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통일의 역사를 증언하다
[아츠앤컬쳐] 콜로세움도 아니다. 베드로 대성당도 아니다. 장구한 역사가 중첩된 로마 시가지의 한복판에 세워진 건축물은 ‘빗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Monumento al Vittorio Emanuele II)이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신전 같은 이 하얀 기념관은 로마제국 최대의 원형경기장 콜로세움이나 세계 최대의 성전 베드로 대성당도 압도할 듯하다. 그럼 빗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누구인가? 그는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초대 왕이었다. 참고로, 이탈리아어 표기에서 겹친 자음은 모두 또박또박 발음하기 때문에 Vittorio는 ‘비토리오’가 아니라 ‘빗토리오’이다. 그것은 ‘도토리’와 일본지명 ‘돗토리’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이다. 또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이름이 두 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냥 ‘에마누엘레 2세’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럼 이탈리아 왕국은 또 무엇인가? 로마제국이 멸망한 다음 이탈리아는 갈기갈기 찢겨져서 오랫동안 여러 외세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1861년에 사보이아 왕가의 빗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를 구심점으로 하여 이탈리아 북동부 지방과 교황령을 제외한 채 일단 통일을 이룩했다. 이것이 이탈리아 왕국이다.
그러다가 1870년에는 끝까지 남아 저항하던 교황령의 수도 로마를 흡수함으로써 마침내 통일다운 통일을 이룩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꼭 150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로마는 다음해인 1871년에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통일’이라는 뜻으로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라는 말을 주로 쓴다. ‘다시 솟아남’이라는 뜻이다. 부활의 깊은 뜻을 담고 있는 표현을 쓰는 것은 과거의 찬란했던 역사를 다시 이어받겠다는 뜻이리라. 이 기념관은 과거의 영광을 증언하는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를 비롯한 로마제국의 유적들을 뒤로하고 우뚝 솟아 있으니, ‘리소르지멘토’의 의미가 더욱 피부에 와 닿는다.
리소르지멘토의 구심점이 되었던 초대왕 빗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1878년에 서거했다.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기념관건립 공모전이 열렸는데 젊은 건축가 삭코니(G. Sacconi)의 설계안이 선정되었다. 기념관은 1885년에 착공, 26년이 지난 1911년 6월 4일 제1차 이탈리아 통일 50주년을 기념하여 완공되었다. 20세기 초반에 완성되었으니까 로마의 중심지역 안에서는 아주 새 건물에 해당한다.
로마를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은 이 웅장하고 멋있는 기념관을 보고 찬탄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이 기념관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로마시민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이 기념관이 결혼 케이크 같다고 빈정거린다. 또 이 기념관은 북부 이탈리아의 브레샤 산(産)의 하얀 대리석으로 치장되어 있는데, 고대로마시대부터 로마에서 주로 사용하던 티볼리산(産) 돌 트라베르티노와는 색조가 달라서 로마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거슬린다는 것도 지적한다.
그리고 이 기념관은 이탈리아 통일 후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힌 집권층의 이상을 반영한 것 같으며, 또한 독재권력을 과시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고 꼬집는다. 더욱 강도 깊게 꼬집는 것은 이 기념관이 캄피돌리오 언덕을 완전히 가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기념관은 주변의 역사적인 분위기와 도시 맥락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웅장하게 세웠기 때문에 캄피돌리오 언덕의 존재가 완전히 무시되어 있다. 로마의 일곱 언덕 중에서 캄피돌리오 언덕은 예로부터 로마역사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어왔다. 그래서 옛날 수도 로마에 입성한 개선행렬은 캄피돌리오 언덕으로 향했으며, 이탈리아의 통일을 완성한 빗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도 북쪽에서 캄피돌리오 언덕을 향하여 로마로 입성했던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역사성 있는 건물은 하찮은 것이라도 복구하여 보존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건축평론가들과 지식인들은 이 기념관을 철거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하지만 요즘같이 북부 이탈리아 분리자들이 가끔 목청을 높이는 상황에서는 철거론은 금기사항이나 다름없다.
어쨌든 이 기념관이 이탈리아 통일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해준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뿐 아니다. 관광객들이 사진 찍을 때 이 기념관이 아주 멋진 배경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도 없다.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로마역사의 길을 걷다>,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동유럽 문화도시기행> 등 많은 책을 출간
europe21tainam@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