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인생이란 그저 걸어 다니는 그림자일 뿐,
주어진 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자신을 뽐내지만,
안달하는 사이 영영 사라져 버리는 가련한 배우인 것이다.
인생은 백치가 떠드는 이야기.
시끄러운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차 있지만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일 뿐.” -맥베스

TV에 정우성이나 조인성이 나오면 세상의 모든 남자들과 남편들은 오징어가 된다. ‘옆집 아저씨를 보려고 영화관에 온 게 아니라 저런 배우들 보려고 돈 내는 거다.’라며 아내가 열변을 토할 때마다 격하게 동의를 표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래서 내 취향은 아니더라도 영화를 보러 갈 때 잘생긴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가 걸려있을 때만큼은 영화 선택권을 타의에 의해 포기하곤 한다. 올해 초 개봉한 영화 ‘더 킹’에는 무려 정우성과 조인성이 동시에 등장했다.

권력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비리검사 역의 정우성. 여성들이 기대하는 흔한 멜로의 주인공이 아닌 일명 팬심 파괴 캐릭터로 나올 때마다 짜릿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영화 속에는 역대 대통령의 선거 풍경이 묘사된다. 그리고 중심인물들은 줄을 잘 서는 것이 권력 제1생존법칙이라 말한다. 그래서 자신이 선 줄에서 반드시 대통령이 나오도록 굿판을 벌여 지극정성으로 손바닥을 비비며 머리를 조아리는 장면이 나온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지푸라기 한 줌이라도 잡고 어디라도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 인지상정인가 보다. 과장된 상황 설정인가? 정말 저랬을까? 지금도 비슷할까? 궁금하다.

이런 비슷한 이야기들이 여기저기 전설처럼 너무나 많지만 셰익스피어가 쓴 37편의 걸작들 중 대표적 비극의 하나인 ‘맥베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맥베스는 반란을 진압하고 금의환향을 꿈꾸며 돌아오던 중 3명의 마녀와 마주하게 된다. “맥베스 장군은 왕이 될 것이다.”라는 마녀들의 뜬금없는 예언을 듣고 스코틀랜드의 이 충성스러운 장군 맥베스의 마음은 싱숭생숭해진다. 그냥 한 귀로 듣고 넘길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그의 마음속에서 왕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자라기 시작했고, 예언을 전해들은 맥베스의 부인은 우유부단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맥베스를 대신해 잠자는 던컨 왕을 칼로 살해한다.

그리고 후손 중에 왕이 나올 것이라 예언을 받은 뱅코 장군, 자신의 명령을 거절한 맥더프 장군의 가족들을 제거하고 공포정치를 시작한다. 권력에 대한 욕망은 남녀노소를 불문한다. 겨자씨보다도 작게 시작한 인간의 욕망은 때론 빛의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우주를 삼키고도 허기진 모습으로 자라버린다.

걱정될 때마다 찾아가 세 명의 마녀에게 받은 예언의 내용은 모두 확실하게 맥베스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족을 맥베스의 손에 잃고 복수심에 가득 한 맥더프 장군은 극의 마지막에 “나는 여자에게서 태어나지 않고 제왕절개로 세상에 나온 자”라며 맥베스가 굳게 믿었던 불패의 예언에 약점이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결투에서 맥베스의 목을 친다. 그리고 망명했던 던컨왕의 아들 말콤에게 다시 스코틀랜드의 왕위가 넘어간다.

예언의 본질은 결국 맥베스는 전쟁에서 패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어, 너는 대답만 해.)’ 케이스다. 뭐라고 하든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우리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렇게 죽도록 쫓아가던 권력과 돈, 그리고 영광이 인간을 행복의 나라로 이끌어 주지 못함을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주고 있다.

한편 셰익스피어는 스코틀랜드 역사에 등장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 뱅코를 창조하여 그의 후손이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세익스피어 생전에 그를 끔찍이 아끼던 엘리자베스 여왕의 서거로 튜더왕조가 끝나고 공교롭게도 스코틀랜드 왕족인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의 왕이 되는 일이 생긴다. 바로 스튜어트 왕조의 시작이 눈앞에 펼쳐졌던 것이다. 그저 우연이었을까? 아니
면 은밀한 권력의 지각변동을 감지했던 걸까? 줄서기 잘하는 셰익스피어라니…! 참 인간적이다.

신금호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오페라로 사치하라'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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