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ent Drawing Kim Jong hyun

Shape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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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츠앤컬쳐] 불교철학에서 ‘찰나(刹那)’는 어떤 일이나 현상이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 혹은 하나의 생각이 떠오르는 매우 짧은 시간을 가리키는 말로서 물질적 현상뿐만 아니라 정신적 현상의 순간적 생멸(生滅)을 의미한다. 사진작가 김종현은 ‘연기’라는 가벼운 존재의 찰나생멸(刹那生滅)에 주목하고 육안으로는 인지하기조차 어려운 ‘찰나의 순간’을 사진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이용하여 영겁의 시간 속으로 확장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모멘트 드로잉(Moment Drawing) 시리즈가 바로 그것이다.

본 시리즈는 불특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무형의 연기를 작가가 인위적으로 컨트롤하여 특정한 형태를 만들고 그 형태가 사라지기 직전의 순간을 촬영한 것으로서, 밀폐된 관속에 연기를 채워놓고 막아놓은 구멍을 개방하여 의도한 형태로 새어 나오는 연기를 촬영하는 방법과 향을 피움으로 인해 발생하는 연기를 촬영하는 방법으로 제작된다. 작가 김종현은 이렇게 찰나에도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생겨나는 연기라는 무형(無形)의 대상을 자신의 의도에 따라 새싹, 꽃, 풀잎 등 자연과 여체(女體)의 형태로 새롭게 재창조함으로써 관람객으로 하여금 인간의 주관이 만들어내는 착각과 선입견, 편견 등에 의한 인식의 오류를 경험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Shape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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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경험은 관객에게 보이는 것과 볼 수 없는 것,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새롭게 인식할 것을 강제하며 상상된 것, 감각된 것은 모두 의심해야 하고 ‘참’이 아닐 수 있음을 사유하게 한다.

그의 사진에서 현실과 가상, 참과 거짓의 매개체가 되고 있는 ‘연기(煙氣)’는 물질세계에서는 무엇인가 불에 타 소멸한 후 다시 생성되는 것인데 불가(佛家)에서 이야기하는 연기(緣起)와도 그 의미가 매우 흡사하다. 불교의 핵심교리인 ‘연기(緣起)’는 모든 현상이 생겨나고 소멸하는 법칙을 일컫는 말로서 모든 현상과 사물은 홀로 존재하지 않고 상호 의존관계를 벗어날 수 없으며 생성과 소멸은 항상 관계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존재의 상황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이것과 저것의 의존관계와 상관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며 모든 존재는 그것을 형성시키는 원인과 조건, 그리고 상호관계에 의해서만이 생성되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원불교대사전) 비록 일순간 현시(顯示)되고 사라지는 백일몽(白日夢)과 같은 연기의 움직임이지만 그 허상을 만든 것도 쫓는 것도 버리는 것도 바라보는 ‘나’의 무의식 속에 잠재하는 사유의 결과인 것이다.

Shape08
Shape08

진행 중인 Moment Drawing01~05시리즈는 Flower, Bud, Female, Shape, Untitled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미지와 부합되는 직접적인 제목(Flower, Bud, Female)을 통해 관객들에게 주관적 착각과 인식의 오류를 의도적으로 유도한다. 반면 최근에 발표한 Moment Drawing시리즈 06은 색색의 컬러잉크를 물속에 한 방울씩 풀어 켜켜이 쌓인 잉크가 혼합되며 만들어진 환상적인 컬러와 우연한 추상이미지를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Moment Drawing시리즈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존재(存在)와 부존재(不存在), 찰나(刹那)와 영겁(永劫)을 오가며 진화하고 있다.

flower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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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만든 연기의 환영은 느린 호흡으로 재생산되어 무한한 시공간을 자유로이 유영하며 우리의 시선으로 스며든다. 나는 지금 그의 작품 앞에서 프레임(Frame) 밖으로 피어올라 ‘영겁(永劫)’을 흐르는 ‘찰나(刹那)’의 시간을 보고 있다.

글 | 김이삭
전시기획자, Art Director, 이삭환경예술연구소 대표
kim.issac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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