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否定)에서 심리학까지의 이야기
[아츠앤컬쳐] 서양 역사에서 검은색은 다른 색과 마찬가지로 수 세기에 걸쳐 색으로 간주되어왔다. 근대 초기, 인쇄술의 발명과 조판술 및 개신교의 확산으로 이 색은 그 반대인 흰색과 동승하여 매우 특별한 지위에 올랐다. 흰색과 항상 관련성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중세 말에서 17세기 사이 검은색은 점차 색채감을 잃어갔다.
이러한 사실은 1665~1666년경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이 발견한 스펙트럼과 연관이 있었으며, 그가 전면에 내세운 새로운 색 배열에 의해 검은색과 흰색은 자리를 잃었다. 색채의 혁명이라 할 수 있는 이 발견은 15 세기말 처음으로 검은색이 진정한 색이 아니라고 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주장에 답을 줄 수 있었다.
검은색은 색깔일 뿐만 아니라 상징이기도 하다. 창세 초 어둠이 빛보다 우선했다는것은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다. 검은색은 항상 어둠의 일부로 여겨졌으며, 원시적일 뿐 아니라 한편으론 처음부터 부정적인 속성을 가진 색으로 인식되었다. 검은색 안에서는 어떠한 생명이든 살 수 없었고, 빛은 선하되 어둠은 그렇지 않았다.
검은색은 성경뿐 아니라 그리스 신화에서도 모든 것의 기원이 되는 진정한 어둠의 신화로 존재했다. 한 예로 밤의 딸들인 에리니에스(Erinyes)와 파르케(Parche)들이 인간의 운명을 주관한 것을 들 수 있다. 타 문화권 내에서도 검은색은 어둠의 표상이었으며, 피와 생명과 연관된 다산의 색인 붉은색과 대립되었다.
인간은 항상 어둠을 두려워해왔다. 비록 수 세기 동안 밤에 길들여지긴 했으나, 인간은 야행성 동물이 아니다. 어둠은 곧 빛, 밝기, 밝은색에 의해 변모되어 주관적 상태로 남게 되었다. 검은색은 밤과 어둠의 색이자 땅속과 지하 세계의 색으로서 죽음의 색이기도 했다. 이에 검은색은 천천히 색의 장에서 물러나고, 대신 붉은색을 위시해 푸른색과 녹색이 등장하게 되었다.
초기 기독교 신학에서 검은색과 흰색은 한 쌍의 대비된 색채로 종종 선과 악의 표현으로 다채롭게 나타났다. 중세 이탈리아의 유명 화가들은 검은색을 피하고자 진한 파란색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 조토(Giotto)는 파도바의 스크로벤니 성당(Cappella degli Scrovegni)의 <최후의 심판(Giudizio universale)>에서 지옥을 표현하기 위해 검은색 대신 어두운 파란색을 사용했다.
검은색은 기독교와 같은 종교적 맥락으로 이해하자면 지옥의 색채였다. 많은 중세의 필사본에는 검은색으로 칠해진 악과 관련된 동물이 묘사되어 있다. 예를 들어 멧돼지는 털이나 송곳니, 악취 때문에 설교자들에게서 사탄의 실제 화신이라 다뤄졌다. 이렇게 박쥐, 까마귀, 곰과 같이 악의 세력과 관련된 상징물 외에도 검은색으로 칠해진 동물들과 함께 중세의 불온한 맹수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한편 검은색이 부정적 신화와 연관된 경우와는 달리, 일부 화가들은 이를 바탕으로 전경의 인물을 부각시켰다. 이때 검은색의 의미는 완전히 변모하게 되는데 사실상의 이유는 유럽의 새로운 부유 계층들이 귀한 의복의 색깔로 검은색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위대한 이탈리아 화가들 중 안토넬로 다 메시나(Antonello da Messina)는 초상화의 배경으로 검은색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측면 포즈를 이용하던 많은 이탈리아 화가들과는 달리, 새롭고 전형적인 플랑드르 기법을 채택하여 주제에 대한 더 많은 신체적, 심리적 분석을 허용했다. 플랑드르파에 비교해 그는 디테일보다는 <미지의 초상(Ritratto d’ignoto)>에서처럼 육체적이며 인간적인 특징을 더욱 부각시켰다.
이 작품에서 인물은 어두운 배경에 자리하며, 흉상은 어깨 아래까지만 있고, 머리는 오른쪽으로 향하며, 반면 눈은 감상자를 정면으로 바라봄으로 정신적 접촉을 시도한다. 이때 빛은 얼굴의 오른쪽 측면에서 비추며 왼쪽 면은 어둠에 가려져 있다.
<팔레르모의 수태고지(L’Annunciata di Palermo)> 역시 성모가 전면의 화자(話者)와 함께 있는 듯 느껴지고, 그녀의 오른손은 마치 그를 제지하려는 듯 보인다. 이때 망토의 모양과 각도에서 성모의 완벽한 타원형 얼굴이 부각되며, 어두운 배경의 주된 표현에서 플랑드르 화파의 특징이 보이는데, 아마도 안토넬로가 이탈리아에서 직접 만난 페트루스 크리스투스(Petrus Christus)의 영향이라 짐작된다.
그림에서 빛은 밝게 얼굴을 비추어 인물의 진실성과 특징을 점차적으로 드러내는데, 이 작품 또한 새로운 회화 양식의 탄생이라 칭할 수 있다. 이는 검은색이 인물의 새로운 심리적 서술성을 유도하였고, 작품 속 인물과 감상자 간의 접촉을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화풍은 곧 카라바조(Caravaggio)를 통해 결실을 맺게 된다. 바로크 미술사에서 승리를 거둔 검은색은 카라바조의 인물들을 부각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로 하여금 또 다른 서술 방식을 창조하게 하였다.
번역 | 길한나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글 | 로베르토 파시 Basera Roberto Pasi
Journalist, Doctorate Degree University of Siena(Literature, Philosophy, History of Art with honors), Study at Freiheit Unverisität Berlin, Facilitator at Osho Resort, Poona Indi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