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오페라 ‘아이다’는 분명 특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초연 당시 세계 여러 나라에서 관객들이 카이로로 몰려들었다. 유럽이 아닌 이집트에서 초연된 베르디의 작품이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장대하고 이국적인 무대가 청중들을 압도했다. ‘아이다’는 다음 해에 이탈리아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베르디의 지휘로 유럽 초연이 이루어졌으며, 그 이후에는 뉴욕, 런던 등 세계의 주요 도시들에서도 호평을 받아 베르디의 명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오페라가 유럽이 아닌 이집트에서 초연된 이유는 이러하다. 오페라 ‘아이다’는 이집트의 국왕이 수에즈 운하의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최고의 작곡가 베르디에게 의뢰하여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고대 이집트 학자인 오귀스트 마리에트의 원작을 드로크르가 프랑스어 각본으로 만들었고 기슬란초니가 이탈리아어로 대본을 완성했다.
홍해와 지중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가 건설되고 있는 동안 이집트의 국왕은 운하의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 최고 수준의 오페라를 공연하고 싶어 했다. 자국 산업의 역사적 순간을 위해 최고의 예술 작품이 함께하길 원했던 것이다. 이집트의 국왕은 다른 작곡가가 아니라 오페라의 최고봉인 베르디의 작품을 원했다.
그렇지만 당시 베르디는 파르마의 부근의 농원에서 아내와 더불어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었고 오페라 작곡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이미 수많은 대작들을 발표하고 ‘돈 카를로’를 마지막으로 하여 사실상 오페라 작곡은 하지 않고 있었다. 오랫 동안의 노고로 인해 작곡은 하지 않고 전원에서 조용히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집트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더구나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들도 베르디의 결심을 미루어지게 한 원인이 되었다.
그렇지만 베르디는 작품의 초고를 읽고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그 소재로 대본을 써서 오페라를 만들면 대단히 흥미로울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아이다’였다. 이집트의 꾸준한 설득과 이국적 소재들이 결국 베르디를 움직이게 하였고 베르디는 또다시 역사에 남을 명작을 작곡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다’는 운하가 개통되고 2년이나 지난 1871년 크리스마스 이브에야 카이로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될 수 있었다. 작품은 이미 완성됐지만 유럽의 정치적인 상황으로 인해 초연이 미루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카이로에서의 초연은 대성공이었고 베르디는 다시 한번 최고의 작곡가로서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작품의 배경은 고대의 이집트, 거대한 무대 세트와 의상들이 청중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파라오가 통치하는 멤피스와 나일강변의 도시 테베를 배경으로 여주인공 아이다의 사랑과 희생이 줄거리의 중심이 되었다. 이집트의 무장 라다메스와 포로인 에티오피아의 공주 아이다와의 사랑이 이집트의 공주 암네리스와의 삼각관계 속에서 풍랑을 겪게 된다.
제작 과정에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베르디의 노력도 많았다고 한다. 베르디 자신이 고대 이집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조사하였으며 대본 작업에도 관여했다고 한다. 오페라 극장 측에서도 많은 제작비를 지원하였고, 의상은 유럽으로부터 주문하여 가져오기로 하였다.
마침내 1871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아이다’는 카이로의 극장에서 화려하게 막을 올렸다. 당시 유럽 최고의 작곡가로 군림한 베르디는 이집트의 이국적인 이야기로 다시 한번 역사에 남을 대작을 남기게 되었다. 외국으로부터의 지원과 작곡가의 열정이 함께해서 역사의 대작이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도 세계의 대작으로 사랑받는 ‘아이다’는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글 | 이석렬
2015 예술의전당 예술대상 심사위원, 2015 이데일리 문화대상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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