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y Scheffer - Francesca da Rimini en Paolo Malatesta aanschouwd door Dante
Ary Scheffer - Francesca da Rimini en Paolo Malatesta aanschouwd door Dante

 

[아츠앤컬쳐] 철학적이고 심오한 주제를 대중적으로 푸는 재주를 가진 리들리 스콧이란 영화감독이 있다. 걸작 괴수영화 <에일리언>을 탄생시킨 사람이다. <에일리언>은 1979년 첫선을 보인 이래 각기 다른 감독의 지휘 아래 세 편의 시리즈로 발표됐고, 2012년 시리즈의 창시자 스콧감독은 인류의 근원에 관한 탐구를 담은 영화 <프로메테우스>에서 에일리언 탄생의 비밀을 보여주며 30여 년 만에 다시 에일리언과 조우한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17년 <프로메테우스>와 <에일리언> 사이의 이야기를 담은 <에일리언 커버넌트>를 발표하는데, 관련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또 다른 에일리언 시리즈를 구상하고 있으며 그 영화는 에일리언으로부터 A. I.로 방점을 옮기는 과정을 그릴 것이라 한다. 1979년의 창작을 2018년 가장 뜨거운 이슈와 연결시키는 작업이라니, 그 상상력과 집념에 그야말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최첨단 SF영화의 거장인 리들리 스콧 감독이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과 피치 가문 사이 피의 역사를 다룬 적이 있는데, 그 영화 <한니발>에는 오페라 콘서트 장면이 있다. 단테와 그의 첫사랑이자 그의 영원한 뮤즈인 베아트리체의 2중창. 단테의 작품 ‘La vita nuova(새로운 인생, 1295)’ 3장에 나오는 소네트를 모티브로 아일랜드 출신 작곡가 Patrick Cassidy에게 의뢰하여 만든 곡이다. 스콧 감독은 한 번으로 아쉬웠는지 같은 곡을 4년 후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의 장례식 장면에 다시 썼다.

단테는 중세 유럽의 걸출한 작가이고 그의 작품들은 지금까지도 많은 팬을 보유한 베스트셀러이다. 그런데 그의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경우처럼 오페라 원작으로 유명세를 얻은 경우가 매우 드물다. 신곡만 보아도 각각의 에피소드가 짧으면서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기에 두세 시간 길이의 오페라로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았을 것이다. 리스트나 차이콥스키의 기악곡에 모티브가 된 경우와 달리 충분한 서사가 필요한 드라마 장르에는 한계가 있었으리라. 지옥에서 만난 사기꾼 잔니스키키의 이야기에 상상력을 더해 만든 푸치니의 오페라도 잔니스키키의 이름과 그의 죄가 무엇인지만 원작에서 가져왔을 뿐 나머지는 순수한 창작이다.

단테의 신곡 속 지옥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조금 덜 알려진 작품 <Francesca da Rimini(라흐마니노프, 1906)>가 비교적 충실히 담고 있다. 단테가 지옥의 2단계에서 만난 프란체스카와 파올로는 정욕의 지옥에서 토네이도에 갇힌 채 영원히 고통받고 있다.

단테가 들은 그들의 사연은 이러하다. 절세미인 프란체스카와 정략결혼을 앞 둔 말라테스타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흉한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대신 남동생을 내세워 그녀와의 결혼을 성사시킨다. 결혼식 이후 진실을 알게 된 프란체스카는 남편을 섬길 것이나 사랑할 수는 없다고 하며 남편을 분노케 한다. 질투에 눈이 먼 말라테스타는 계략으로 아내와 동생의 만남을 유도하여 두 사람을 살해하고, 그렇게 두 사람의 영혼은 지옥에 빠지게 된다. 이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단테는 큰 슬픔에 빠진다. 그리고 “가장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순간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 떠오르는 것보다 더 슬픈 것은 없다.”는 말을 남긴다.

최근 사후세계와 심판을 다룬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음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하기 마련이다. 다녀와 본 이 하나 없는 일방통행 길이기에 두려우면서도 호기심이 생긴다. 죽음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인간의 발전이 시작됐다. 그 발전의 결과 문명이 생겼고 수많은 발자취가 지금까지 이어졌다. 사는 것도 힘든데 죽은 후의 일까지 걱정해야 하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비법이 아닐까. 끝이 있기에 비로소 삶이 의미를 갖는 게 아닌가 말이다.

신금호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오페라로 사치하라'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www.mcultur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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