르베라는 “영화제가 지속적으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변화와 개혁’을 통해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국영화 보호주의 같은 안이한 태도가 영화제를 망친다는 바르베라의 기본적인 시각을 반영한 후부터는 수상작에 이탈리아 영화 선정이 후하지 않았다. 바르베라는 “우리는 그동안 영화제란 감독을 위한 축제이지 영화 상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식으로 현실을 외면했다. 이제는 영화산업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영화제는 생존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1999년에는 ‘인더스트리 오피스’를 설치해 관객뿐 아니라 영화마켓을 위한 편의도 제공했다.

칸영화제가 필름마켓을 병행해 상업적인 면에 무게를 뒀다면, 베를린영화제는 포럼을 통해 학술적인 면에 치중하고 있다. 베니스국제영화제는 이 두 영화제 사이에서 중도노선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2001년부터 변화를 모색하는데, 가장 큰 변화는 경쟁부문을 둘로 나눈 것이다. 중견 감독들을 위한 ‘베니스59’와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는 신인감독들을 위한 ‘현재의 영화’이다.

 

한국과 인연이 많은 베니스국제영화제와 알베르토 바르베라 집행위원장
베니스국제영화제는 프랑스의 칸영화제, 독일의 베를린 영화제에 이어 가장 유서가 깊은 영화제이다. 베니스국제영화제는 이탈리아 영화의 전통인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면서 독특한 표현과 주제를 담은 제3세계 영화에 주목한다.

아시아 영화에 대한 관심도 꽤 높은 편이다. 1951년 일본의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도 <라쇼몽>으로 수상하면서 세계의 거장 감독 대열에 오를 수 있었고, <비정성시>의 허우 샤오시엔 감독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임권택 감독을 비롯해 장선우, 김기덕, 이창동, 임상수, 박찬욱 감독 또한 베니스국제영화제를 통해 세계 영화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2012년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황금사자상을 받았다는 소식은 한국영화의 비범함을 전 세계에 알려줬다. 김기덕 감독은 2000년 <섬>으로 공식경쟁부문 진출을 시작으로 <수취인불명>도 초대받았으며, <빈집>은 2004년 은사자상인 감독상을 받았다. 이처럼 베니스국제영화제는 특별히 한국영화와 인연이 많은데, 1987년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가 최초로 경쟁부문에 진출해 배우 강수연이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에 앞서 1981년에는 이두용 감독의 <피막>이 비경쟁부문에서 특별상을 받았으며, 1985년과 1986년에 <자녀 목>과 <태>가 비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알베르토 바르베라가 집행위원장으로 있는 기간인 1999년에는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이 공식경쟁부문에 진출하였고, 전수일 감독의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 임필성 감독의 <베이비>가 새로운 분야부문에, 안영선 감독의 <냉장고>가 단편경쟁부문에 진출하여 4편의 한국영화가 상영되기도 했다. 2002년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 2003년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 2005년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가 공식경쟁작에 초청되었다.

이후 7년 만인 2012년에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초청됐고, 이때가 알베르토 바르베라 집행위원장이 베니스국제영화제로 다시 돌아온 때였다. 그리고 올해 70회에도 김기덕 감독의 <뫼비우스>가 비경쟁작으로 초청받았다.

제7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8월 28일 밤, 리도 섬의 팔라조 델 치네마에서 톱 모델이자 여배우인 에바 리코보노가 개막식을 진행하며, 개막작은 우리에게 <위대한 유산>과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로 잘 알려진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이다. 공로상은 윌리엄 프리트킨 감독이 수상했다. 집행위원장 바르베라는 선정된 영화들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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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비경쟁, 오리존티(Orizzonti), 베니스 고전 4개 부문은 층화되고 다양화된 현대영화계의 현황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경쟁작 부문에 두 편의 다큐멘터리는 현대영화계에서 픽션과 다큐멘터리 영화가 중복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그 과정을 반영하는 승인된 정체성의 신호이다.”

작년부터 시작된 필름마켓은 올해부터 더욱 개선된 서비스로 진행된다고 한다. 그리고 가상의 웹 관객들에게 리도 섬 공식상영과 동시에 오리존티부문 영화들을 볼 기회를 제공하는 웹극장인 ‘살라웹(Sala Web)’이 있다. 오리존티부문에는 장편영화와 동일한 미학적 가치를 부여하는 취지로 단편영화도 같이 프로그래밍했다. 복원영화에 대한 다큐멘터리들은 과거영화를 다시 유포시켜 젊은 관객들의 지식을 강화하고 신진감독들의 소명을 장려하는 목적으로 상영된다. 또한, 부산국제영화제도 공동 후원하게 된 영화제작후원프로그램인 ‘비엔날레 컬리지 시네마(Biennale College Cinema)’로 3편의 작품이 상영되며, 올해 선정되는 12명의 감독들도 영화제 중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를 중심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은 최고의 영화에 수여되는 황금사자상, 감독상인 은사자상, 남우주연상에 수여되는 볼피상, 신인배우상인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상, 우수 각본상 그리고 새로 신설된 심사위원상을 선정하게 된다. 폴 슈레이더 감독을 중심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은 오리존티부문에서 우수상, 감독상, 심사위원특별상, 단편우수상, 그리고 새롭게 신설된 혁신콘텐츠특별상을 선정한다.

오랜 전통을 바탕으로 70회를 맞게 되는 베니스국제영화제는 영화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가려는 시도와 노력이 기대되는 행사가 되리라 본다. 70회를 맞게 되는 영화제를 기념하기 위해 전 세계 영화감독 70명의 축하 영상도 웹사이트에서 공개한다. 2주간의 영화축제는 이탈리아 베니스의 늦여름을 장식할것이며, 시공간을 넘어서는 영화제로 기대해 본다.

글 | 정란기
이탈리아 문화와 영화를 사랑하는 단체인 이탈치네마(italcinema.com), 뉴이탈리아 영화예술제(www.ifaf.co.kr)를 주최하는 등 이탈리아와 한국과의 문화교류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 엮은 책들과 역서로 <영화로 떠나는 시네마천국_이탈리아>, <난니모레티의 영화>, <비스콘티의 센소_문학의 재생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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