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슈베르트

[아츠앤컬쳐] 작곡가 슈베르트는 31살이라는 짧은 인생을 살았다. 노래를 좋아하고 작곡을 좋아하던 청년은 세상의 큰 인정을 받지 못하면서도 자신의 머리에 떠오르던 악상을 열심히 종이에 적곤 했다. 그리고 어느 늦가을 밤에 조용히 이 세상을 떠나갔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10년이 지났을 때였다. 그해의 어느 날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도시 빈을 방문한 작곡가 슈만은 평소에 존경하던 두 작곡가의 묘소를 찾았다. 바로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묘소였다.

슈만이 음악가의 길로 접어든 것은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후의 일이었으며 그 후로 슈만은 슈베르트의 작품들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음악적으로는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슈만은 슈베르트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것이다.

베토벤과 슈베르트가 살아있을 때 그들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슈만의 아쉬움은 컸던 것 같다. 이런 아쉬움은 슈만으로 하여금 슈베르트의 친형 페르디난트를 방문하게 했다. 슈베르트의 묘소를 방문한 직후에 슈만은 페르디난트의 집을 찾아갔다. 슈베르트의 형 페르디난트는 슈만을 반갑게 맞이해주었는데 그때 슈만에게 동생의 유작 악보들을 보여주었다. 슈베르트의 유작들을 본 슈만은 몹시 반가워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거기에 놓여 있는 악보들을 보고 나는 매우 기뻐서 온몸이 떨렸다. 특히 교향곡의 스코어를 보았는데 그것은 아직 한 번도 연주되지 않은 것이었다!”

그때 슈만이 발견한 교향곡이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 C장조 ‘그레이트’ D944이다. 슈만은 이 교향곡을 읽어 내려가면서 상당히 감탄을 했던 듯하다. 후일에도 슈만은 이 교향곡의 내용에 대해 많은 감탄사를 남겼고, 자신의 교향곡에서도 이 교향곡에서 받은 영향을 보여주었다.

페르디난트의 허락을 받은 슈만은 이 악보를 가지고 와서 자신의 동료인 멘델스존에게 악보를 전해주었다.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의 지휘자 멘델스존은 이 곡의 악보를 넘겨받아 1838년 봄에 이 곡을 초연했다. 초연은 성공적이었으며 이는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나고 10년만의 일이었다. 슈만은 이 작품의 초연에 대해 이렇게 감격을 표현했다.

“이 훌륭하고 숭고한 교향곡도 만약 내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의 지휘자 멘델스존에게 보이지 않았다면 영원히 먼지투성이가 되어 방치되었을 것이다. 희망은 달성되었고 이 교향곡의 연주는 대환영을 받게 되었다!”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 C장조 ‘그레이트’ D944는 이렇게 해서 역사에 빛을 발하게 되었다. 슈베르트 예술에 대한 슈만의 사랑이 이 교향곡의 빛을 발하게 한 것이다. 이 교향곡은 ‘그레이트‘라는 별명답게 커다란 몸집을 지니고 있다. 악보의 반복지시를 모두 따르면 55분여에 달하는 긴 시간을 지니게 되고 관악기 차원에서도 큰 스케일을 자랑한다.

작곡가 슈만은 자신이 운영하던 출판물 ‘음악신시보’를 통해 당시의 여러 음악가들을 추천하고 격려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쇼팽과 브람스 같은 작곡가들을 세상에 소개하고 격려했지만, 슈베르트의 작품 발굴 일화에서는 세상을 떠난 예술가를 추모하고 기념하는 또 다른 일면을 보여주었다.

슈베르트가 별다른 유명세를 갖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인생을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던가! 슈베르트의 예술이 지금도 많은 이들을 감탄시킨다. 슈만의 지녔던 예술에 대한 사랑이 우리 사회에 더 많이 퍼지기를
바란다!

글 | 이석렬
2015 예술의전당 예술대상 심사위원, 2015 이데일리 문화대상 심사위원
https://www.facebook.com/sungny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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