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오지레이스

 

[아츠앤컬쳐] <Ultra ASIA Race 2016>에 대해 말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경기는 베트남 북서부 라오스 국경 근처, Pa Co 지역에서 열린다. 구글 맵에도 지명이 뜨지 않는 낯선 오지 중 오지이다. 대회 홈페이지에는 레이스 거리와 참가비 그리고 준비물과 짤막한 현지 정보뿐이다. 세상은 문밖에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현관을 나서면서 도전과 모험이 시작된다.

2016년 정초 일찌감치 베트남 레이스 출전을 결심했다. 1월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한반도가 뒤숭숭했지만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연이어 장거리 미사일 발사가 이어졌다. 오지 레이스를 준비할 때는 국제정세나 천재지변, 전염병 창궐 같은 사건사고에 더 민감해진다. 1월 27일 일찌감치 참가비 1,800유로를 우리은행을 통해 제롬의 프랑스 은행 계좌로 송금을 마쳤다.

며칠 후 제롬으로부터 참가비 입금이 안됐다는 메일이 왔다. 은행은 정상적으로 프랑스로 송금되었다는 답변뿐. 하지만 아직도 입금이 안됐다는 메일을 받고 은행에 재차 확인을 요청했다. 은행직원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경직된 표정으로 말했다. “고객님께서 송금하신 돈의 성격을 정밀분석 하느라 프랑스 금융당국이 제롬의 계좌로 입금을 보류한 상태라고 합니다.”, “이유는 고객님의 영문 성함이 파리의 북한 공작원과 똑같아서랍니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결의는 3월 4일에 이루어졌지만 나는 이미 북한 도발의 직격탄을 맞았다.

 

3월 19일 오전 10시 57분, 육중한 비행기 바퀴가 하노이 공항의 활주로 바닥을 둔탁하게 긁는 듯 굴렀다. 창밖 빗줄기가 차창을 내리치다 부서져 흩날렸다. 비에 젖은 하노이 공항은 뿌연 회색빛 세상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2년 전 페루 리마공항에서 볼리비아 라파즈로 갈아 탈 환승 비행기를 놓친 기억이 떠올랐다. 덕분에 꼬박 하루를 국제선 환승 통로에 억류됐던 향기롭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잘 가고 있는 건지.혹시 빠뜨린 장비는 없는지. 내릴 채비를 하려니 괜스레 가슴이 두근거렸다. 일정대로라면 이틀 전 하노이에서 대회 운영진과 합류해서 장비와 의료검사를 마치고 베이스캠프로 함께 이동해야 했다. 직장을 오래 비울 수 없는 직장인 모험가는 남모를 애환이 많다. 적지 않은 고충도 감수해야 한다. 뒤늦게 베이스캠프로 직접 찾아들어가기 위해 서울부터 제롬이 보내준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며 그의 동선을 뒤쫓았다.

빗속을 뚫으며 30여 분만에 들어선 하노이 시내는 승용차 반, 오토바이 반으로 꽉 차 있었다. 차들이 뒤엉켜 사방에서 격렬하게 경적 소리가 울려댔다. 오후 1시가 가까워 간신히 Demantoid 호텔에 도착했지만 시끌벅적해야 할 호텔은 너무 적막했다. 불과 30분 전에 베이스캠프를 향해 모두 떠난 것이다. 호텔 데스크에 남겨진 제롬의 메시지를 손에 쥐고 곧바로 베트남 북서부 Pa Co의 베이스캠프를 향해 내달렸다. 점심도걸렀다.

베트남 인구는 9천3백만 명인데 무려 4천4백만 대의 오토바이가 연신 매연을 뿜어댔다. 오후 2시 30분, 하노이 시내를 벗어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간이 휴게소에서 커피 한잔과 초코파이로 허기를 채웠다. 어느덧 도심의 모습은 사라지고 주변 산야는 짙푸른 녹음으로 변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자주 귀가 먹먹해졌다. 대기는 여전히 물안개와 뿌연 먼지가 뒤섞여 회색빛 세상을 연출했다. 스피드를 즐기는 오토바이족들, 수시로 차도를 넘나드는 무개념 소떼들이 앞길을 막았다.

오후 4시, 안개가 더 심해졌다. 교통량도 눈에 띄게 줄었다. 불과 20m 앞도 볼 수 없었다. 구불구불 산허리를 휘감은 도로를 따라 위태로운 곡예가 계속됐다. 1시간 넘게 몇 고비의 산길을 넘어 산허리를 끼고 벼랑길로 들어섰다. 목적지에 도착할 법도 한 차량은 벼랑길을 따라 하염없이 들어갔다. 2km 남았다는 목적지는 왠지 점점 멀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길을 잘못 들었다. 차량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의 비좁은 벼랑길에서 오도 가도 못할 상황이 되었다.

용감한 운전사는 차량의 머리를 거꾸로 돌릴 마음을 먹은 듯 했다. 천 길 낭떠러지 경계와 불과 1m 여유도 없는 벼랑길에서 가속과 후진 기어를 연신 반복한 끝에 결국 차량 머리를 90도까지 돌려놓고 말았다. 눈을 감을 수도, 돌릴 수도 없는 아찔한 순간을 모두 지켜봐야 했다. 승용차의 앞범퍼가 벼랑 끝을 바라보며 그렁그렁거리는 기절 직전까지 갔다. 잠시 숨을 고른 기사는 다시 기어를 수십 번 반복한 끝에 차량 머리를 반대로 돌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뽀얀 흙먼지를 일으키며 왔던 길로 줄행랑을 쳤다.

오후 6시가 넘어 천신만고 끝에 원주민 마을에 차려진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금세 주변이 어둠에 휩싸였다. 입구에서 대회 운영자 제롬과 닥터 토마스가 반갑게 맞았다. 스리랑카 정글을 함께 뛴 브라질의 존슨, 볼리비아 우유니사막을 함께 뛴 아르헨티나의 페레노. 모두 깊은 포옹으로 우의를 확인했다. 나의 마지막 합류로 11개국 19명의 선수들이 모두 모였다. 곧 이은 대회 브리핑, 만찬 그리고 나만의 단독 장비와 의료 검사 후에 배번호 1번을 받으면서 숨 가쁜 일정이 끝났다.

9시가 훌쩍 넘었다. 경력이 화려한 아시아의 늙은 사내를 예의주시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체력, 장비, 휴가, 참가비 입금, 벼랑 끝의 공포까지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내일이면 오지레이스의 새로운 장이 열린다. 또 하나의 족적을 긋기 위해 느지막이 자리에 누웠다. 경기 때면 찾아들던 불청객, 감기도 배탈도 없다. 부족한 운동량은 주로에서 보충한다. 연습을 실전처럼, 실전을 연습처럼. 레이스를 즐기는 일만 남았다. 일상의 내가 아닌 오지레이서로 변신을 상상하다 잠이 들었다. <계속>

오지레이서 | 김경수
서울강북구청(팀장) 근무, 선거연수원초빙교수, 제31회 청백봉사상 수상, <미쳤다는 말을 들어야 후회없는 인생이다> 출간, 블랙야크 셰르파
gskim3@gangbuk.go.kr

저작권자 © Arts & Cultur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