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
카라바조

[아츠앤컬쳐]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는 16세기에서 17세기의 전환기에 로마를 중심으로 이탈리아에서 활약한 바로크 회화의 개척자이다. 서양미술사 역사상 후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화가들 중 한명으로 꼽히며 우리에게 잘 알려진 렘브란트 역시 그의 그림을 추종하는 카라바지스티(caravaggisti) 중 한명이었다.

로마에 방문하는 여행자들에게 카라바조는 비교적 생소한 이름인 것 같다. 여행자들은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의 작품들을 감상하기 위해 2시간이 넘게 바티칸 줄을 서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지만 카라바조의 작품을 만나는데 고작 몇 분이 채 걸리지 않는 곳도 있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분명 카라바조의 작품들 역시 세계적인 미술관들로부터 주인공 대우를 받고 있는데도 말이다.

잘린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잘린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물론 ‘잘린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과 같은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 보르게제 미술관 같은 경우 예약을 해야만 안심하고 입장 할 수 있는 번거로움이 있기도 하지만, 로마에는 특별한 수고 없이 천천히 산책을 즐기며 마주칠 수 있는 카라바조의 작품들도 있다. 바로 성당 안의 그림들이다. 심지어 입장료도 받지 않는다. 나보나 광장과 판테온에서 가까운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과 산 아고스티노 성당, 그리고 포폴로 광장에 위치한 산타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이 바로 그 성당들이다.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산타마리아 델 포폴로성당, 산타아고스티노 성당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산타마리아 델 포폴로성당, 산타아고스티노 성당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에는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오를 소재로 한 3편의 그림 ‘마태오 연작’이 전시되어 있고, 산타 아고스티노 성당에는 ‘로레토의 성모’가, 그리고 산타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에는 ‘바울의 회심’과 ‘십자가에 못 박힌 성 베드로’가 전시되어 있다. 1518년 줄리오 데 메디치가 착공하여 1589년 완공된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은 카라바조의 위대한 세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으로 다른 작은 성당들에 비해 항상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마태를 부르는 그리스도
마태를 부르는 그리스도

성당 안에는 성경 속 인물인 마태오의 일생에 가장 큰 3가지 사건들을 연작으로 그려낸 ‘마태오 연작’이 왼쪽에서 오른쪽 순으로 전시되어 있다. 가장 왼쪽의 작품이 마태오의 연작 중 첫 번째 사건으로 ‘마태오를 부르는 그리스도’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 마태오는 레위란 이름으로 살아가며 동포들에게 세금을 징수해 로마인들에게 가져다 바치는 일을 했다. 그림에서는 마태가 돈을 열심히 세고 있을 때 그리스도와 베드로가 나타나 ‘나를 따르라’며 손으로 마태오를 가리키고 마태오가 놀라 ‘저 말입니까?’란 표정으로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모습이다. 그림은 그리스도의 손가락과 한 방향으로 어둠과 대조를 이루며 쐬는 강렬한 빛으로 인해 그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마태오 연작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마태오 연작

그리고 중앙에 걸려 있는 작품은 두 번째 사건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마태오가 신의 영감을 받아 마태복음을 집필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마태오와 천사’이며 오른쪽 작품이 연작 중 마지막 사건으로 에디오피아에서 마태오가 선교를 하다 순교를 맞게 되는 장면이 그려진 ‘마태의 순교’이다.

로레토의 성모
로레토의 성모

산타 아고스티노 성당은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에서 불과 3분이 채 걸리지 않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1483년 완공된 이 오래된 성당에는 카라바조가 예술적으로 절정기에 이르렀을 때 그린 ‘로레토의 성모’가 소장되어 있다. 로레토는 순례자를 의미하며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를 향해 남루한 차림의 남녀 순례자가 무릎을 꿇고 있는 그림이다. 성당을 위한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더러운 발과 남루한 차림의 순례자들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베드로의 순교
베드로의 순교

사실 카라바조가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모두 한낱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은 그의 강한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카라바조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성경 속 이야기가 먼 하늘의 이야기가 아닌 인간사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부단히 강조하고자 했다. 성당 안에는 카라바조의 작품 못지않게 유명한 라파엘로가 성당의 기둥에 그려 넣은 ‘선지자 이사야’도 만날 수 있다.

사도 바울의 회심
사도 바울의 회심

마지막으로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포폴로 광장에 위치한 산타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은 꼭 잊지 않고 방문하는게 좋다. 이 곳에는 카라바조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성 베드로의 순교’와, ‘바울의 회심’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부 세 명에 의해 십자가에 못이 박힌 채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세워지는 베드로의 모습과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기 위해 다마스쿠스로 말을 타고 가는 도중 하늘에서 비춘 빛을 만나 말에서 떨어져 눈이 멀어버린 채 땅바닥을 헤매고 있는 사도 바울의 모습은 당시 로마를 찾은 순례자들의 신앙심을 고취시키기에 충분했을 뿐 아니라 현재의 여행객들에게도 큰 감동을 전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카라바조는 20세기에 들어 주목 받기 시작해 현재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에 버금가는 인물로 재평가 되고 있다. 어느 정도냐면 그의 작품들의 소장 여부에 따라 미술관들이 세계적인 미술관이냐 아니냐가 결정된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한다. 2010년 로마에서 열렸던 그의 전시회는 암표가 10배까지 치솟는 일화가 있었고 아시아에서는 홍콩에서 딱 한 번 딱 한 점만이 전시가 되었을 정도로 그 모습을 만나기가 쉽지도 않다.

그런 그의 작품들을 별 어려움 없이 쉽게 감상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세 성당들이다. 물론 미켈란젤로의 명화인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는 바티칸 박물관의 시스티나 예배당도 놓쳐서는 안 될 코스이지만 스페인광장과 나보나 광장에서 티라미수 한입을 먹고 산책하며 카라바조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로마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은 것이다. 누구든 ‘로마의 휴일’을 더욱 특별하고 값지게 빛내길 원한다면 꼭 방문해보길 권하고 싶다.

글·사진 | 강정모
유럽가이드이자 통역안내사로 일하며 세계 유명 여행사이트인 Viator 세계 10대 가이드로 선정된 바 있다. 롯데백화점 문화센터와 여러 기업에 출강하며, 아트 전문여행사 Vision tour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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