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ziano - 1514 - Galleria Borghese Roma
Tiziano - 1514 - Galleria Borghese Roma

[아츠앤컬쳐] 예술의 역사는 회화와 조각 그리고 건축의 이야기이자 수 세기에 걸친 색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색은 자연 현상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분류에서 벗어나 분석하기 어려운 문제까지도 제기할 수 있는 복잡한 문화적 구성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 주제에 관한 진지한 연구나 역사적 의미를 고려한 색의 연구는 매우 드물다. 색은 무엇보다 사회의 현실이다. 색상을 ‘만드는’ 사회는 색에 정의와 의미를 부여하고 체계와 가치를 구축하여 이에 따른 용도와 적용 범위를 설정한다. 그러므로 한 작가가 그림을 그릴 때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가 속한 사회가 표현하는 것들을 제시한다.

인류 역사상 탁월한 색감으로 가장 예술적이고 상징적인 사회적 관점을 시사한 색은 붉은색이다. 붉은색은 인간이 숙달하고 제조하며 재생산하고 다양하게 변형시킨 전형적인 색으로 줄곧 회화와 염색에 사용된다. 붉은색은 수천 년 동안 다른 색보다 우위를 점했는데 이는 서로 다른 언어권에서 동일하게 사용된 ‘로쏘(rosso)’가 붉고 아름다우며 풍부함을 나타내는 단어라는 사실로 증명되었다.

Pompei- fresko - villa dei misteri
Pompei- fresko - villa dei misteri

오늘날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여러 채도의 푸른색을 선호하는 추세이지만 고대 그리스나 로마 또는 중세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색은 단연 붉은색이었다. 붉은색이 가장 강하고 주목할 만하며 시적, 몽상적, 상징적 시야를 표현하는 풍부한 색상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붉은색은 고립되지 않으며 하나 이상의 색과 결합되거나 대비될 때마저 모두를 수용하는 색이다. 수천 년 동안 붉은색은 서양에서는 그 이름에 걸맞은 유일하고도 진정한 색이었다.

​Cave of Altamira spain- 35.000 years ago​
​Cave of Altamira spain- 35.000 years ago​

인간은 붉은색으로 색에 관한 첫 실험을 했고, 성공을 경험했으며, 색의 세계를 만들었다. 1879년 스페인 북부에서 발견된 알타미라(Altamira) 동굴은 붉은색을 사용한 전형적인 예술적 사례이며, 이 때문에 발견 당시 전문가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동굴의 커다란 천장에는 말, 사슴, 멧돼지와 함께 빨간색을 사용한 16마리의 들소가 묘사되어 있으며 화가들의 기술은 벽의 자연스러운 구조를 이용하여 부피의 환상마저 선사했다.

붉은색은 이후 지중해 주변의 여러 문명에서 발견되는데 예를 들어 벽돌이나 타일과 같이 주택 및 도시 환경이나 항아리, 도자기와 같은 인테리어 물품에 사용되었다. 또한 명예를 의미하는 색조로서 직물이나 의류 등에 채색되거나 그림이나 조각품에 사용되었다. 그리스와 로마의 대리석 작품들은 붉은색으로 종종 권위와 신성함을 나타내었으며 풍부한 상징성과 함께 초자연적 힘을 표현하였다.

Imperor Augustus, today ( left side)- How it was  originally - Rome Vatican  Museums- I Century AC
Imperor Augustus, today ( left side)- How it was originally - Rome Vatican Museums- I Century AC

대부분의 고대 종교들이 확실시한 붉은색과 생명력 사이의 특별한 결속력은 장례 관행에서도 보이는데 이는 선사시대에서 죽은 사람이 살아나거나 혹은 살려내는 매우 광범위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근동이나 이집트, 그리스, 로마, 심지어 브르타뉴와 독일계 야만족에게서도 다양한 정보들이 발견되곤 한다.

이 중 우리에겐 그리스보다는 로마 회화가 더 이해하기 수월하다. 왜냐하면 다양한 장식품과 작품이 더 많이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완전하진 않더라도 텍스트들이 풍부한 설명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로마 화가들은 다른 어떤 색보다 붉은색에 있어 더 많은 안료를 사용했는데, 이는 붉은 톤의 독창성과 모든 제국에 걸쳐 사용된 선호도에 대한 중요한 자료이다. 폼페이의 벽화는 붉은색이 지배적인 회화의 가장 유명한 예이다.

