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독일의 사업가 하인리히 슐리만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간직해 온 꿈이 하나 있었다. 그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아 언젠가는 자신이 트로이 전쟁의 본모습을 밝혀내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사업에 성공해 많은 재산을 모으자,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트로이와 미케네 발굴에 뛰어들었다. 마침내 그는 1873년에 트로이를 발굴하고, 이어 1876년에는 미케네 발굴에 성공했다. 이 발굴로 인해 그리스 초기 역사의 비밀이 밝혀지고 미케네 문명도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미케네 문명은 기원전 2000년경에 인도유럽어를 쓰던 그리스 인이 발칸반도에 들어와 살면서 시작되는데, 기원전 1600년~1200년경에 꽃을 피운다. 이 문명은 초기에 크레타 문명의 영향을 받으며 발달하여, 크레타 문명이 무너진 후에는 그리스와 에게 해를 이끄는 문명으로 성장한다. 미케네 문명을 이룩한 것은 그리스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작은 왕국들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왕국이 미케네인데,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아르골리스 지방을 터전으로 거대한 성과 풍부한 재물로써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미케네 왕국을 비롯한 다른 왕국들은 서로 좋은 땅과 항구를 차지하기 위해 자주 전쟁을 하였고, 각기 자기 왕국을 지키기 위해 높은 성벽을 쌓고 군대를 훈련시켰다. 미케네 문명을 이룩한 그리스 왕국들의 힘은 흑해 연안까지 뻗어 나갔다. 이때 흑해로 들어가는 길목을 차지하고 있던 왕국은 트로이였다. 기원전 1200년 경, 흑해로 나아가려는 그리스 왕국들과 트로이 왕국 사이에 트로이 전쟁이 벌어졌고 치열한 전투 끝에 그리스 왕국들이 트로이를 물리치고 흑해에 이르는 교역로를 차지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트로이 전쟁을 전설 속의 신화로만 생각해 왔는데, 슐리만이 트로이의 유적을 발굴한 다음에는 트로이 전쟁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고 믿게 되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의 후반을 보면, 10년이 넘도록 트로이의 성문을 열지 못한 그리스 군대가 커다란 목마를 남겨 놓고 그리스로 돌아가는 체한다. 트로이 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목마를 트로이 성안으로 들여놓는다. 전쟁이 끝났다고 축제를 벌이고 모두가 잠든 밤이 되자, 목마 안에 숨어 있던 그리스 군사들이 나와 성문을 열어 주었고 가까운 섬에 숨어 있던 그리스 군대가 돌아와 트로이를 점령해 버린다.
이 전쟁은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흑해에 이르는 교역로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미케네 문명은 기원전 1200년경부터 북쪽에서 내려온 도리아 인의 침입 때문에 기원전 1100년경 멸망하고 말았다. 이로써 미케네 문명이 건설한 모든 건축물과 문자가 없어졌고, 그리스 땅에는 300년간에 걸친 암흑시대가 찾아왔다.
| 그리스 신화 속의 트로이 전쟁 바다의 요정 테티스의 결혼식 날, 테티스는 다른 신은 모두 초대했는데, 그만 불화의 여신인 에리스를 빠뜨렸다. 화간 난 에리스는 잔치에 찾아와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씌어 있는 황금 사과를 던지고 가버렸다. 그러자 세 여신 헤라와 아테나, 아프로디테는 서로 황금 사과가 자기 것이라며 다투게 된다. 난처한 제우스는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누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지 판결을 넘기는 데, 그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했다. 그 이유는 아프로디테가 파리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파리스는 헬레네를 아내로 맞이했지만 헬레네는 원래 스파르타의 왕비였다. 왕비를 빼앗긴 메넬라오스 왕은 자신의 형이자 미케네의 왕인 아가멤논과 함께 그리스 연합군을 이끌고 트로이를 공격하게 되는데 이것이 트로이 전쟁이다. 호메로스가 쓴 서사시 ‘일리아스’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
작가 | 조대현
54개국 162개도시 이상을 여행한 저자는 강의와 여행 컨설팅, 잡지 등의 다양한 활동과 “TOP 10”여행시리즈를 집필하고 있다. MBC TV 특강과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에 아이슬란드 링로드가 소개되면서 인기를 얻고 있다. 저서로 크로아티아, 아이슬란드, 라오스 등의 가이드북이 출간되었으며, 발트 3국, 체코, 독일 로맨틱&괴테 가도, 동유럽, 크로아티아 등이 발간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