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나는 추상주의에 속하는 화가가 아니다. 나는 색채나 형태에는 관심이없다. 비극, 아이러니, 관능성, 운명 같은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내 그림 앞에서 우는 사람은 내가 그것을 그릴 때 가진 것과 똑같은 종교적 경험을 하고 있다.”
추상표현주의의 거장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가 남긴 말이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 가운데 한 명인 로스코는 현대의 추상 미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현재의 라트비아(Latvia)가 위치한 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1913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로스코는 1921년에 예일 대학교에 진학하고, 그 후 뉴욕의 아트 스튜던츠 리그(Arts Students League)에 들어가 막스베버(Max Weber) 밑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로스코는 밀턴 에이버리(Milton Avery)의 대담한 색채 사용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이제 현대 회화는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한 그는 재현적인 주제보다는 형태, 공간, 색채 등의 형식적인 면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1943년 이후, 추상화가 클리포드 스틸(Clyfford Still)과의 우정은 로스코가 색면 회화를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커다랗고 모호한 색면과 불분명한 경계선으로 이루어진 직사각형의 캔버스는 절망부터 환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감정의 물결들을 불러일으킨다. 1940년대말, 로스코는 재현적인 요소들을 모두 제거함으로써, 완전한 추상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즉, 거대한 캔버스를 기하학적으로 분할한 후, 반짝이는 단일색으로 화면을 가득 칠하는 방식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그림이 단순할까?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마크 로스코의 그림은 단순하며, 색은 몇 가지를 쓰지 않는다. 어떤 이는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내게 그림물감을 준다면 나도 로스코처럼 그릴 수 있다.”고 말이다. 어쩌면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다. 그만큼 따라 하기 쉽다.
작품을 가격으로만 평가하면 안 되겠지만, 2015년 미국 워싱턴국립미술관 소장품이었던 로스코의 작품 50여 점이 처음으로 국내에 대규모로 소개되었는데, 그 50여점의 작품 평가액이 2조5,000억 원에 이르렀었다. 작품당 500억 원꼴이다. 그의 작품은 2007년 5월 뉴욕 소더비 경매(Sotherby’s)에서 ‘화이트 센터(White Center)’가 7,284만 달러(약 819억 원), 2012년 크리스티 경매(Christie’s)에서 ‘오렌지, 레드, 옐로(Orange, Red, Yellow)’가 8,688만 달러(약 978억 원)에 거래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러다 보니 따라 하기 쉽다는 말을 우스갯소리로만 여기지 않는 사람도 생기게 마련이다. 이러한 사람 중의 한 명으로 인하여 2011년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존경받는 화랑 중의 한 곳인 뇌들러 화랑(Knoedler Gallery)이 문을 닫게 된다.
이 일은 1994년 롱 아일랜드에 사는 로잘리스(Glafira Rosales)라는 딜러가 추상표현주의 대가들의 작품 40점을 뇌들러에 들고 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모두 처음 공개되는 작품으로 출처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었다. 로잘리스는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자신의 고객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며, 이 작품들을 모두 작가들로부터 직접 구입했다면서 현금결제를 조건으로 시가의 10분의 1까지도 팔 수 있다고 했다.
이 작품들은 실은 전부 로잘리스가 솜씨 좋은 중국인 길거리 초상화가 페이 선 첸(钱培琛, Pei Shen Qian)을 데려다가 그리게 한 가짜였다. 뇌들러는 이 작품들을 2008년까지 14년에 걸쳐서 팔았다. 이 작품들에 대한 소장 이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그럴듯하게 덧칠해진다. 뇌들러가 2002년에 힐티 패밀리 신탁(The Martin Hilti Family Trust)에게 550만 달러에 판 마크 로스코 그림은 로잘리스에게 75만 달러에 산 것이었다.
당시 법정증인으로 나선 패리쉬(Martha Parrish)는 “양식 있는 딜러라면, 누군가가 출처에 대한 믿을 만한 기록이 없는 미공개 작품을 대량으로 가져와서, 시가보다 터무니없이 싼 가격을 제시하고, 현금 결제를 요구했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가야 한다. 틀림없는 가짜다.”라고 말했다. 미술계 인사라면 다 알다시피, 누구나 탐내는 이런 명작들은, 진품이었다면 단 몇 퍼센트의 이윤을 남기는 것도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들이 가끔 언론을 타고는 한다. 가짜 고미술품을 북한에서 들여온 혜원 신윤복, 단원 김홍도의 작품 등이라고 속여서 1억 원을 가로챈 70대 표구사에게 징역형 1년이 선고된 것이다. 이 표구사는 40년 넘게 표구와 화랑 등을 운영하면서 고미술품과 도자기 등을 판매하다 지난 2007년 7월 평소 알고 지내던 피해자 A씨에게 ‘북한의 고위 당원을 매수, 박물관에 전시된 신윤복 작품을 빼냈다. 화법과 연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볼 때 진품이니 믿고 사라.’며 거짓말을 하고 이를 70만 원에 판매하는 등 총 30차례에 걸쳐 가품을 판매하였다.
이 표구사는 신윤복의 민속화를 판매한 뒤 이를 믿고 찾아온 A씨를 계속 속이기 시작한 것이다. 표구사는 첫 번째 작품을 판매한 시점부터 잇따라 윤두서, 한용운, 장승업, 정선 등 당대 최고의 작가들이 그리거나 쓴 진품이라 속이고 A씨에게 작품을 판매했다. 특히 지난 2008년에는 김홍도가 그린 풍속화병풍이라며 피해자를 속여 이를 1,200만 원에 판매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 판결문에는 “표구사는 판매한 물품이 유명인의 작품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며 “자신이 판매한 작품의 구입 경위에 대해서도 특정한 곳에서 구입한 것이 아니라 가방을 메고 다니면서 판매하는 사람에게 사서 자신에게 그림을 판 사람의 신원과 연락처를 모른다고 하는 등 구입처와 거래방식도 주먹구구식이어서 진품이라는 주장에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하였다. 이어서 “피해자 A씨도 범죄의 발생에 상당한 책임이 있지만 동일한 피해자 A에 대해서 2년 동안 반복적으로 범행하여 상당한 피해를 입힌 표구사의 죄는 상당하다.”며 “수사와 공판과정에서 표구사의 진술태도 등을 보면 피해자 A에 대한 피해 회복을 위한 의사나 노력, 반성의 태도를 찾을 수 없다.”고 집행유예 없이 징역형을 선고한다는 취지를 밝히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미술품 시장이 일부 사기성 있는 사람들 때문에 혼탁하여 믿을 수 있는 곳에서 발급한 감정증명서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한국고미술협회에서 감정위원으로 활동하는 김진원 오원화랑 대표는 “작품을 사고파는 사람 간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지만 의심스러운 점이 있으면 감정을 받는 게 좋다.”며 “신뢰할 수 있는 곳에 감정을 의뢰해 확인한 뒤 작품을 구입하는 게 가품을 사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글 | 이재훈
문화 칼럼니스트, 변호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 로보어드바이저 스타트업 ‘파운트’ 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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