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티브 피카소 미술관 테라스
앙티브 피카소 미술관 테라스

[아츠앤컬쳐] 1946년 피카소는 파리를 떠나 7년 전 우연히 잠시 머물렀던 프랑스 남부의 작은 항구마을 앙티브로 내려와 살았다. 그는 지중해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고성에 작업실을 차리고 불과 2개월에 불과했지만 끝없이 펼쳐지는 지중해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그림, 판화, 드로잉, 도자기 등 3백여 점에 가까운 많은 작품을 만들어 내었다.

앙티브 피카소미술관
앙티브 피카소미술관

앙티브의 피카소 미술관은 피카소가 작업장으로 삼았던 건물로 미술관으로 개조되기 전까지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유서 깊은 건물이었다. 그리스 시대에 건축되어 로마 시대에 성채로 사용되었으며 1385년 그라말디 가문이 성으로 축조했고 앙리 4세와 쉴리 등이 이 성을 구입하기도 했었다. 1925년 프랑스 정부에서 이 건물을 8만 프랑에 매입하며 국가 소유가 되었고 1946년 앙티브시에서 피카소에게 이곳을 거처이자 작업실로 내주게 되면서 앙티브와 피카소의 인연이 생기게 되었다. 그 후 1966년 피카소 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아티스트 피카소를 위한 첫 미술관으로 오픈하게 되었다.

피카소의 삶의 기쁨
피카소의 삶의 기쁨

프랑스 남부 특유의 따뜻한 햇살과 푸른 지중해라는 아름다운 모습에 사로잡혀서일까 인간의 광기와 폭력성에 실망을 하고 전쟁을 고발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레지스탕스를 돕기에 바빴던 피카소는 이곳에서 삶의 기쁨이라는 작품을 남기게 된다. 그림 속에 밝고 안정적인 색채와 터치는 마치 이곳에서는 아름다운 삶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미술관은 규모가 작지만 의외로 많은 피카소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멋진 감상 시간을 즐길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호안미로, 한스 하르퉁, 안나에바 베르만 등 피카소와 인연이 있는 작가들의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어 볼거리가 풍부하다. 미술관의 작품들은 프로방스에서도 특히 아름답기로 유명한 앙티브의 지중해 풍경과 어우러져 더욱 근사한 느낌이 든다. 특히 피카소가 앙티브의 아름다움에 반해 캔버스가 아닌 이 성의 벽면에 그린 벽화들이 상당히 인상 깊다.

니콜라 드 스탈의 콘서트
니콜라 드 스탈의 콘서트

하지만 이 매력적인 미술관에서 유난히 많은 관람객의 발길을 머물게 하는 작품이 있다. 의외로 피카소나 그의 친구들의 작품들이 아닌 바로 니콜라 드 스탈의 ‘콘서트’라는 작품이다. 전시실의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콘서트’의 빨간색 면은 언제나 관람객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니콜라드 스탈
니콜라드 스탈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오기 전까지 니콜라 드 스탈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항상 그의 작품 앞에서는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콘서트’는 1955년 3월 니콜라 드 스탈이 죽기 몇 시간 전까지 그린 미완성의 작품으로 생애 마지막 직전에 본 콘서트에서 얻은 영감을 그린 작품이다. 보통 콘서트가 끝나면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를 스테이지에 놔두게 되는 것처럼 아마도 인생이라는 콘서트의 마지막을 암시하는 듯하다. 레드와 검은 피아노, 그림은 단순한 형태지만 그의 격정적인 심리 상태가 마치 콘서트의 열기처럼 강렬하게 뿜어져 나온다.

피카소 미술관 앞 하우메플렌자의 노마드
피카소 미술관 앞 하우메플렌자의 노마드

니콜라 드 스탈은 러시아 출신의 화가로 프랑스와 미국 등에서 활동했다. 어려서 조국에서 일어난 혁명 때문에 불가피하게 폴란드로 이주했으며 부모를 잃는 바람에 벨기에에 사는 러시아인 가정에서 어렵게 성장했다. 이후 벨기에 왕립학교에서 잠시 미술수업을 받고 그 후로는 모로코, 네덜란드, 스페인, 알제리 등을 방랑하며 여러 대가들의 그림에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에 프랑스 외인부대에 자원입대해 튀니지에서 자원 복무하기도 했다. 세잔과 브라크 등의 영향을 받기도 했으며 이후에는 놀랍게도 구상화와 추상화의 경계에서 균형을 완벽히 이루어내었다는 찬사를 받으며 프랑스의 가장 영향력 있는 화가로 등장했었다.

앙티브 피카소 미술관
앙티브 피카소 미술관

하지만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프랑스 화단의 중심으로 떠오르자 비평가들과 미술평론가들은 그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결국 1954년 극심한 우울증을 앓으며 동료와 친지들과의 연락을 일절 끊고 프로방스의 앙티브에 새로 마련한 아틀리에로 자리를 옮겨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그림으로 불태웠다. 그리고 이듬해 41세의 나이로 가야 할 길을 잃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그리다 만 콘서트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격정적인 레드로 표현된 그의 슬픔은 고스란히 블루의 잔잔한 바다와 대비를 이뤄 관람자
들의 마음속에 더욱 깊이 전달된다.

앙티브 미술관은 프랑스 남부 특유의 따뜻한 햇살과 멋진 작품들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매혹적인 미술관으로 손꼽힌다. 아무리 시간에 쫓기는 여행일지라도 앙티브 피카소 미술관 만큼은 오후 햇살 가득한 시간에 방문해 바다가 보이는 야외테라스에서 넉넉한 시간을 즐기고 천천히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을 꼭 마련하자.

글·사진 | 강정모
유럽가이드이자 통역안내사로 일하며 세계 유명 여행사이트인 Viator 세계 10대 가이드로 선정된 바 있다. 롯데백화점 문화센터와 여러 기업에 출강하며, 아트 전문여행사 Vision tour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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