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양대 교향악단에 KBS교향악단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있다. 그런만큼 이 두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의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이번에 핀란드 출신의 지휘자 피에타리 잉키넨(41)이 제9대 KBS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선임되어 2022년 1월 1일부터 2024년 12월 31일까지 3년간 KBS교향악단을 맡게 되었다.
피에타리 잉키넨은 핀란드 헬싱키 시벨리우스 아카데미에서 지휘를 전공했고 현재 도이치방송교향악단과 재팬필하모닉의 수석지휘자로 활동 중이다. KBS교향악단은 여러 명의 지휘자 후보를 검토했는데, 샌안토니오심포니 음악감독 세바스티안 랑 레싱(54), 스페인의 테네리페심포니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 안토니오 멘데스(37), 네덜란드라디오필 명예수석 얍 판 츠베덴(60), 이스탄불필하모닉 사샤 괴첼(51), 정명훈(68) 등이 거론되었다고 한다.
국내 양대 교향악단 중 다른 하나인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는 핀란드 출신의 오스모 벤스케가 2019년 5월부터 활동 중이다. 벤스케는 클라리넷 연주자 출신이고, 잉키넨은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인구 554만 명의 북유럽 작은 나라 핀란드 출신 음악가 두 명이 인구 5,178만 명의 대한민국 음악계를 호령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처럼 핀란드 지휘자들을 한국 대표 지휘자로 갖게 된 것일까.
우리나라가 음악적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 절대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아마도 벤스케보다 클라리넷을 훨씬 잘 부는, 잉키넨보다 바이올린을 훨씬 잘 연주하는 연주가들은 꽤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 연주자들이 국제 저명 콩쿠르에서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1등 상을 타오는 것은 웬만해서는 큰 뉴스거리도 되지 못할 정도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세계적 연주자들은 많은데 왜 세계적 지휘자는 적을까.
일단 세계적 솔리스트가 되는 것에 비해 세계적 지휘자가 되는 것이 훨씬 힘들다. 음악 연주회에서 지휘자는 가장 편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이올린, 첼로, 더블베이스, 트럼펫, 호른, 트롬본 등의 연주자들은 동종의 악기 연주자들을 의식하며 나오는 순간, 끝나는 순간, 음의 크기, 악상 등을 맞추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초긴장 상태이다. 플루트, 클라리넷, 오보에 등 연주자들은 심포니에서 합주는 물론 독주를 맡는 경우도 많아 긴장 강도와 연주 피로도가 극심하다. 팀파니는 말러나 특별한 작곡가 외에 두 명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에 사실상 독주자나 다름없다.
지휘자가 반드시 암보 연주를 해야 한다는 원칙은 없다. 베를린필의 새 음악감독인 키릴 페트렌코도 대부분 악보를 보고 연주한다. 우리나라 KBS교향악단 음악감독이 된 피에타리 잉키넨도 대부분 악보를 본다. 개인적으로는 악보를 보고 지휘하는 연주자의 음악회는 절대 티켓을 사서 가지 않는데, 지휘자가 악보를 넘기는 순간이나 동작들이 음악 감상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바렌보임, 두다멜, 카라얀, 아바도, 래틀, 정명훈 등 세계적 지휘자들은 모두 암보로 지휘했거나 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 크고 작은 도시들의 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중에도 암보로 하는 지휘자들이 늘고 있어 반갑다. 지휘자에게 암보가 필수는 아니지만 암보를 하는 과정에서 음악의 구조가 더 면밀히 분석되어 명쾌해지기 때문에 음악에 보다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암보 이외에도 지휘자에게는 조직 장악력이 필수다. 베르디, 푸치니 오페라나 가사가 있는 베토벤, 말러 교향곡 연주를 위해서는 독일어, 이탈리아어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이다. 더불어 베르디, 푸치니, 바그너의 문학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접근도 필요하다. 음악계, 음악팬들과의 원만한 소통 등도 지휘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첼리스트 장한나와 같이 세계적 콩쿨을 휩쓸고 있는 우리 젊은 연주자들이 훌륭한 지휘자로 성장해가며 언젠가 세계적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로 취임했다는 소식이 속속 들려오길 고대한다.
글 | 강일모
경영학 박사, 에코 에너지 대표, 국제예술대학교 총장 역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