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얼마 전 괌을 방문하고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괌은 한때 스페인영국 일본의 지배를 거쳐 현재 미국령이고 태평양 군사기지가 있기에 상점들 여기저기 군인 할인 표시가 눈에 띈다. 도시의 모습은 흡사 대한민국의 1980년대를 연상케 하는 건물들과 필리핀의 시골 같은 모습에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기분이다. 물론 새로 만들어진 쇼핑센터는 세계 여느 도시와 비슷한 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차를 타고 조금만 돌아다니다 보면 낙후된 느낌도 받는다.
섬이 작다 보니 팬데믹의 영향이 지역 주민의 삶 자체를 위협했던 모습에서 아직 완벽하게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로 가득할 것 같은 쇼핑센터도, 문을 닫은 가게들이 즐비하고 사람들로 가득했던 관광 중심 지역도 한산했고 팬데믹을 뚫고 온 한국 관광객 외 다른 나라 사람들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어서 여기가 미국인지 제주도인지 모를 정도였다.
렌터카를 이용해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특이한 점을 발견했는데, 태평양 한가운데 작은 섬 괌은 현재 미국령인데 관광명소를 돌아다니다 보면 스페인식 이름으로 관광 포인트가 남아있다. 태평양 한가운데 작은 섬을 유럽에 처음 알리게 된 계기가 마젤란의 세계 일주 항해를 통해서였기 때문이다.
마젤란이 세계 일주 항해를 하게 된 데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1492년 이탈리아 출신 콜럼버스가 스페인의 이사벨라1세 여왕과 페르난디트2세 국왕의 지원을 받아 서쪽 인도항로 개척을 위해 서진하는 여러 번의 항해를 통해 북아메리카의 몇 개 새로운 섬들이 새롭게 발견되면서 유럽 해양 강대국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
주도권을 쥐고 있던 포르투갈에 스페인이 도전장을 내밀면서 그동안 포르투갈이 선점하던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대륙의 소유를 두고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이전 1479년에 북위 26도 북아프리카 서해 카나리아 제도 이하에서 발견되는 영토는 모두 포르투갈의 소유라고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이에 체결한 알카소바스 조약(스페인의 남부 통일을 위한 포르투갈의 협조 대신 해양 주권을 양보)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마침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함께 스페인 출신으로 즉위한 교황 알렉산더 6세의 중재안을 칙령으로 발표했지만, 일방적으로 스페인에 유리한 제안이었기에 포르투갈은 강력하게 항의 했고 결국 두 나라는 독립적으로 새로운 조약을 맺는다. 이렇게 대양의 시대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통해 소유권 분쟁지역이었던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의 선 긋기를 잠정적으로 합의했다.
지금도 대부분의 남아메리카 대륙의 공용어가 스페인어인 데 반해 브라질만이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이유가 이 조약 때문이었고 이후 1750년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마드리드 조약을 통해 새로운 국경선에 합의 하면서 갑자기 포르투갈령으로 바뀐 아마존 지역의 과라니족이 학살당하고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 비극이 발생했다.
영화 ‘미션’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포르투갈은 노예제도가 이미 폐지되었음에도 예외 규정들이 남아있어 사실상 국가의 묵인하에 원주민을 잡아 노예로 삼았다. 그리고 과라니족을 대상으로 선교하던 예수회의 소유지역들도 모두 몰수해 버렸다고 한다.
이후에 등장한 인물이 포르투갈 출신 마젤란이다. 포르투갈에서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없어 결국 스페인의 국왕 카를로스 1세를 찾아 후원받고 포르투갈이 독점하고 있던 동쪽 항로를 피해 동남아 향신료를 수입할 수 있는 서쪽 항로 개척을 떠난 것이다. 아무도 지나가 보지 못한 아메리카 대륙의 남쪽으로 간을 보다가 결국 남아메리카 최남단을 통과하면 곧 동남아로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지금 아르헨티나 및 칠레 남쪽의 해협(현재 마젤란해협)을 지나는 길을 택했는데 생각보다 꼬불꼬불하고 좁고 날씨까지 변덕이 심한 악조건을 뚫고 35일 만에 겨우 빠져나와 만난 바다가 어마어마하게 넓고 잔잔해 이름도 태평양이라고 붙였다.
