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의 벽
통곡의 벽

[아츠앤컬쳐] 어린 시절 자주 듣던 국제분쟁에 관한 용어 중 화약고라는 말이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를 비유하는 말이었는데 그 화약고 하면 뭐니 뭐니 해도 팔레스타인 지역의 분쟁이 으뜸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오스만 터키의 영향권에 있었던 팔레스타인 지역은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의 영향력 하에 들어갔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과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1948년 이스라엘이 세워졌다. 유럽에서 고리대금업자라는 편견 속에서 아우슈비츠 같은 홀로코스트(대학살)의 과정을 통해 영원히 떠돌이로 지낼 것 같던 유대인들이 나라를 세우게 된 것이었다.

1947년 UN에서는 분쟁의 소지가 많은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의 특수성을 고려해 국제법상 중립지대로 선포했다. 하지만 세계 30억 인구의 종교적 고향으로 여겨지는 예루살렘을 그 누구도 양보할 수 없었기에 4차에 걸친 중동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1967년 3차 중동전쟁(6일 전쟁)에서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자신의 수도로 공표했지만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이후 극심한 팔레스타인의 저항과 이스라엘의 보복 역사가 이어져 오다 1993년 오슬로 협정으로 맺은 예루살렘의 2 국가체제를 이행하자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런데 2017년 정확히 UN의 예루살렘 중립지대 선포 70년 만에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 공식적으로 외치고 텔아비브에 있는 미국대사관까지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고 선포했다. 이에 팔레스타인 저항단체 하마스는 트럼프가 지옥의 문을 열었다며 전쟁을 선포한 상태다.

겉으로는 그 지역의 평화를 부르짖던 미국 대통령이 갑자기 돌변한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은 쭉 완벽하게 이스라엘 편이었다. 매년 미국은 이스라엘의 15조 국방비의 20%인 3조 원 이상을 지원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접경지역 중 거의 유일한 우방국인 이집트에도 매년 2조 원 지원하고 있다. 미국의 우리나라 국방지원금이 2003년을 마지막으로 현재 제로인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지원이다. 그리고 미국의 최신 무기가 가장 신속하게 다운 그레이드 없이 도입되는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그리고 주변의 중동국가들에 무기를 팔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동의 없이는 힘들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대선 공약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수도 선언이다. 다만 중동지역의 평화 유지를 위해 이행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미국 대통령의 당선에 큰 영향을 미치는 유대인들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민주당에 지원하는 유대인 정치자금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공화당에 들어가는 정치 후원금액의 25%가 유대인 자금이고 특히 이번 트럼프 대선 승리에 유대인들의 지원이 막강했다고 한다. 어쩌면 유대인이 미국의 정치를 좌지우지할 힘이 있는 것 아니냐 하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지만 과거 그들의 역사는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히브리 민족은 국가를 이루기 전 지금의 비옥한 가나안 지역에서 살다가 이집트로 끌려가 노예 생활을 했으며 모세에 의해 이집트를 탈출해 고생 끝에 가나안으로 돌아와 나라를 세우고 다윗과 솔로몬의 부흥기 이후 갈라진 후 북이스라엘은 무슬림계의 아시리아에, 남 유다는 신 바빌론에 정복당하게 된다. 이후 페르시아에 지배당하고 로마의 지배를 받았던 수난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이 무너지며 바빌론에 지배당하던 시절을 담은 오페라가 바로 베르디의 ‘나부코(1842년, La Scala초연)’다. 나부코는 우리나라 성경에 느부갓네살왕으로 등장하는데 신 바빌론의 유명한 왕이었다.

오페라의 스토리는 이렇다. 남유다를 침공해 승리를 거둔 나부코 왕에게는 두 딸이 있는데 왕위를 계승 받기 원하는 야심가 첫째딸 ‘아비가일레’와 남유다에 포로로 잡혀있는 둘째 딸 ‘페네나’. 하지만 첫째 딸은 노예의 자식이었기에 둘째 딸이 왕위서열에서 우위에 있음을 발견한 첫째 딸의 쿠데타이야기이다. 신이 되고자 했던 나부코는 천둥번개와 함께 신의 저주에 의해 미쳐버리게 되었고 그 틈을 타 아비가일레가 왕위를 찬탈하지만 다시 정신을 차린 나부코의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은 유대교로 개종한 둘째 딸의 사형 직전의 비참한 모습이었다. 자신의 죄를 반성하고 신께 용서를 구한 후 첫째 딸로부터 왕위를 다시 찾고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으며 끝난다는 해피엔딩 스토리다.

이 작품은 베르디를 최고 작곡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이며 아내와 자식을 잃고 슬럼프에 빠져있던 그에게는 구원의 작품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그리고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 등 외세의 영향력이 계속되던 북이탈리아의 상황이 겹쳐져 구슬픈 멜로디가 유독 두드러지는 오페라였기에 이탈리아의 모든 국민들은 베르디를 영웅으로 대접했다. 특히 오페라 3막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부르는 유명한 합창곡 ‘히브리 노예의 합창’은 자주 콘서트에서 합창곡만 따로 공연되기도 한다.

UN과 EU는 정면으로 트럼프의 예루살렘 수도 선언에 반대하고 있다. 아무리 세계가 반대해도 파리 기후협정을 시작으로 한 트럼프의 국제협정 탈퇴 행진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어떤 것이 정말 해법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이런 상황의 해결이란 인간의 능력 밖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페라 나부코처럼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하는 염원이 이루어지는 2018년이 되기를 기도한다.

신금호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오페라로 사치하라'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www.mcultur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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