Lippo e Federico Memmi-  Maria Maddalena, Siena, 1325 - Avignon,Musée du Petit Palais
Lippo e Federico Memmi- Maria Maddalena, Siena, 1325 - Avignon,Musée du Petit Palais

중세의 12세기에는 전례나 귀족 가문의 문장 혹은 상징에 색이 사용되고 그중 붉은색이 가장 선호되었다. 붉은색은 ‘불’보다는 ‘빛’에, 특히 그리스도의 ‘피’와 관련이 있다. 중세의 상징학을 살펴보면 붉은색은 그리스도의 피와 정화, 종교적 표현에 관련이 있고, 막달라마리아 등 성인들을 상징한다. 또한 붉은색은 권력의 상징으로도 사용되었는데 그 예로 추기경들의 붉은 의복은 중세 후기와 르네상스의 화가들의 그림에서 수없이 발견된다. 회화사를 다시 쓴 위대한 조토(Giotto) 역시 붉은 의복과 함께 그려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Giotto, Anonymous  XVI , Louvre
Giotto, Anonymous XVI , Louvre

붉은색은 아름다움과 광채의 색이며 무엇보다 사랑과 신비 그리고 육체의 색이다. 그러나 중세 말 붉은색은 격동의 시기를 맞는다. ‘최초의 색’이자 ‘최고의 색’인 붉은색은 도전을 받았고 세기가 지날수록 그 도전이 거세어졌다. 수많은 화가들이 푸른색을 널리 사용하기 시작함으로 붉은색은 여러 톤의 푸른색과 경쟁하였다. 푸른색에 대한 선호도와 감탄이 나날이 높아가고 검은색의 사용 또한 늘어났다.

Paolo Uccello-  Caccia notturna, 1465-1470 circa,Oxford, AshmoleanMuseum.
Paolo Uccello- Caccia notturna, 1465-1470 circa,Oxford, AshmoleanMuseum.

그러나 붉은색의 위기는 경쟁이나 취향 또는 감각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실상 개신교 종교개혁이 가져온 새로운 도덕성의 색감 때문이었다. 붉은색은 너무 화려하고 비싸고 외설적이며 부도덕하고 타락적인 색상으로 간주되었다. 바로크 시대와 함께 여타 색상들의 존재감은 서서히 드러났고 카라바조(Caravaggio)와 바로크 화가들의 배경처럼 검은색과 푸른색이 우세했다.

Tiziano -1538- Galleria Uffizi – Firenze
Tiziano -1538- Galleria Uffizi – Firenze

이후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티치아노(Tiziano)는 자신이 가장 사랑한 붉은 색을 사용하여 당대의 수많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조르지오네(Giorgione)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색상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고, 물감을 덜 희석시키는 대신 그림 위에서 직접 혼합하여 사용하였다. 티치아노 덕분에 베네치아 화파는 미켈란젤로(Michelangelo)가 발의한 진정한 회화의 대안을 제시하며 소위 ‘색조화파’를 확립하고 당대의 귀족들로부터 많은 지지와 후원을 받았다.

Tiziano - 1514 - Galleria Borghese Roma
Tiziano - 1514 - Galleria Borghese Roma

티치아노의 초상화 속 인물로 되살아난 따뜻하고 육감적이며 선명한 붉은색은 마침내 ‘티치아노 레드(rosso Tiziano)’로 불리며 그림의 다양한 주제에서 색조의 체계를 이루며 발산된다. 이는 바로 <신성한 사랑과 세속적 사랑(Amor sacro e profano)>에서 옷을 입은 여인의 소매와 신발 그리고 벌거벗은 여인의 망토를 통해 나타나며 또한 <비너스(Venere)>에서도 빛을 발한다. 여기서 이교도 여신으로 묘사된 아름다운 베네치아 여인의 구리빛 금발은 관능과 즐거움을 암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티치아노의 특별한 붉은색은 따뜻한 금색을 띤 주황색으로 열렬함과 관능적인 분위기를 주었으며 르네상스의 수많은 미술가뿐만 아니라 여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당대 여인들은 티치아노의 작품에서 보이는 멋진 여인들의 아름다움에 필적하고자 자신들의 머리색을 염색하거나 표백하였다. 유백색의 피부에 구릿빛 금발을 한 단순하고도 우아한 여성들은 여성미와 세련미 그리고 관능성을 암시했다.

Tiziano - 1545–1546 -  Museo nazionale di Capodimonte, Napoli
Tiziano - 1545–1546 - Museo nazionale di Capodimonte, Napoli

티치아노와 함께 붉은색은 곧 다시 정열에서 권력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바사리(Vasari)의 말대로 <파올로 3세와 그의 손주 알레산드로와 오타비오 파르네세(Paolo III e i nipoti Alessandro e Ottavio Farnese)>에 표현된 자줏빛은 지나는 사람들을 캔버스 앞에 절을 하게 만들 정도로 지배력을 강조했다.

그러나 종교개혁과 함께 모든 분야에는 서서히 ‘교황풍의 다색 장식’보다 더 쓸모 있거나 혹은 인쇄된 책, 판화 등 문명에 더 적합한 흑색, 회색, 백색이 우선시되었다. 아울러 선명한 색상들은 부정직한 것으로 간주되어 개신교의 미학적 언어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렘브란트(Rembrandt)가 한 세대 전에 살았던 위대한 가톨릭 화가 루벤스(Rubens)의 생생하고 육감적인 붉은색을 거부했듯이. 그러나 바로 이 자리에 푸른색과 검은색의 또 다른 역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번역 | 길한나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글 | 로베르토 파시 Basera Roberto Pasi
Journalist, Doctorate Degree University of Siena(Literature, Philosophy, History of Art with honors), Study at Freiheit Unverisität Berlin, Manager at Osho Resort, Poona India

 

저작권자 © Arts & Cultur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