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조르주 드라투르, 루브르를 방문하는 많은 여행객에게다소 생소한 이름이다. 몇몇 서양 미술사 책에서 종종 등장하는 화가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렘브란트 등 시대적 아이콘들에 비해서 그 비중이 낮다. 심지어 카라바조가 창안한 명암법을 모방하는 까라바지스티 중 한 명(caravaggisti, 카라바조의 화풍을 따르는 화가)으로만 다루는 책들도 상당히 많다(사실 조르주 드라투르는 프랑스의 카라바조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루브르 미술관 조르주 드라투르의 전시관은 언제나 한산한 편이다. 하지만 언젠가 루브르 박물관에 종사하고 있는 지인을 통해 흥미로운 사실을 들은 적이 있다. 루브르 미술관 측은 과연 어떤 작품을 가장 높게평가하는지 궁금했는데 실제로 관리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작품으로 바로 조르주 드라투르의 ‘목수 성 요셉’을 뽑았다는 것이다.
물론 전해 들은 이야기라 사실 여부를 판단할 방법은 없지만 루브르의 한 전시실이 그의 작품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면 루브르가 얼마나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지 잘 알 수가 있다. 그런 그의 작품들을 놓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촛불의 화가, 혹은 빛과 어둠의 화가로 불리는 조르주 드 라투르는 17세기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꼽히며 프랑스에서 태어나 활동한 화가이다.
살아생전에는 루이 14세의 궁정화가로 발탁되는 등 큰 성공의 길을 걸었던 화가로 깊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묵상의 경건함을 주는 종교화에 능했고, 재밌게도 그와 완전 반대되는 가식과 허세 그리고 거짓과 같은 인간의 비도덕한 행태를 풍자하는 풍속화에도 능했던 화가이다. 그런 그의 작품 중에서 <목수 성 요셉>이 성스러운 종교화를 대표하며 속임수(다이아몬드 에이스를 쥔 사기꾼)는 속스러운 그의 풍속화를 대표한다.
전시실 안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속임수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쥔 사기꾼>가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도박장 테이블을 배경으로 두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인이 앉아 있다. 신중하게 카드놀이를 하는 이들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이때 그림의 왼쪽에 남자가 허리 뒷춤에서 숨겨놓았던 카드를 꺼내고 있다. 눈치를 살피고 있는 듯한 그의 눈에는 생동감이 넘친다. 가운데는 한 여자와 그 옆에 그녀에게 칵테일 잔을 건네고 있는 여인의 여종이 있다.
두 여자는 눈을 열심히 굴리며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서로의 시선을 주고받고 있는데 이는 남자의 속임수를 알아챈 여종이 칵테일을 건네는 척하며 여자에게 속임수를 쓰고 있는 남자의 패를 슬쩍 알려주고 있는 중이다.
이 와중에 맨 왼쪽의 부유해 보이는 남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의 패에만 열중해 있다. 그는 자신의 눈 앞에서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세상에서 가장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다. 아마도 이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남자는 곧 영문도 모른 채 다른 사람들의 속임수에 당하면서 재산을 탕진하고 말 것이다.
그림 속 풍경의 속이는 사람과 속는 사람은 죽이는 사람과 죽어가는 사람, 마치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전투구의 세상을 보는 듯해 세상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떠오르게 한다.
사기꾼을 보고 나면 바로 <목수 성 요셉>이 눈에 들어온다. 그림의 배경은 어두운 목공작업실이다. 주인공 예수의 양아버지이자 목수인 요셉은 나무에 송곳을 박으며 아들을 쳐다보고 있는 중이고 또 다른 주인공 어린 예수는 촛불을 들고 작업을 돕고 있는 중이다. 어둠 속 아버지의 눈은 반짝이고 그의 주름진 이마엔 땀이 맺혀 마치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하다.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세운 어린 예수의 손은 손톱의 때까지 보일 정도로 하나하나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고, 작품은 촛불이 타들어 가는 냄새까지 전달되는 것처럼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이 작품은 드라투르를 촛불 화가로 불리게 한 결정적인 작품으로 촛불의 광원을 통해 그림 속 주인공들에게 생명력을 불어 넣어준 작품이다. 사실 이런 특징 때문에 카라바조의 대표적인 추종자 중 한 명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작품의 깊이는 그의 것보다 더하다.
사실 카라바조의 표현과 비슷한 점이 많은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다른 표현방법을 찾아볼 수 있는데 바로 빛의 출처이다. 카라바조 작품의 경우 광원이 화면 밖에서 스며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드라투르 작품은 그림 속 촛불, 바로 화면 안에 그 광원이 있다. 사실 별 차이가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내부의 촛불은 관람자로 하여금 더욱더 깊은 묵상의 세계로 들어가게 만든다. 작품은 풍부한 색감과 섬세하게 표현된 사물 그리고 주인공들의 시선과 구성까지 어느 부분 하나 부족함 없는 걸작 중의 걸작이다. 특히 주인공 요셉과 예수가 보여주고 있는 무언의 대화는 무엇보다 감동적이다.
성서에서 예수의 양아버지인 요셉은 목수다. 그리고 목수인 까닭에 작품 속 요셉은 무엇인가 나무로 열중하여 만들고 있다. 나무는 예수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수는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날 어느 목수가 만든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이다. 나무를 다듬는 요셉의 행위는 아마도 그의 죽음을 예비하는 일일 것이다. 요셉의 눈가에는 눈물이맺혀져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 옆 어린 예수는 개의치 않는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일하는 아버지를 촛불로 비춰주며 그 일을 도울 뿐이다. 그리고 마치 슬퍼하는 그의 양아버지에게 슬퍼하지 마시고 어서 일을 마치시라는 무언의 응원을 건네는 듯하다.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희미한 촛불, 드라투르의 빛은 주인공들뿐 아니라 내 안의 내적인 상태에까지 평화와 고요함을 전달한다. <목수 성 요셉>과 <사기꾼>, 가장 성
스럽고 가장 속스러운 두 작품은 마치 작품 속 어둠과 촛불의 대비처럼 전시실에 생명력을 가득하게 하고 있다.
글·사진 | 강정모
유럽가이드이자 통역안내사로 일하며세계 유명 여행사이트인 Viator 세계 10대 가이드로 선정된 바 있다. 롯데백화점 문화센터와 여러 기업에 출강하며, 아트 전문여행사 Vision tour를 운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