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나라의 보물, ‘국보’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돈만 있으면 누구나 살 수 있는 경매에 나오는 부끄러운 사건이 발생했다. 간송 전형필(1906~1962)님이 공들여 모았던 국보들 중 2점이 경매에 나오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전형필님의 우리 문화재 수집과 보존은 크게 감사할 일이고 여전히 높이 평가받아야 할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현재 간송미술관의 운영은 점검이 필요한 심각한 위기상황이다. 케이옥션은 2022년 1월 27일 경매에서 간송미술관 소장 국보 ‘계미명금동 삼존불 입상’(1962년 지정)과 국보 ‘금동삼존불감’(1962년 지정)을 판매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거의 모든 신문이 하나같이 간송미술관의 국보 경매 신청을 1면 기사로 다루었을까.
매일경제 “어쩌다 국보까지 경매에…위기의 간송미술관”
이데일리 “국보까지 경매에”
조선일보 “또 경매에 나온 간송 소장품”
한겨레신문 “전형필이 아끼던 ‘국보 불상’ 경매 나왔다”
등으로 큰 제목을 달았다.
일단 우리나라와 일본 외에 정부가 앞장서 국보 제도를 유지하는 나라는 흔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외국의 박물관, 미술관들의 소장품들이 경매에 나온다는 것은 거의 상상하기 힘들다.
파리 루브르의 모나리자가 경매에 나온다면 추정가는 어떻게 될까. 누구나 1조 원은 당연히 넘을 것으로 본다. 1경 원이 넘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의 주가가 1,000달러, 전체 시가 총액이 1조원을 넘어 우리나라에서는 천 슬라라고도 불린다. 모나리자 1점으로 테슬라 회사 전체를 사고 또 세계 최대의 시가총액 회사인 애플까지도 사고도 돈이 남는다는 것이다.
이런 모나리자야말로 프랑스의 국보가 아닐까. 이탈리아는 가끔 심심하면 이 프랑스의 국보급 존재인 모나리자를 그냥 내놓으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모나리자를 그린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바로 이탈리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꿈적도 안 한다.
그토록 이탈리아에 국보급 명품을 많이 남긴 다 빈치가 말년에 이탈리아로부터 외면 받고 쓸쓸히 프랑스로 건너갈 때 가져간 몇 안 되는 자신의 소지품 중에 작업 중인 모나리자가 있었다. 프랑스 왕은 다 빈치를 자신의 왕궁에 극진히 모시고 후에 이 모나리자를 정당하게 약간의 돈을 주고 구입했다. 프랑스가 전쟁 승리에 따른 전리품으로 강탈해 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돌려줄 의무가 없는 것이다.
국보 제도는 언제 왜 만들어졌을까. 우리나라에 국보 제도가 도입된 것은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 발효되면서부터이다. 이때 남대문이 국보 1호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 국보 1호 남대문은 일본이 한반도 강점 시절 조선총독부 ‘조선 고적 1호’로 관리해 오던 것을 1962년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국보를 정할 때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국보 1호로 정해 버린 것이 문제였다. 일본 조선총독부가 남대문을 ‘조선 고적 1호’로 명명한 것은 과거 1592년 임진왜란 때 자신들의 영웅인 가또 기요마사가 서울을 점령할 때 남대문을 통과해 입성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말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59년이라는 오랜 기간의 역사적 반성을 통해 우리 정부는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 시행령’과 ‘문화재보호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모든 국보와 보물에 일련번호를 표기하지 않기로 했다. 잘된 일이다. 국가에서는 국보에 번호를 없앴는데 물건을 가치 있게 보이고 조금이라도 높은 값에 팔려는 간송미술관과 경매를 주관하는 케이옥션은 국보에 번호를 붙여서 보도자료를 만들어 배포했다. 그리고 생각과 판단력이 부족한 언론들이 보도자료 그대로 간송미술관이 내놓은 물건들을 ‘국보 제 몇 호’라고 안타깝다며 보도하고 있는 중이다.
간송미술관의 국보 경매 사건은 향후 “어쩌다 또다시 국보가 경매에”라는 기사를 만들어 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전 세계적으로 거의 시행되지 않고 있는 국보 지정 제도 자체의 존폐도 생각해 볼 문제다.
글 | 강일모
경영학 박사, 국제예술대학교 총장 역임, 차의과학대학교 상임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