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짧았던 구정 연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관한 ‘미국 미술 300년, Art Across America’ 기획특별전을 관람하였습니다. 5월 19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미국미술의 역사적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첫 대규모 전시입니다. 18세기 초상화부터 20세기 현대 세계 미술계를 주도해온 작가들의 작품까지 전시되어, 작품 수는 기대에 비해 다소 적은듯했지만 미국미술의 흐름을 한 번에 짚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작년 말 무통의 가장 최근 빈티지인 2010년 레이블이 공개되었습니다. 이번 빈티지의 레이블은 전위적 경향을 띤 미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로 알려진 제프 쿤스(Jeff Koons)가 제작하여 화제가 되었지요.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5대 특급 와인’ 중 하나인 샤또 무통 로칠드는 와인레이블에 미술의 영역을 부여하여 일약 유명해진 최초의 와이너리입니다.

지난 1947년 장 꼭또의 그림을 시작으로 유명작가들의 작품으로 와인라벨을 제작하여 작황이 좋지 않았던 해의 와인들조차도 품귀현상을 빚게 만들었지요. 지금까지 피카소, 달리, 샤갈, 브라크, 칸딘스키, 미로, 앤디 워홀, 베이컨, 프로이드 등 전 세계의 많은 작가들이 개런티 한 푼 받지 않고 그 대신 무통의 와인 5박스를 선물 받는 것만으로 기꺼이 무통의 라벨제작에 참여해왔지요.

제프 쿤스는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의 풍선 꽃, 풍선 강아지 등으로 현존하는 가장 중요한 아티스트 중 한 명이자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을 생산하는 예술가이기도 합니다. 무통의 라벨을 제작했던 많은 작가들이 화제가 되었지만 이번 무통의 레이블이 더욱 화제가 되었던 것은 바로 뉴욕태생의 스타 작가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스캔들과 수식어들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포르노배우이자 이탈리아의 국회의원이었던 일로나 스톨러(일명 치치올리나)와의 결혼, 또한 부인과의 성행위 장면을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전시하여 대중의 비난을 한몸에 받았지요.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대형 강아지 조각으로 180도 다른 작품의 세계를 만들어내어 다시 일약 스타덤에 오르는 등 끊임 없는 가십과 비난 속에서도 독특한 자신만의 작품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을 양산하는 스타예술가가 되었습니다.

키치와 ‘데뻬이즈멍(dépaysement: 낯설게 하기)’를 추구함으로써 낯설고 생경한 연출을 통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지고 있는 관념을 바꾸어버리는 제프 쿤스의 작품세계는 언뜻 보면 샤또 무통 로칠드 레이블을 제작하기엔 너무 거리가 먼 작가가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샤또 무통 로칠드가 20세기 초 오크통째 판매되었던 와인시장의 관례를 깨고 직접 와이너리에서 병입하고 ‘이 와인은 샤또에서 병입했다’는 문구를 써넣어 와인시장의 혁신을 일구어낸 점, 프랑스만을 고집하지 않고 전 세계의 좋은 포도밭을 발굴하여 ‘오퍼스 원’과 같은 또 다른 수작을 만들어낸 점 등 샤또 무통로칠드 와이너리가 가지고 있는 모험과 실험정신 그리고 도전정신은 제프 쿤스가 가지고 있는 정신세계와 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무통 제작에 참여한 제프 쿤스는 이탈리아 폼페이의 프레스코 벽화 중 ‘비너스의 탄생’에 바탕을 깔고 그 위에 가는 선으로 돛단배와 태양 등을 그려넣은 라벨을 디자인했습니다. 파격적인 작품을 양산해온 제프 쿤스의 그동안의 스타일을 감안한다면 이번 무통의 레이블은 아주 점잖고 다소 전통적이기까지 한 느낌의 덜 파격적인(?)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샤또 무통 로칠드의 오랜 전통과 명성에 미술계의 악동인 제프 쿤스조차도 경의를 표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매년 당대 최고의 화가에게 레이블 디자인을 맡겨 와인레이블을 수집하는 수집가들을 양산해내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와인의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샤또 무통 로칠드는 때로는 와인마니아들에게 와인의 퀄리티에 비해 지나치게 가격이 비싸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재료비로 작품의 가치를 따질 수 없듯 와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쨌든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고 생산되는 양에 비해 원하는 사람이 많으면 가격이 올라가기 마련입니다. 앞으로도 매년 무통의 레이블디자인은 세간의 이슈가 될 것이고 와인인구가 늘어날수록 무통에 대한 관심도 더 높아질 테니
무통의 가격이 보다 저렴해지길 기대하는 건 부질없는 바람이 아닐까 싶네요.

오지현
하트와인 대표, 와인플래너 1호, 한국여성벤처협회 이사, 「와인스토리 365」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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