Белой акации гроздья душистые

 

추억을 부르는 탐스러운 꽃

[아츠앤컬쳐] 봄의 끝자락에 피어나는 아카시아는 유난히 진한 향기를 내뿜는다. 고요한 오후, 아카시아나무 아래를 걸을 때면 문득 오래전 감정들이 몽글몽글 꽃송이처럼 피어난다. 맑은 공기를 타고 후각을 자극하는 아카시아의 향기는 지나간 시간과 기억의 조각들을 소환해낸다. 아카시아의 꽃말이 ‘불사의 생명력’이란 것이 믿어지는 순간이다.

루드밀라 센치나(Lyudmila Senchina)의 노래 ‘향기로운 아카시아 한아름’은 향기와 함께 떠오르는 그리움과 소망, 슬픔과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이다. 향기롭지만 오래 가지 않는 아카시아꽃처럼 기억에만 머무르는 사랑과 젊음이 가사안에 담겨 있다. 루드밀라의 목소리는 마치 부드럽게 살랑이는 초여름 바람 같이 마음 깊은 곳에 닿아 시적 언어를 풀어낸다. 20세기 후반의 러시아 노래들은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사랑과 이별, 인생의 찬란함을 되살릴 수 있었다. 바로 한 세기 전인 러시아 로망스 시대(Russian Romance Era)의 깊은 시상(詩想)의 문을 다시 두드리며 말이다. 그녀의 목소리가 ‘감정의 호수를 흔드는 바람’에 비유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루드밀라의 노래에는 러시아인의 깊은 감성과 시적 표현, 멜랑콜리가 담겨 있다. 로망스 시대가 그러했듯 시와 음악의 조화가 살아 움직인다. 이러한 느낌은 두 예술가로부터 출발하는데 바로 작사가인 미하일 마투소프스키(Mikhail Matusovsky)와 작곡가인 베냐민 바스네르(Veniamin Basner)이다.

이들의 협업은 세기를 넘어 러시아적 감수성의 깊고 충만한 울림을 되살려 놓았다. 과거 푸시킨, 레르몬토프, 튜체프와 글린카,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가 그러했듯 두 사람 또한 시와 음악의 조화를 노래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는 마치 가벼운 옷차림에도 격조를 잃지 않는 아리따운 뮤즈처럼 대중성의 틀 안에서 예술과 감성의 우아한 공존을 만들어냈다.

“꾀꼬리는 밤새도록 우리를 보고 울어대고, 도시는 침묵하고 집들도 잠들었건만 향기로운 하얀 아카시아 다발은 밤새도록 우리를 취하게 했네. 오! 우리는 얼마나 순수하고 젊었던가! 세월은 순식간에 흘러 우리를 백발로 만들고 향기로운 아카시아 다발은 내 젊음처럼 돌아오지 않네.”

아카시아 한아름’은 ‘로망스 시대’와 ‘로망스 음악’을 연결하는 특징을 갖는다. 언뜻 보아 두 개념은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 다른 전통에서 출발한다. 전자는 독일의 리트(lied)와 유사한 서정적인 예술가곡의 시대를 말하고, 후자는 집시 공동체의 민속음악으로 자유롭고 즉흥적인 영혼을 담아낸다.

이 두 음악 사조는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다 19세기 러시아 살롱 문화 내에서 교차 연주된다. 아카시아 한아름’은 시와 음악의 조화, 깊고 자유로운 진폭의 애수로 말미암아 두 음악 사조를 모두 품어 낸다. 그리고 이 경계에는 ‘검은 눈동자’나 ‘긴 길을 따라’, ‘빛나라, 빛나라, 나의 별’, ‘저녁 종’, ‘카츄샤’ 등 민중의 가슴을 적신 명곡들이 자리한다.

포도송이처럼 탐스러운 아카시아가 향기를 나누어 주는 날, 단정하고 차분하게 앉아 이 노래들을 듣고 싶다. 불사의 생명력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향기처럼 음악처럼 기억되고 불리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기에.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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