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ce_In_Wonderland
Alice_In_Wonderland

 

[아츠앤컬쳐] 2023년 토끼해라고 하는데 용, 호랑이, 소 뭐 이런 동물에 비해 임팩트가 약한 느낌이다. 그래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기 아쉬우니 토끼가 등장하는 작품들을 좀 살펴보려다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시계를 들고 다니며 늦었다고 계속 뛰어다니는 토끼가 바로 생각났다. 현대인들에 가장 인상 깊이 남아있는 동화 속 토끼 캐릭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 어린 시절 보면서도 ‘맞아, 우린 모두 시간이 없어’라고 생각했던 게 기억난다. 최근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에 등장하는 토끼 경찰관 캐릭터도 훌륭하지만 모든 세대가 알고 그 존재가 신비로운 앨리스의 토끼 정도는 아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시대를 뛰어넘는 작품이다.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으로 많이 제작되었으며 현대 판타지 작품들에 많은 영감을 준 소설이다. 어릴 적 디즈니에서 만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면 항상 묘한 기분이 들었다. 주인공 앨리스가 몸이 계속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겪는 곤란한 상황들, 본인이 울면서 그치지 못해 홍수가 나는 장면이나 까칠한 다양한 동물들, 못된 하트의 여왕과 그녀의 기에 눌려 사는 하트의 왕 등 어린이의 눈에는 진짜 이상한 스토리 전개였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보니 글은 쓴 사람이 어른이었기에 아이들의 생각을 꽤 과장해서 그린 듯하다. 결국 소설의 마지막은 주인공이 꿈에서 깨는 것으로 끝난다. 보면서도 저건 꿈에서나 가능한 거라는 이미 내려진 결론에 끝까지 볼 흥미를 잃었던 필자의 어릴 적 기억도 떠오른다.

이런 이야기는 비현실의 애니메이션보다는 실사영화로 다시 만들어졌을 때 좀 더 흥미로웠다. 팀 버튼 감독의 영화 ‘거울 나라의 앨리스(2016)’를 보면서 좀 더 집중해 끝까지 영화를 봤었는데 한편으로는 필자가 이미 성인이 된 이후라 그랬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젠 디즈니에서 제작한 1951년 애니메이션 역시 볼만하다. 뭐라 할까, 아빠의 마음으로 어린이를 이해하고자 하는 견해에 서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고 나의 사정과 환경에 따라 작품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고 있다는 증거다. 오페라는 더욱 그렇다. 같은 작품을 볼 때마다 매번 다른 감상이 든다는 것이 얼마나 확실한 장점인가!

영화 '거울나라의 앨리스' 2016, 자료-네이버 영화
영화 '거울나라의 앨리스' 2016, 자료-네이버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영국의 작가 루이스 캐럴의 대표 아동 소설(1865 초판) ‘땅속 나라의 앨리스’를 개작해 만들었고 이후 ‘거울 나라의 앨리스(1871)’가 출판되었다. 수학자였던 루이스 캐럴은 어린이를 위해 이 작품을 썼고 그 글 안에는 당시에 유행하던 말장난(언어유희)을 써서 읽는 사람들에게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이후 여러 나라말로 번역되었지만,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동음이의어 및 관용구 등으로 그 조크를 이해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 주석이 달린 판본이 나왔다. 특히 마틴 가드너라는 미국 수학자가 쓴 주석 본이 유명하다.

줄거리는 다 알겠지만 잠깐 언급하면, 어느 날 애완 고양이와 숲을 거닐던 앨리스는 우연히 회중시계를 꺼내 보고 있는 양복 차림의 하얀 토끼를 따라가다 토끼굴에 빠지면서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게 된다는 내용이고 거기서 말하는 문뿐만 아니라 많은 곤충, 동물, 새 등을 만나고 하트 카드의 여왕과 스페이드 카드의 병사들을 만나 어려움을 겪고 쫓기다 결국 잠에서 깬다는 내용이다. 내용은 간단하지만, 상황 묘사가 뛰어나고 어린 소녀의 심리 묘사에도 뛰어나 전 세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무대에 올려진 앨리스 이야기는 발레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의 모험(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The Royal Ballet Covent Garden, 2011.2.28., 안무 Christopher Wheeldon, 작곡 Joby Talbot)’, 오페라 ‘지하세계에서의 앨리스의 모험(Alice's Adventures Under Ground, Royal Opera House Covent Garden 2020.2.3.초연, 작곡 Gerald Barry)’이 있다. 작가의 고향이 영국이라 그런지 수준 높은 무대와 음악으로 제작되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출신 작곡가 진은숙의 작품이 독일의 뮌헨 바이에른 국립오페라극장에서 2007년 초연되어 독일에서 올라갔다. 언어는 원작의 언어인 영어로 대본이 만들어졌고 아힘 프라이어(Achim Fryer)의 연출로 무대에 올려졌다. 이후 2015년 런던 바비칸 센터에서 네티아 존스(Netia Jones)의 연출로 다시 올려졌다. 초연의 우울하고 상징주의적 의상과 무대는 필자가 보아도 아동극이라기보다는 좀 기괴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작곡가인 진은숙도 인터뷰에서 연출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했었다. 부담스러운 탈을 쓰고 돌아다니며 노래하게 하는 아힘 프라이어의 연출은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호불호가 많이 갈리고 성악가인 필자의 눈에도 부담스럽다.

2018년 한국에서 야심 차게 120억 원의 제작비를 들여 2022년까지 매년 1편씩 바그너 링 시리즈 4부작을 올린다는 어마어마한 언론 인터뷰에도 불구하고 첫 공연부터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히며 1편 라인의 황금 공연 이후 결국 후속작을 한국 무대에 못 올리고 있다.

그에 비해 최근 연출을 맡은 네티아 존스는 비디오 아티스트이고 연출에 파사드 기법을 많이 쓰는 특징이 있어 색감이 특이하고 무대를 예산과 무대 크기에 따라 원활하게 바꾸면서 뭔가 신선한 느낌이 있다. 물론 재공연을 통해서도 원작의 고향인 영국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 좀 어려웠지만 그래도 평단의 무난한 평점을 받으며 꾸준히 발전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의 음악을 기대하고 들으면 좀 어렵기는 하다. 12음 기법의 선구자 쇤베르크를 기념하는 상을 탄 경력의 작곡가인 만큼 현대음악의 난해함은 관객이 버텨야 할 몫이다.

그에 비해 영국 로열오페라 코벤트 가든에서 제작한 오페라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연출과 의상 등 원작의 전통을 재해석한 느낌, 역시 어려운 음악이지만 벤저민 브리튼과 스트라빈스키 독특한 사운드와 신 고전주의적인 느낌으로 진은숙의 엘리스보다는 관객 친화적인 작품이다. 진은숙의 앨리스는 유튜브를 통해 전막을 감상할 수 있다 아쉽게도 제라드 베리의 앨리스는 예고편만 올라와 있어 그 느낌만 엿볼 수 있다는 점이 아쉽다.

언젠가 우리나라의 무대에도 이런 종류의 실험적인 작품을 과감하게 올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면 너무나 좋겠다는 2023년 토끼해의 바람이다. 그리고 우리도 ‘별주부전’ 토끼와 같은 고유한 동화 이야기를 오페라로 개발해서 전 세계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즐길 만한 공연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매번 같은 말이지만 빈약한 클래식 생태계로 인해 한국 출신 아티스트들이 남의 나라 좋은 일만 시키는 현실을 이겨내고 그들이 대한민국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좀 더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트로트만 너무 듣지 말고 말이다.

 

글 | 신금호
'오페라로 사치하라' 저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www.mcultur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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