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남긴 하늘, 캔버스에 아크릴, 42cm x 31cm/ 2014
당신이 남긴 하늘, 캔버스에 아크릴, 42cm x 31cm/ 2014

[아츠앤컬쳐] 이탈리아 중부의 푸른 심장이라 불리는 움브리아주의 수바시오산 비탈에는 작지만 큰 에너지를 뿜어내는 평화로운 마을이 있다. 움브리아 평원을 한참 달리다 보면 산 위에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천상의 마을. 어떤 수식어가 더 필요할까. 성자 프란체스코의 발자취가 구석구석 새겨진 그곳은 바로 아씨시. 평야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서면 소란스럽던 마음은 어느새 자취가 없다. 가만히 눈을 감고 한참을 평온한 기운에 나를 담가두었다.

몇 년 전, 로마로 이동하는 중에 점심을 위해 잠시 들렀을 때 나는 머지않은 때 다시 이곳을 찾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동차에서 본 하얀 마을이라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기대도 없이 들렀던 곳. 작은 마을의 꾸미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에 내 여행의 피로와 긴장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풀어져 발걸음이 느려졌다. 아씨시는 조용히 산책하거나 한가롭게 배회하기에 좋은 마을이라는 것을 걸을수록 느꼈다.

좁고 가파른 골목길과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집 사이로 보이는 아씨시의 평원은 보이는 곳마다 그림 속 한 장면이었다. 골목골목 오랜 전통의 맛집들이 뽐내거나 자랑하는 일 없이 숨어 있고 빛바랜 프레스코화는 쌓인 시간을 천천히 보여주었다. 그렇게 몇 시간 만에 자리를 떠야 했던 지난 여행에서 나는 이미 다음 여행지의 핵심 포인트로 아씨시를 적어두었다. 그렇게 다시 아씨시를 찾은 이 순간. 마을 광장으로 향하는 걸음에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나는 숙소에 짐도 풀지 않은 채 카메라만 꺼내 산타 키아라 성당으로 걸었다. 특이하게도 분홍빛이 감도는 돌로 지어진 산타 키아라 성당 앞에 서니 어머니가 계신 집에 들어선 듯 편안함이 느껴졌다. 광장 주변의 담장에 앉아 고개를 돌리면 아씨시 평원이 눈에 다시 들어온다. 평화로운 순간이란 바로 이럴 때일 것이다. 따사로운 오후 햇살에 나무들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점차 노을로 물들어가는 들이 그 어떤 그림보다 아름답다. 산비탈을 따라 모여 있는 올리브 나무들은 충만한 생명력으로 햇살에 반짝반짝 윤기가 흘렀다.

아씨시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가톨릭 성지로 유명하다. 이곳은 성 프란체스코의 고향이며, 그의 삶이 이곳에 남아 있기 때문에 순례자들을 포함한 많은 관광객이 늘 이곳을 찾는다. 중세 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아씨시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한 멋과 아기자기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글 | 배종훈
서양화가 겸 명상카툰과 일러스트 작가. 불교신문을 비롯한 많은 불교 매체에 선(禪)을 표현한 작품을 연재하고 있으며, 여행을 다니며 여행에서 만난 풍경과 이야기를 소소하게 풀어 놓는 작업을 하고 있다. 또, 현직 중학교 국어교사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bjh4372@hanmail.net / www.facebook.com/jh.bae.963

저작권자 © Arts & Cultur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