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 prophete-NY MET opera
Le prophete-NY MET opera

 

[아츠앤컬쳐] 어느 날인가 넷플릭스에서 흥미로운 볼거리가 없나 이리저리 뒤지다 류준열 배우 주연의 <계시록>이라는 한국 영화를 보게 되었다. 허름한 옷차림의 한 남자가 여자아이를 쫓아 개척교회 예배당까지 들어온다. 이를 본 개척교회 목사님은 그를 끈기있게 등록시키려고 하다가 전자추적 발찌를 보고 성범죄자임을 알게된다. 목사는 교회에 찾아왔던 성범죄자를 의심하고 미행한 끝에 그와 실랑이를 벌이다 뜻하지 않게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그때 빗속에 번쩍이는 번개 불빛이 산등성이에 비추면서 반사된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는 그 상황이 신의 계시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하지만 유괴범은 죽음의 위기에서 운 좋게 의식이 돌아오는데 이를 알게 된 목사는 끝까지 그를 추적하고 성폭력범의 범죄 피해자 가족인 여형사와 숨바꼭질 같은 상황을 연출한 스릴러다.

대단한 수작은 아니지만 나름 끝까지 보게 되는 영화다. 종교와 미신 그리고 사이비종교에 관한 영화의 메시지가 대부분 기독교계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내용이라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대중의 관심을 끄는 주제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오페라에서도 종교적인 주제를 다룬 여러 가지 작품들이 있는데 프랑스 파리에서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 있었던 1572년 8월 24일 일어났던 비극적인 ‘성 바르톨로메오 대학살’이라는 사건을 다룬 마이어베어의 오페라 <위그노>(1836, 파리 오페라)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 작품은 일전에 이미 칼럼으로 소개했었는데 작곡가는 오페라 <위그노> 성공 후 13년 만에 종교적 사건을 다룬 또 하나의 오페라를 파리 오페라 무대에 올리며 주목받는다. 현대 오페라극장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주요 레퍼토리로 꾸준히 공연되고 있으며 특히 191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공연에선 전설적인 테너 ‘엔리코 카루소’가 주인공 ‘장 드 레이드’를 노래해 주목받았다.

이 오페라의 제목은 <예언자(Le prophète)>다. 16세기 네덜란드의 도르트레흐트와 독일의 뮌스터를 배경으로 한 재세례파(Anabaptism)* 운동이라는 실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네덜란드의 순수한 시골 청년 ‘장 드 레이드’는 그 외모와 언변 덕분에 어머니 피데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이비종교의 수장으로 추대된다. 약혼녀 ‘베르트’ 역시 이상한 종교에 빠지지 말라며 말리지만 소용이 없다. 시간이 지나고 장은 독보적인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을 발휘하며 군사를 이끌고 뮌스터까지 함락시킨다. 하지만 선량하던 주인공 장은 독재자처럼 변하는데 마치 영화 <오징어게임>에서 이병헌 배우가 가면을 쓰고 정체를 숨긴 것 같은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선다. 재세례파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장을 추대했지만 계속 커가는 존재감에 장을 축출할 계획까지 세운다. 하지만 장을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리고자 하는 어머니 피데스와 약혼녀 베르테의 끈질긴 노력으로 결국 장은 뮌스터에서 열리는 본인 대관식에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화약고에 불을 질러 궁전을 폭파하고 모두 함께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하는 극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이 오페라를 보고 있으면 종교를 소재로 삼았지만 현실 정치에서 볼 수 있는 이기적인 권력의 속성에 대한 비판이 보인다. 또한 성경 속 삼손이 마지막에 자신을 희생하면서 무너뜨리는 장면도 연상된다. 장이 재세례파의 규율과 강력한 권력 유지를 위해 뮌스터의 지배자로서 왕처럼 군림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이어가는 모습은 어느 집단이든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벌어지는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마치 북한처럼 독재자의 유익을 위해 다수가 희생하는 모습처럼 말이다. 현대 독재국가에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법을 이용해 정적을 처단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데 여기서 법과 원칙은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느냐 하는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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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다큐멘터리 촬영 가운데 일어났던 일례를 통해 함께 생각해 보면 어떨까? 2019년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 다큐상을 받은 BBC 다큐멘터리 감독 ‘린지 맥크레이’는 11개월 남극에서의 촬영 중 가파른 협곡에 갇혀 죽어가던 펭귄들을 위해 스태프들과 함께 삽을 들고 눈을 파내 경사로를 만들어준 일이 있었다. 죽음을 기다리던 펭귄들은 이들이 만들어준 언덕길을 따라 올라와 죽음의 위기를 벗어났다. 다큐멘터리 촬영 중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간섭은 금기시 되어있기에 촬영팀의 행동은 여러 논란을 일으켰다. 과연 그 선택이 바람직했느냐 하는 논쟁으로 사람들의 찬반 논란이 뜨거웠다. 시상식에서 감독은 수상 소감 마지막에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경사로를 따라 올라와 준 펭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인간은 서로에게 남극의 다큐 촬영자들처럼 직접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대척점에 서 있는 상대방에게 선택지를 주어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개인의 이익을 시작으로 가치를 공유하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사회 구성원들은 움직인다. 극단의 갈등으로 병들어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에서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음에 마치 병들어 쓰러져가는 가족이나 동료를 위해 그저 기도밖에 할 수 없는 무력함과 비슷한 감정이 든다. 집단 간의 갈등으로 서로를 죽고 죽이는 일은 역사에도 비일비재했다, 그렇게 한 국가 안에서 내전도 일어났고 국가 간의 전쟁도 발생했다.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나 일어나는 그저 먼 나라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일들이 내 주변에서도 일어날 수 있겠다는 위기감도 그저 추상적개념이 아니라 현실감 있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펭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깨야만 했던 다큐 감독의 신념은 구원을 위한 것이었지만 서로를 파괴하기 위해 원칙을 깨는 현실 정치의 모습 속에 정치가 더 이상 세상을 구할 수 없음에 답답한 마음 가득하다. 원칙에 예외는 파괴가 아닌 생명을 지키는 상황 속에서만 사용되어야 한다. 죽어가던 펭귄을 두고 마음속에서 우러난 인간의 측은지심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때다.

*16세기 급진적인 신앙관을 수용한 종교파벌로서 유아세례를 부정하고 슐라이트하임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성인 세례만을 인정해 로마카톨릭의 박해를 받았다. 오페라에서는 폭력적인 종교단체로 묘사되지만, 현대에서 재세례교에 뿌리를 둔 아미시, 형제교회 등은 비폭력을 지향한다. 개신교 침례교는 재세례파와 관련이 없다.

 

글 | 신금호
'오페라로 사치하라' 저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www.mcultur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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