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김영란법이 국내 예술계, 공연계를 크게 흔들고 있다. 이 법은 공무원, 언론인, 교육 관계자들에게 5만 원 이상의 선물을 금지하고 있다. 주요 콘서트, 대형 뮤지컬, 미술 시장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가의 건강성을 위해 부정 청탁 및 뇌물 공여는 법을 떠나 더욱 엄격하게 지켜져야 한다. 예술계의 자립이 어려우니 예외를 인정해달라는 논리는 공감하기 어렵다. 예술은 홀로서기에 충분히 강하고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이나 국가가 예술을 지원하면 살아나고, 그렇지 않으면 힘을 잃는 것이 예술이 아니다. 예술은 스스로의 힘으로 영원하다.
전 세계 사람들에서 가장 여행하고 싶은 나라는 프랑스이고, 가장 가고 싶은 도시는 파리다. 그 이유는 바로 프랑스와 파리에 예술이 지금 이 순간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와 로마는 역사적으로 더 어마어마한 유적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의 아테네, 혹은 이집트의 기자, 터키의 이스탄불, 중국의 장안 등이 역사적으로 더 엄청날 수 있다. 그럼에도 프랑스 파리가 세계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이유는 바로 그곳에 이 순간에 예술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라는 국가, 파리라는 도시가 역사를 그냥 지켜져서 된 것이 아니다. 파리를 처음 방문했을 때는 파리 사람들이 그 도시의 역사 유물들을 잘 지켜 낸 것에 놀라고 감탄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파리를 관찰해 보면, 이 나라 사람들이 파리의 과거 유적들을 그냥 지키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파리는 재개발, 재건축되고 있다.
재개발은 사실 우리나라 전공이다. 서울이라는 도시 중에서 특히 잘 나간다는 강남에는 곳곳에 재개발 플래카드가 걸려있고, 어떤 곳은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서울의 재개발 플래카드 중에서 압권은 오래된 아파트 단지 입구의 “축! 건축 안전진단 통과”라는 내용이다. 말이 오래된 아파트이지 실제로는 건축된 지 30년이 막 넘은 파리 기준으로 정말 새것들이다. 아마 파리에는 90% 이상의 건물이 30년을 넘어 100년이 넘은 것들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기준으로라면 파리의 95%가 넘는 건물들은 모두 완전히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할 재건축 대상들이다. 파리에서 이런 바보같은 일은 지구 역사가 종료된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30년만 지나면 재건축 대상이 될 수 있고, 30년이 지나 부실해졌다는 국가의 건축 안전진단 통보만 있으면 가격이 폭등하게 된다. 우리나라 정부 국무회의는 2015년 1월 20일 재건축 연한을 40년에서 30년으로 단축하는 도시정비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파리의 재개발 방식은 우리와 전혀 다르다. 파리의 재개발은 30년 전, 200년 전에 지어진 5층 아파트도 그 외관과 골격은 전혀 손대지 않고 내부와 중정 정도만 살기 좋게 재개발한다. 그러다 보니 파리는 경쟁 상대가 거의 없는 압도적 예술 도시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파리 사람들은 도시에 무엇인가를 새로 만들 때 수백 년 동안 계속 당대 최고 예술가를 찾아 왔다. 이것이 파리 사람들의 중요한 톨레랑스(Tolerance) 정신이다. 어쩌면 톨레랑스야말로 예술을 사랑하는 정신, 나아가 예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파리사람들은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맞아 1989년 샹젤리제의 한쪽 끝인 개선문의 먼 대칭점 라데팡스 지역에 신개선문(Grande Arche de la Defence)을 세우고자 했다. 바로 프랑스 건축가들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전 세계 건축가를 대상으로 국제 공모를 했다. 그 결과 덴마크 코펜하겐 왕립예술학교 건축과장이던 J. O. von Spreckelsen이 설계를 맡았고 현재 파리의 새로운 명물로 자리 잡았다.
루브르 박물관의 고풍스런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말썽 많았던 박물관 광장 앞 유리 피라미드는 중국계 미국인 I. M. Pei가 설계를 맡았다. 역사적 파리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던 공장 같은 외관의 퐁피두 미술관도 1977년 이탈리아 출신의 Renzo Piano, Richard Rogers, Gianfranco Franchini가 설계했다. 2014년에는 파리가 그토록 아끼는 도심의 숲속 파리 시 소유지에 사설 미술관인 루이뷔통 미술관(Foundation Louis Vuitton)이 미국인 건축가 Frank Ghery에 의해 지어졌다. 이 건물은 파리의 새로운 명물로 이름을 날리는 중이다.
예술인 각자가, 서울이, 우리나라의 모든 도시들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예술을 추구하기만 한다면 김영란법은 전혀 문제가 될 수 없다. 예술은 간다. 갈 수밖에 없다. 가지 못하는 것은 예술이 아니다.
글 | 강일모
국제예술대학교 총장, (사)한국음악협회 이사
경영학박사/ 음악학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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