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파리에는 아름다운 정원들이 많다. 프랑스 스타일의 정원과 생태 정원 그리고 소르본 학생들의 만남의 장소로 사용되는 정원까지 매우 다양한 정원들이 곳곳에서 많은 방문객들에게 휴식을 제공해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누군가 나에게 가장 가볼 만한 정원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로댕정원을 소개할 것이다.
전형적인 프랑스의 정원처럼 화려하고 넓지는 않지만 18~19세기에 흔히 미켈란젤로와 비교가 되었던 최고의 조각가 로댕의 대표적인 조각들을 곳곳에서 휴식과 함께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심 한가운데서 아름다운 식물들과 함께 이와 같은 유명 갤러리에서나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예술적 조형성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있다고 하더라도 로댕에 필적한 예술작품들은 아닐 것이다.
로댕 미술관이자 정원은 대도시 파리의 차량들로 인해 북적북적 소음들로 다소 시끄러운 지역이지만 높은 담벼락 안으로 들어서면 일순간 고요해지는 대도시 속 비밀의 공간과도 같은 곳이다. 특히 꽃이 피는 4월과 10월 사이에는 그 느낌이 훨씬 아름답고 예술적이다.
현재의 로댕 갤러리와 정원은 본래 오랜 세월 동안 ‘비롱 저택’으로 불리었던 귀족의 저택이었다. 18세기 중반 로코코 양식으로 지어진 저택은 비롱 공작이 오랫동안 본인의 저택으로 사용해 왔고 프랑스 혁명 이후에는 수도원으로 사용된 건물이다. 한때는 철거 위기에 닥치기도 했었지만 정부 소유의 임대용 건물로 용도가 바뀌게 되면서 화가 앙리 마티스, 배우 에두아르드 막스, 작가 장콕도,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 예술가들이 작업실로 임대 사용하면서 지금까지 그 모습이 잘 관리되어 왔다.
로댕이 이 저택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통해서였다. 1908년 릴케의 부인이었던 조각가 클라라가 비롱 저택의 일부를 작업실로 사용했었는데, 1908년 릴케가 아내의 작업실에 로댕을 초대한것이 인연이 되어 1층 일부를 자신의 아틀리에로 임대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비롱 저택에 머물며 생을 마치기를 희망하면서 로댕은 자신이 가진 모든 소장품을 기증하는 조건으로 정부와 함께 저택을 미술관으로개조하기로 약속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로댕은 미술관이 개관하기 전인 1917년 세상을 떠났지만, 현재 정원은 예술가들과 파리의 시민들이 가장 추앙하고 사랑하는 정원이 되었다.
로댕의 미술관은 야외 전시장인 정원과 실내 전시장으로 나뉜다. 현재 정원의 모습은 비롱 저택일 당시의 인공적인 프랑스식 정원 모습과 로댕이 살던 당시의 자연주의적 모습이 적절히 잘 섞여 현대적인 모습으로 조성되어 있다. 야외 전시장인 정원은 꽃과 여러 식물들로 꾸며져 있고, 군데군데 로댕의 대표작들을 청동상으로 전시하고 있다.
정원에서 첫 번째로 만나게 되는 작품은 로댕의 가장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유명한 <칼레의 시민들>이다. 여섯 명의 남성들이 무리 지어 있는 청동 조각인 <칼레의 시민들>은 단연 로댕의 조각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14세기 프랑스의 한 연대기에 모티프를 딴 이 작품은, 프랑스가 영국과의 백년 전쟁을 치를 당시 프랑스 북서부의 도버해협을 끼고 있는 작은 항구 도시였던 칼레시가 오랜 저항 끝에 항복한 날, 6명의 도시를 대표하는 시민을 스스로 뽑아 교수형에 처할 것을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가 철수 조건으로 내걸었고 이에 칼레 시민들은 분노하고 혼란스러워했지만 자발적으로 가장 부유했던 시민 지도자였던 유스타슈드 생 피에르가 자신이 먼저 죽겠다고 나서면서 이에 다섯 명의 또 다른 시민들이 숭고한 희생양의 대열에 자처해 나선다는 내용의 조각이다.
이 작품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즉 사회 지도층 혹은 상류층이 사회적 위치에 걸맞는 모범을 보여야 하며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예시를 가장 잘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죽기를 자청한 여섯 명의 지도자들은 교수형을 당할 때 쓰일 밧줄을 목에 두르고, 칼레 성의 열쇠를 손에 든 채 맨발로 왕 앞으로 나아가는 절망적이고 지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꽉 다문 입술을 통해 죽음 앞에 혼신을 담아 결연한 의지를 쥐어짜내는 인간적인 고통이 매우 잘 표현되어 있어 감동을 자아낸다.
곧이어 몇 발자국만 가면 우리에게도 너무나도 익숙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생각하는 사람>은 1880년 파리의 장식학교 청동문을 조각해달라는 의뢰를 받아 제작한 단테의 <지옥문>의 상단 패널에 놓이게 될 작은 부조였으나 작업이 지체되는 바람에 부조만을 큰 조각상으로 따로 제작한 작품이다.
로댕은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 “뇌와 찌푸린 이마, 굳게 다문 입술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 팔과 다리의 모든 근육 그리고 꽉 움켜쥔 주먹과 오므리고 있는 발가락까지 모든 것이 치열하게 생각하는 증거다.”라고 직접 설명한 것처럼 고통 속에 울부짖고 있는 영혼들을 쳐다보며 깊은 상념에 잠겨 있는 단테 또는 자신의 모습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서양 미술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조각가로 평가받는 미켈란젤로의 작품들과 비견해도 손색이 없다는 평을 받을 정도다.
<생각하는 사람>은 워낙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기에 세계 곳곳에서 그 이미지를 찾아볼 수 있는데, 서울 중앙대학교 캠퍼스에서도 만날 수 있고 반포 아파트 단지에는 마치 레고 블록으로 만든 모습으로 조각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반포 한강 나들목에 있는 산책로의 한 벤치에는 <생각하는 사람> 이미지가 동판으로 새겨져 있는 일명 로댕 벤치도 찾아볼 수 있다.
눈부신 햇살과 함께 파란색 조경나무 그늘 아래서 ‘신의 손을 가진 사나이’라 불리었던 로댕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로댕정원. 이 정원을 마음껏 즐기고 산책하는데 단돈 2유로면 충분하다는 것이 놀랍다. 설마 <칼레의 시민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정신을 이어받고자 책정한 입장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 시즌의 로댕정원은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이나 프랑스 왕가의 베르사유 정원 버금가게 아름다울 것이다. 아니 예술적인 면만 따지자면 그 이상일 수도 있다. 이맘때쯤 파리를 여행하는 많은 이들에게 로댕정원을 꼭 빼놓지 말고 방문하라고 전하고 싶다.
글·사진 | 강정모
유럽가이드이자 통역안내사로 일하며 세계 유명 여행사이트인 Viator 세계 10대 가이드로 선정된 바 있다. 롯데백화점 문화센터와 여러 기업에 출강하며, 아트 전문여행사 Vision tour를 운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