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K 클래식의 최선두에 선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유럽 중요한 연주 일정들이 그의 손가락 부상으로 갑자기 취소됐다고 주요 언론들이 보도했다. 임윤찬이 소속된 세계적 매니지먼트 회사 IMG Artists는 홈페이지 첫 페이지에 임윤찬이 부상으로 3월 27일부터 4월 10일까지의 연주 일정이 모두 취소된다고 밝혔다. 더 주목을 끄는 것은 쉴 틈이 거의 없어 보이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임윤찬 연주회는 3월 27일 영국 런던에서 펼칠 로열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의 협연, 30일 스페인 페랄라다 페스티벌, 4월 6일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8일 런던 위그모어홀, 10일 이탈리아 밀라노 폰다지오네 라 소시에타 데이 콘서티 등으로 이어질 예정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유럽 위아래 국가들을 하루 연주, 하루 장소 이동, 다음날 연주 등으로 스케줄을 이어가려 했던 것이다.

그의 손 부상이 심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해 일단 4월 10일까지의 일정만 취소해 놓은 상태다. 통상 연주자들의 공연은 통상 1~2년 또는 그 이후까지 확정하는 경우가 많아 차후 일정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것이 없다. 아무리 20살의 열혈 청년이라 해도 무리로 보인다.

물론 거장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의 경우 지난해 예술의전당 내한 연주회에서 베토벤의 32개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연주할 때 임윤찬에 비해 압도적으로 무리인 것으로 보이는 일정을 가져 놀라게 했다. 그는 2023년 6월 28일, 30일, 7월 1일 3일 연속에 이어 사흘 쉬고 6일, 7일, 8일, 9일 나흘간 연속으로 매일 다른 베토벤 소나타들을 모두 암보로 연주한 것이다. 루돌프 부흐빈더는 1946년 12월 1일 체코 출신으로 지난해 서울 연주회 당시 만 76세를 넘긴 때였다. 그는 피곤해 보이기는커녕 열혈 청년처럼 연주했고 매일 이어지는 콘서트가 끝나고 로비에서 너무나 편안하고 행복한 얼굴로 매일같이 사인회도 이어가 감동을 주었다.

20세 임윤찬과 78세 루돌프 부흐빈더 연주회의 차이는 무엇일까. 부흐빈더가 4일씩 계속 서로 다른 레파토리로 독주회를 했지만, 그는 한 도시에 머물며 계속 그 일정을 소화해 나갔었다. 그는 서울에서 6월 28일에서 7월 9일까지 총 12일간의 연주 일정을 마치면 일본으로 가서 또 한 도시에서 그러한 일정을 계속해 나갔다. 한국에 오기 전엔 아시아 도시들에서 이미 그러한 일정을 소화한 상태였다. 부흐빈더는 수십 년의 연주 경험으로 수십만 톤이 넘는 강력한 엔진의 거대한 배가 유유히 대양을 향해 나아가듯 묵직하게 예술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는 중이다.

20세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나이에 비해 이미 고전음악 세계의 가장 높고, 가장 깊고, 가장 넓은 곳에 이미 도달해 있는 듯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어, 여기에 세계가 놀라고 환호 중이다. 그래서 이렇게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바쁜 일정표가 나왔다고 믿고 싶다.

임윤찬은 아직 젊다. 그가 분명 베토벤, 라흐마니노프 유럽 음악을 유럽인들이 놀랄 정도로 훌륭하게 연주하고 있지만 아직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고향, 라흐마니노프가 활약한 도시들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스트리아의 하이든 고향에 가서 그가 태어난 시골집의 한적함, 고요, 평화를 느꼈을 때 하이든의 음악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명확히 그려진다. 말러가 교향곡들을 써나간 그의 작은 오두막을 직접 방문하면 말러가 지금도 그 작은 공간에서 악상을 이어가려 고심한 장면이 그려지는 듯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로열필 협연, 위그모어홀 연주, 게반트하우스 연주 등이 아니다. 대부분의 음악가들에는 위와 같은 것들은 평생 가져보기 힘든 정말 놓칠 수 없는 기회들이다. 하지만 임윤찬은 이미 저 높은 곳에 있는 이 시대 최정상급 음악인이다. 이런 연주 기회들은 그가 희망만 하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

이번 임윤찬의 손 부상 사건은 무리한 스케줄 때문에 생긴 일로 추정된다. 일단은 이처럼 무리한 스케줄을 만든 IMG Artists 측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지 않나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일단 IMG Artists 측에 향후 임윤찬의 일정을 보다 여유 있게 짜줄 것을 간절히 건의하고 싶다. 임윤찬은 정말 우리의 자랑이자 너무나 귀중한 보배이기 때문이다.

 

글 | 강일모
경영학 박사 / Eco Energy 대표 / Caroline University Chaired Professor / 제2대 국제예술대학교 총장 / 전 예술의전당 이사 / 전 문화일보 정보통신팀장 문화부장 / 전 한국과학기자협회 총무이사/ ‘나라119.net’, ‘서울 살아야 할 이유, 옮겨야 할 이유’ 저자, ‘메타버스를 타다’ 대표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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