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가 사랑한 이탈리아 영화계의 이단아
[아츠앤컬쳐] 이탈리아에서는 네오리얼리즘의 사회적, 미학적 중요성으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등의 감독들이 과거의 네오리얼리즘 영화에 애착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젊은 감독들을 중심으로 1970년대 이후 위기에 처한 이탈리아 영화산업을 구하고자, 새로운 영화에 대해 탐구하고자 했다. 이러한 새로운 움직임을 주도한 이탈리아 신세대 영화감독들 가운데 난니 모레티는 과거 이탈리아 영화에 대해 반항에 가까운 영화를 제작하였다.
1인 제작 시스템이라는 이탈리아 영화계에서 특징적인 모델 감독이 바로 난니 모레티이다. 그는 시나리오, 감독, 배우뿐 아니라 제작과 배급까지 하면서 기존의 상업영화와 이탈리아 영화계에 대항하는 작품들을 내놓고 있다. 유럽과 이탈리아에서 호평을 받은 <나는 자급자족한다>를 시작으로 칸영화제에서 <에체 봄보> 호평을 받고, 베니스영화제에서는 <좋은꿈>, <비앙카>로 심사위원 대상, 베를린 영화제에서는 <미사는 끝났다>, <빨간 비둘기>로 은곰상, 칸영화제에서는 <나의 즐거운 일기>, <4월>로 감독상과 <아들의 방>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최근작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로 칸영화제에 초청되었으며, 2012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장을 하기도 했다.
모레티와 그의 영화들을 장르상으로는 분류하기 어렵지만, 내용상으로는 현대 이탈리아 사회, 정치적 생활의 복잡한 전통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그가 1인 제작사를 설립하는 등 기존 체제와 다른 방식을 선택한 것은 유럽영화시장에서 자신과 자신의 예술을 위해 독립성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독립성으로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젊은 감독들의 영화 제작을 비롯해 영화산업을 지원하게 된 것이다.
모레티는 정치영화를 추구하고, 영화의 중심에서 자서전으로 활용된 페르소나를 만들어냄으로써 공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여기서 ‘자서전적 효과’는 관객이 감독의 삶을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모레티의 영화 제작에 뚜렷하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모레티의 영화들은 반복되는 여러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특히 이탈리아 영화에 대한 메타 영화적 고찰과 감독이 직접 영화에 출연하여 주인공인 미켈레 아피첼라라는 분신을 창조했다. 이러한 분신은 모레티 자신의 개인적 문제와 지적, 예술적 관심사에 대한 초점, 언어 사용이 매우 중요한 수사적, 정치적인 용어에 대한 비평, 이탈리아 정치가인 베를루스코니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불러일으킨 입장으로서 이탈리아의 진정한 좌파정부를 지지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모레티는 대중 매체가 퍼뜨리는 클리셰, 평범성, 균질화된 취향을 싫어하며, 이러한 생각들을 상호 관련시켜 유모 감각 및 자기 풍자를 통해 제시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한다.
최근 작품인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는 이탈리아에서 부활절 직전 개봉된 영화로 ‘누구나 우울증에 걸릴 수 있는데, 과연 교황은 안 걸릴까?’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이 영화는 바티칸 추기경들이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모인 콘클라베(가톨릭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단의 선거회)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 회의를 통해 선출된 후보가 무거운 책임감에 불안 증상을 보이며, 성베드로 광장에 모인 군중 앞에 나서기를 거부하는 당혹스러운 일이 발생한다. 바티칸은 정신분석가(난니 모레티 연기)에게 교황이 업무를 처리하도록 도와줄 것을 의뢰하고, 교황은 로마에서 도주 중에 있으며 신성한 업무를 피해 일반 시민으로 위장한다는 내용이다.
모레티는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직무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 약한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되, 코미디 형식으로 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탈리아에서는 교황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이유로 코미디 형식을 통해 이 주제에 접근했을 것이다. 모레티는 교황이라는 인물을 통해 교회와 대중 간의 거리를 강조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교황으로 분한 배우 미켈레 피콜리는 처음에 정신분석학적 도움을 구하지만 결국에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홀로 로마를 걷는다.
이 영화에서도 다른 영화들처럼 개인적 문제를 보다 큰 정치적 동기와 혼합시켜 영화에 자전적 요소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레티가 심리 치료사라는 인물과 교황의 불안과 무능력에 자신이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고 말한 것이 그러하다.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는 반어적 코미디로,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절대 감정에 의존하지 않고 비극적인 개인적 상황을 극복하고자 분투하는 한 사람의 인간적 이야기이다. 또한, 자신의 발언권을 찾고 자아를 찾아가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나의 즐거운 일기>는 현대 이탈리아와 모레티의 애증관계가 더 확실해진다. 영화 일기를 구성하는 세 개의 에피소드인 ‘베스파’, ‘섬’, ‘의사’를 주인공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현대 이탈리아의 도덕적, 사회적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이 에피소드들은 각각 허풍, 순응,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고, 그리고 그릇된 의사소통 수단들을 사용하는 것들에 대하여 경멸하는 모레티를 반영하고 있다. 이 영화의 예술적, 상업적인 성공은 다른 이탈리아 감독들에게 본보기를 제공했다.
할리우드 영화의 스토리텔링 형식과 경쟁하기 위해 컴퓨터 특수효과를 위해 많은 돈을 투자하지 않고도 훌륭한 아이디어와 대본이 있으면 뛰어난 예술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것이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아들의 방>은 <나의 즐거운 일기>에서 환기시킨 삶과 죽음이라는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사고로 아들을 잃은 조반니라는 정신분석가를 감동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일 때문에 아들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서 자신뿐 아니라 가족의 삶이 망가져 간다.
영화의 결말은 희망의 빛을 보이는데, 모레티는 건강의 가족이 세상의 모든 불행의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여전히 행복의 요새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난니 모레티가 말하는 다음은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감독이 아니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그것을 영화로 만드는 사람일 뿐이다.”
글 | 정란기
이탈리아 문화와 영화를 사랑하는 단체인 이탈치네마(italcinema.com), 뉴이탈리아 영화예술제(www.ifaf.co.kr)를 주최하는 등 이탈리아와 한국과의 문화교류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 엮은 책들과 역서로 <영화로 떠나는 시네마천국_이탈리아>, <난니모레티의 영화>, <비스콘티의 센소_문학의 재생산>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