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henon

[아츠앤컬쳐] 에게 문명이 멸망한 뒤에 기원전 8세기경에, 지중해 문명의 주역인그리스가 나타났다. 그리스 세계를 이끈 것은 아테네와 스파르타였다. 그리스 문화는 개인의 감정과 이성을 중시한 합리적인 문화였다. 이러한 그리스 문화는 헬레니즘을 거쳐 로마 문화로 이어져, 서양 문명의 뿌리를 이루게 되었다.

독특한 폴리스가 시작되다
미케네 문명이 멸망한 후에 고대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리스 본토에 이주하면서 철기문명을 바탕으로 촌락을 이루며 살기 시작했다. 일부는 아테네가 있는 아티카 지방에 생활 터전을 마련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에게 해의 섬들과 서아시아(이 지역들을 ‘이오니아’라고 부른다)방면으로 영토를 넓혔다. 이오니아는 오리엔트 지역과 가까워서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살고 있는 도리아 사람들에 비해 발전이 빨랐다. 그리스는 이오니아 인들이 세운 아테네와 도리아인들이 세운 스파르타를 중심으
로 발전해 나갔다.

그리스는 산이 많고 평야가 적은 분지지형이라 통일된 국가를 이루기 어려웠다. 기원전 8세기부터 촌락들이 생기고 결합하면서 인구가 많아지자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높은 성벽을 쌓으면서 ‘폴리스’라는 형태의 국가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 인구가 2만명이 넘는 폴리스인 아테네는 식민도시까지 1,000개가 넘은 대규모 폴리스국가였다.

Erechtheion
Erechtheion

아테네의 폴리스를 보면 아크로폴리스와 아고라가 있었다.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아크로폴리스는 신들을 모신 장소였고 아고라는 시민들의 광장이었다. 아고라에서는 시민들이 참여하여 정치를 하는 민회와 재판이 열리고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 열렸다. 주랑이라고 불리는 기둥 아래에서 사람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며 연극이나 공연이 열리고 사람들의 박수와 웃음꽃이 피는 폴리스의 시민들에게 생활상을 보여주는 장소가 아고라였다. 이와 반대로 아크로폴리스는 자신들을 지켜주는 신들을 모신 신전이 폴리스 전체를 비추는 등대 같은 장소가 아크로폴리스였다. 적들이 침입을 해도 최후까지 목숨을 바쳐 지키고자 가장 높은 장소에 아크로폴리스를 건설했다.

Acropolis hill
Acropolis hill

폴리스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은 시민들이었다. 시민들은 남성만이었고 여자와 어린이, 노예, 외국인은 제외되었다. 그리스인들이 직접 민주주의를 했다고 하지만 성인 남성만이 참여한 제한적인 민주 정치였다. 아테네인들은 자부심이 대단하여 스스로를 ‘헬레네스’라고 부르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장소를 ‘헬라스’라고 불렀다. ‘헬레네스’란 전설적인 그리스의 영웅 ‘헬렌’의 자손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스인들이 아닌 이들은 이방인이라는 뜻의 ‘바르바로이’라고 불렀다. 그리스어를 모르고 자유롭고 합리적인 정치를 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 모두가 이방인처럼 보였던 것이다.

아테네의 수호신, 아테나
그리스에서 모시는 올림포스의 12 신들 가운데 하나인 아테나는 전쟁의 여신으로 어머니 없이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났다. 지성과 용기, 영광과 승리를 상징하는 아테나 여신은 아테네를 대표하는 수호신이었다. 세계문화유산 1호인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나 여신에게 바치는 신전이었다. 처녀신의 뜻인 ‘파르테노스’라는 단어에서 파르테논 신전을 만들어 아테나 여신이 머무르는 신전을 건축했다. 4년마다 아테나 여신을 위한 파나테나이아 축제를 열고, 파르테논 신전으로 행진을 하면서 아크로폴리스를 건설한 페이디아스는 금과 상아로 아름답게 만든 아테나 여신상을 파르테논 신전 안에 모셔 놓았다고 전해진다(지금은 소실되었다).

 

작가 | 조대현
54개국 162개도시 이상을 여행한 저자는 강의와 여행 컨설팅, 잡지 등의 다양한 활동과 “TOP 10”여행시리즈를 집필하고 있다. MBC TV 특강과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에 아이슬란드 링로드가 소개되면서 인기를 얻고 있다. 저서로 크로아티아, 아이슬란드, 라오스 등의 가이드북이 출간되었으며, 발트 3국, 체코, 독일 로맨틱&괴테 가도, 동유럽, 크로아티아 등이 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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