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김정호 작가는 ‘설악산 작가’로 통한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설악산에서 보낸다. 설악산의 감흥을 지척에서 담아내기 위해 강원도 속초에 작업실을 두었고, 경기도 부천의 작업실에서도 설악산 연작은 이어진다. 왜 그토록 설악산에 매료됐을까? 김 작가는 ‘설악산의 영적인 힘’에 이끌렸다고 한다. 실제로 설악산은 산세가좋고 기암괴석이 많아 영험한 산의 대명사로 정평이 나 있으며, 신흥사ㆍ백담사ㆍ봉정암ㆍ오세암 등 수많은 정진도량을 품고 있다. 그래서일까, 김정호의 설악산 그림은남다른 기운을 발산한다. 그것은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생동감이다.
설악산의 진면모를 고스란히 화폭에 담아내기 위해 김 작가의 노력은 아주 특별하다. 새벽 4~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목욕하고, 늦어도 7시면 그리기 시작한다. 물론 사시사철 현장사생을 고집한다. 특히 해가 완전히 뜨기 전에 설악산의 기묘한 에너지가 발산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쓴다. 새벽은 밤의 정기와 여명의 기운이 교차하는 시간이다. 휴식 없이 인간의 본성이 건강할 수 없듯, 원초적 땅도 순결한 침묵의 시간을 보내야만 보다 더 경이로운 아침을 선사할 수 있다. 김정호 그림이 지닌 생동감의 비밀 역시 그 ‘찰나를 스치는 낙원의 빛’을 잡아내는 것이다.
줄곧 설악산과 울산바위 그리기에 천착하는 김정호 작가를 보면 후기인상파의 대가 폴 세잔(Paul Cézanne)이 연상된다. 세잔은 중년 이후 고향인 엑상프로방스 근처에서 혼자 생활하며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특히 생트 빅트와르산의 독특한 모습에 사로잡혀 특유의 노력으로 미술사적 기념비로 기록될 연작을 탄생시킨다. “예술은 순수한 마음을 완전히 바쳐야만 그 결실을 볼 수 있는 사제직 같은 것”이란 세잔의 말처럼, 수많은 시간과 인내력을 쏟아낸 결과이다. 그런 면에서 김정호에게 설악산의 의미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장에서 명석함과 정밀함으로 신중하게 선택한색들은극적인 하모니로 캔버스의 진동을 깨우고 있다.
김정호와 세잔의 닮은꼴은 또 있다. 그의 그림에서도 원근법은 중요하지 않다. 원근법은 물체가 멀어질수록 작아져 점으로 소실된다는 원리이다. 이것은 평면에 입체를 옮겨야 하는 건축설계도에서 시작했다. 이 원근법은 1400년대 르네상스 시대 이후 회화에 적용됐다. 400여 년 흐른 인상주의 시대에서야 화가의 눈으로 본 햇빛의 변화에 주목했다. 원근법을 벗어나려는 노력의 결과는 바로 세잔에 의해 완성된다.
이성보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감흥은 풍성한 색감으로 감각적이면서도 영혼이 깃든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색을 이루는 수많은 조각들로 덧입히거나, 전통적인 명암법 대신 인위적인 명암을 만들고, 선과 색채로 자연 원성의 형태와 기운을 눈앞에입증해주고 있는 셈이다.
김정호의 그림엔 설악산과 그 주변의 사계절 풍경이 담겨 있다. 연초록의 풋풋한 봄 정경, 짙푸른 녹음의 여름 향취, 오색단풍 절경의 설렘, 흰 눈으로 뒤덮인 고졸미 등 어느 하나 놓치면 안 될 장면들이다. 그런데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런 계절감들은 무의미해진다. 오히려 그 모든 풍경의 시점이 하나로 느껴진다. 눈처럼 눈부신 벚꽃 향연이나, 새벽의 싱그러운 태양빛을 품은 산이나 도심 풍경은 낯설지 않게 한몸으로 엮인다. 그것은 김정호 작가가 어느 곳, 어느 시간에 있든 눈앞의 풍경을 마음으로 그린 심실경(心實景)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현장사생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던 김정호의 진정성이 보는 이의 마음속 망막에 어김없이 투영된 결과이다.
작가소개 | 김정호
김정호 작가는 설악산을 테마로 지속적인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실제 설악산이 지척인 속초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사계절의 다양한 설악산 표정을 화폭에 닮고 있다. 특히 울산바위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서, 춘하추동 다양한 시점의 울산바위를 제작 중이다. 그동안 16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기획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더불어 목우회, 경기미술대전, 모란미술대전, 행주미술대전, 소사벌미술대전, 벽골제미술대전 등의 심사위원을 지냈다. 또한 경인미술대전 대상, 단원미술제 최우수/특별상, 목우회 특선.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등 많은 수상 경력을 갖고 있다. 그의 작품은 청와대, 특허청, 전주법원, 울진군청, 부천시청, 안산시청, 한진그룹, 하림, 우성건설 등 여러 곳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목우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필자소개 | 김윤섭
미술평론가, 숙명여자대학교 겸임교수,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