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와인을 마시기 시작한 지 어언 12년, 와인에 미쳐 산 지가 어언 6년째가되어가는군요. 사람이 무언가에 미치면 온 세상이 모두 그걸로만 보인다지요. 저 역시 와인의 세계에 빠지고 난 뒤로는 생활의 대부분이 와인으로 채워졌습니다. 제 주변을 둘러싼 대부분의 지인들과 친구들도 모두 와인으로 맺어진 사이가 되었고, 아침을 제외한 모든 밥상에 와인 한 잔이 오르고, 풍광 좋은 곳을 보면 그곳에서 와인 한잔이 하고 싶어집니다.
와인을 좋아하는 이라면 모두들 다 고개를 끄덕이시겠지요. 그래서 와인을 좋아하는 화가는 와인을 화폭에 담고 싶어지고, 와인에 관한 철학을 그림에 담고 싶어지게 되는 모양입니다.
와인에 미쳐 와인을 그리게 된 한 화가가 있습니다. 국내외에서 일명 ‘와인작가’로 알려져 있는 유용상 작가가 바로 그 주인공인데요. 와인잔을 바로 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느낄 정도로 생생하게 와인을 묘사한 그림들로 인기가 급상승 중인 작가입니다. 13회의 개인전에 이어 수많은 단체전에서 그의 작품을 선보여온 유용상 작가는 ‘와인잔에 담은 현대인의 철학’을 주제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및 삼성반도체, 헝가리대사관, 포르투갈대사관 등 이미 그의 작품은 많은 대사관과 기업체에 소장되어 있지요. 특히 작년에는 독일 전시에서 현지 언론이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와인과 예술을 접목시켜 그리는 작가’라는 호평과 함께 성공적으로 전시를 마치면서 글로벌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은 유망한 작가이지요.
작년 말에는 독일 게오르그 슈티프퉁 와이너리에 초대받아 개인 초대전이 열렸습니다. 아시아적 비움의 철학을 담은 그의 그림에 심취한 독일 와이너리 측에서 그의 작품 2점을 영구소장하기로 하면서 와이너리 오너는 그가 직접 만든 와인을 그에게 선물했습니다. 잘 빚어진 독일의 피노 누아 품종으로 만든 그 와인을 맛보았을 때 그는 잊을 수 없는 큰 감동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 이후 그는 더욱 와인을 표현하는데 열정을 바치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그의 작품은 마치 건드리면 만져질 것 같고 깨질 것만 같은 와인잔이나 와인병을 묘사하는 그림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극사실주의 작가로 분류됩니다. 그러나 단지 사물을 보이는 그대로 똑같이 재현해내는데 그치지 않고 사물들이 마주친 상황을 특징적으로 포착하여 이 부분을 리얼하게 그려냄으로써 사물로 대치된 인간 사회의 단면들을 적나라한 방식으로 들춰내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와인잔을 통해 그는 흔들리는 현대인의 마음과 복잡다단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불안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또한, 비어있는 와인잔들 사이에 채워진 하나의 잔을 통해 선택되고 싶은 사랑에 대한 갈망이나 수많은 군중들 속에서 인정받고 싶은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에게 와인은 현대인의 감각이나 욕망을 가장 잘 반영하고 이끌어낼 수 있는 음료이며, 그가 표현하는 와인잔 속에는 현대인의 순간적이면서도 영원할 것 같은 이중적인 감각이 함축되어있습니다. 그림 속의 와인잔은 흔들려 보이지만 동시에 정지된 순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최근의 작업에서는 와이너리의 저장고 모습이나 유명한 고급 와이너리의 레이블이 있는 와인병들을 모아서 그려내기도 하고, 와인잔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작은 와인병을 등장시키기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외형의 크기나 상표처럼 외모나 배경에 의해 신분이나 계급이 나누어지는 현대 사회의 양상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렇게 와인과 와인글라스를 통해 현대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다양하게 담아내는 그의 작업은 와인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소유하고 싶은 충동을 강렬하게 일으킵니다. 그가 와인을 사랑하는 만큼 전시장에서도 항상 와인 파티가 벌어지곤 한다는데요. 와인병과 와인잔들로 가득 채워진 그의 그림을 보면서 와인 한잔을 기울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요. 잘 만든 피노 누아 한 병을 들고 가 그와 함께 와인잔에 투영된 우리 자신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해 보아야겠습니다.
오지현
하트와인 대표, 와인플래너 1호, 한국여성벤처협회 이사, 「와인스토리 365」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