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다05, 캔버스에 아크릴, 32cm x 41cm, 2010
흔들리다05, 캔버스에 아크릴, 32cm x 41cm, 2010

[아츠앤컬쳐] 

베네치아는 한때 지중해 전역에 세력을 떨쳤던 해상공화국의 요지였으며 오늘날에는 주로 운하·예술·건축과 독특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로 유명한 도시다. 계절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베네치아 주민의 대다수가 관광업과 유리·레이스·직물 생산같은 관광 관련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베네치아 건축물은 다양해서 이탈리아·아랍·비잔틴·고딕·르네상스·마니에리즘·바로크 양식 등이 모두 나타난다. 수 세기 동안 베네치아의 사회·정치 중심지였던 산마르코 광장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광장으로 손꼽힌다.

 

카페 플로리안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로 베네치아의 상징 중 하나이다. 1720년 12월 19일에 베네치아의 승리를 뜻하는 ‘알라 베네치아 트리온판테’라는 이름으로 플로리아노 프란체스코니가 개업했는데 그의 이름 플로리아노의 베네치아식 이름인 ‘플로리안’을 따서 만들었다. 개업 이후 영업을 멈추지 않고 이어와 이제는 베네치아의 상징으로 지역 주민과 관광객이 방문하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이 카페는 유명 인사들이 방문한 곳으로 유명하기도 한데, 특히 카사노바는 당시에 플로리안이 유일하게 여성의 출입이 가능한 카페라는 점을 이용해 이 카페를 드나들었고, 괴테, 바이런 경, 카를로 골도니, 마르셀 프루스트, 찰스 디킨스 등도 이 카페를 자주 방문했다. 플로리안 프란체스코니의 손자인 발렌티노 프란체스코니가 19세기 초까지 운영을 맡은 후, 그의 아들 안토니오에게 카페가 물려졌고 1858년부터는 빈첸조 포르타, 조반니 파르델리, 피에트로 바카넬로가 이 카페를 인수하여 운영을 지속했다.

나는 잠시 양해를 구하고 여러 방들을 구경한 후 베네치아 작가들의 그림이 걸린 저명인사의 방에 자리를 잡았다. 약 300년 동안 이 카페. 이 자리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앉고, 이야기 나누고, 차를 마셨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울렁거렸다.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사진과 메모, 그림을 그렸다. 혼자서 이리저리 카메라를 움직이며 셀프 타이머로 사진을 담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나이 지긋한 매니저가 직접 사진을 남겨 주었다.

창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화창한 베네치아도 좋지만 비 내리는 베네치아는 물의 도시라는 별명과 더욱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마지막 한 모금 남은 커피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광장으로 나왔다. 우산이 없었지만 특별한 목적지 없이 베네치아의 골목길을 무작정 쏘다니고 싶었다. 쏟아지는 빗속에 인적 없는 골목길과 작은 광장, 수로, 운하와 다리들은 온전히 나 혼자만의 세상이고 혼자만의 베네치아가 되었다.

다시 리알토 다리에 도착하기 전 일찍 문을 닫은 레스토랑 처마 밑에서 옷과 모자를 흠뻑 적신 빗물을 털어냈다. 사실 주기적으로 상승하는 아드리아 해 북부의 조류 현상과 베네치아 석호로 불어오는 남풍 시로코, 아드리아 해 연안의 차고 건조한 북동 계절풍인 보라 때문에 산마르코 광장은 겨울철 우기가 되면 여기저기 침수가 된다. 이렇듯 바다와 바람이 만나 해수면이 상승해 베네치아를 물에 잠기게 하는 현상을 ‘아쿠아 알타’라고 부르는데 점점 더 굵어지는 빗물에 베네치아가 금방이라도 아드리아 안으로 수장되면 어쩌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 빗줄기는 점차 줄어들었다.

어느새 비가 멈춘 회색빛 먹구름 사이로 해가 지고 있었다. 리알토 다리 위에서 아드리아 해와 베네치아의 하늘이 어스름 속에 하나가 되어가는 모습을 응시했다. 떡갈나무 말뚝에 매어둔 곤돌라와 보트들이 운하 위에서 출렁거렸고, 파도는 선창에 부딪히며 어지럽게 흩어졌다. 여행자들이 사라진 베네치아에서 어느 누구의 간섭도 없이 오래도록 베네치아를 마주보았다.

글 | 배종훈
서양화가 겸 명상카툰과 일러스트 작가. 불교신문을 비롯한 많은 불교 매체에 선(禪)을 표현한 작품을 연재하고 있으며, 여행을 다니며 여행에서 만난 풍경과 이야기를
소소하게 풀어 놓는 작업을 하고 있다. 또, 현직 중학교 국어교사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bjh4372@hanmail.net / www.facebook.com/jh.bae.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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