그 여정에서 마젤란은 태평양에서 괌을 발견했고 지금의 필리핀 세부를 발견했고 세부의 원주민을 도와 막탄섬의 원주민과의 전쟁 중 전사했다. 3척의 배로 시작한 항해는 1척의 배와 단 10명의 선원으로 마쳤지만, 최초 열망했던 지금의 인도네시아 지역인 말루쿠제도(현재 말라카 해협은 원유 수송과 물류에 있어 세계 중요항로 중 하나)에서 동양의 향신료를 가득 싣고 1522년스페인으로 돌아왔다.
지구가 둥글고 한 방향으로 가면 결국 집으로 온다는 신념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이로써 평면인 지구에서 둥근 지구로의 전환은 이전에 국경이나 조약으로 맺어 지도 위에 그었던 선들은 동으로 가거나 서로 가거나 도달할 수 있어 무의미해졌고 당연히 스페인의 마젤란 함선들이 서부 항로를 통해 지나온 아시아 향신료의 보물섬 말루쿠제도 소유권 분쟁이 시작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529년 포르투갈의 주앙 1세와 스페인의 카를로스 1세(두 왕가는 겹사돈을 맺으며 평화 분위기를 조성했다) 사이에 사라고사 조약을 맺어 뉴기니섬 정중앙을 가로지르는 자오선을 경계로 서쪽은 포르투갈이 동쪽은 스페인이 지배하게 되었다.
포르투갈이 마카오와 말루쿠제도의 독점권을 유지하는 대신 35만 두카트를 스페인에 배상했고 또한 자오선 서쪽임에도 예외적으로 필리핀 지역과 호주지역은 스페인이 지배권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괌은 스페인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또한 스페인의 지배 하에서 ‘필리핀’이라는 이름은 카를로스 1세가 아들의 이름을 붙였고 신성로마제국 황제 자리만 제외하고 스페인과 네덜란드, 아메리카 식민지, 이탈리아, 필리핀 식민지를 아들 필리포 2세에게 물려줬다.
포르투갈이라는 해양 강국에 맞서 세계를 나눠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하지만 스페인은 자국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출신 콜럼버스와 포르투갈 출신 마젤란이라는 인재들에게 투자함으로써 어마어마한 가성비를 누렸다. 포르투갈은 이미 자신들이 발견한 땅은 확실히 가치가 증명되어 소유권을 발표하기 전까지는 영토 발견 자체도 극비로 했다고 한다. 이런 포르투갈을 상대로 인재를 스카우트해서 지원한 후발 국가였던 스페인은 북아메리카 일부와 남아메리카 전체와 태평양을 식민지로 둔 거대 국가가 되었다.
이렇게 마젤란을 후원했던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왕조의 시작인 카를로스 1세(필리포 2세의 아버지)는 신교 국가들을 견재하는 역할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카를5세)로까지 등극하며 유럽 최강국으로 스페인을 올려놓았지만, 개신교로 전향한 독일지역 제후들과의 갈등과 동생으로 이미 결정 난 다음 황제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려는 무리수를 두다 결국 스스로 황제 자리에서 내려와 권력을 동생과 아들에게 나눠주고는 고향인 네덜란드에 칩거하다 스페인의 유스테 수도원에 들어가 버린다.
카를로스1세의 장손자인 돈카를로스가 합스부르크 가문의 모든 유전병을 갖고 태어난 것에 충격을 받아 칩거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스페인의 암울한 미래에 대해 걱정이 많았던 것 같다.
이런 스페인 왕가의 이야기를 독일의 천재 극작가 쉴러가 대본으로 만든 픽션 역사극 ‘돈 카를로스’를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가 오페라로 작곡했는데 오페라에서는 돈 카를로스를 막장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황당한 상황에 빠진 불운한 캐릭터로 그린다.
결혼하기로 약속되어 있던 여인을 아버지 필립포 2세에게 빼앗긴 비련의 주인공으로 만들며 관객의 엄청난 동정표를 받는 모습으로 나온다. 오페라 끝에 친한 친구도 암살당하고 그 배후에 아버지가 있다고 믿어 홧김에 아버지에게 반역의 칼을 들면서 더 이상 가망이 없던 돈 카를로스를 위기의 순간에마치 귀신처럼 나타난 카를로스 1세가 구해주면서 오페라의 막이 내려간다. 전 세계의 절반을 소유했던 황제였지만 오페라에서 아주 적은 분량으로만 등장하는 역할이 그의 인생을 대변하는 듯하다.
글 | 신금호
'오페라로 사치하라' 저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www.mcultur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