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메타포
[아츠앤컬쳐] 세상에는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한 수많은 노래가 있다. 그런데 어떤 곡은 단순한 감정의 울림을 넘어 시간의 흐름 속에 겹겹이 싸인 기억의 풍경을 그려낸다. 호르헤 페르난두(Jorge Fernando)의 ‘Chuva’가 바로 그런 노래이다. 포르투갈의 전통 음악인 파두(fado)의 혼을 품은 이 노래는 ‘비’라는 자연현상을 통해 시간 너머에 머무는 감정들과 지워지지 않는 사랑의 여운을 감성적으로 조명한다.
호르헤의 ‘Chuva’는 그만의 특유한 음색과 감성적 깊이로 오랜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사우다드의 화신이라 불리는 마리자(Mariza)의 해석 또한 섬세하고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그녀의 표현은 마치 낙하하기를 반복하는 빗방울처럼 정적이면서도 연속적인 패시지의 흐름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 흐름은 듣는 이를 고요한 그리움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마리자의 노래는 언제나 그렇듯 과장되지 않은 진정성의 본질을 들려주며, 파두에 담긴 상실과 감내의 운명(fatum)을 깨닫게 한다.
“삶에서 흔한 것들은 그리움을 남기지 않아. 오직 아프거나 미소 짓게 한 기억들만 그렇지. 너와 함께했던 하지만 결국 잃어버린 순간들처럼 말이야. 비는 내 차갑고 지친 몸을 적시고 나는 도시의 거리를 헤맨다. 내 비밀을 도시에 들려주곤 침묵하던 비는 어느새 창문을 두드리며 그리움을 데려온다.”
마리자는 포르투갈 기타(guitarra portuguesa) 연주자인 루이스 궤레이루(Luís Guerreiro)와 함께 더없는 감성을 빚어낸다. 리스본의 벨렝탑 정원에서 열린 두 사람의 라이브는 타구스강의 정취와 사우다드의 본질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마치 타구스강의 물결 위를 부유하는 파두 가락과 같이 대항해시대(age of discovery)의 기다림과 상실, 눈물의 서사를 그대로 재현한다. 무엇보다 이들이 연주하는 ‘Chuva’는 기억과 감정의 매개체로서 망각 속에 잠든 그리움과 슬픔을 지속적으로 끌어낸다.
‘Chuva’는 파두의 일반적 특징들을 수반하면서도 현대적인 감성을 담아낸다. 보통의 파두는 전통적인 단조 모드의 반복적 악구를 중심으로 자유 리듬과 가수의 멜리즈마를 통해 감정을 쏟아낸다. 그러나 ‘Chuva’는 장조의 화성 안에서도 단조 모드가 가진 우울함과 서러움을 능가할 만한 서정적인 힘을 발휘한다. 이는 큰 소리를 내어 울지 않아도 눈에 맺힌 눈물을 손등으로 살며시 훔치는 누군가의 슬픔을 목도함과 같다. 또한 ‘Chuva’에서 느껴지는 현대적인 감성은 멜리스마의 절제된 진폭에서도 느껴진다. 파두 장인을 통칭하는 파디스타(Fadista)들의 본격적인 멜리스마와는 사뭇 다른 조절된 방식의 섬세한 떨림이라 할 수 있다. 이 또한 호르헤가 큰 진폭의 꺾임새가 유발하는 클라이맥스로서의 고조를 강조하기보다는 잦은 떨림의 연속성이 주는 몰입의 순간을 부드럽게 이끌어낸 듯하다. 바로 여기에서 고전적인 파두와는 구별된 새로운 감성의 내면적 울림과 정서의 흐름이 읽힌다.
호르헤의 가사와는 다르지만 ‘비’와 ‘그리움’이란 맥락에서 유사하게 느껴지는 시가 존재한다. 이외수의 <6월>이다. “바람 부는 날은 백양나무 숲으로 가면 청명한 날에도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 귀를 막아도 들립니다. 저무는 서쪽 하늘 걸음마다 주름살이 깊어 가는 지천명 내 인생은 아직도 공사 중입니다. 보행에 불편함을 드리지는 않았는지요. 오래전부터 그대에게 엽서를 씁니다. 서랍을 열어도 온 천지에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 한평생 그리움은 불치병입니다.” 아마도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비’에서 같은 ‘그리움’의 심연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