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베토벤이 남긴 교향곡의 수는 모두 9개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베토벤의제10번 교향곡’이라는 말이 존재한다. 베토벤의 교향곡이 모두 9개인데 어떻게 이런 말이 생겨났을까? 혹시 베토벤이 남긴 미발표 교향곡이 유럽의 어느 도서관에서 발견되기라도 한 것일까?
사실 베토벤의 열 번째 교향곡이라는 음악은 베토벤의 작품이 아니라 브람스의 작품이다. 브람스가 21년이나 걸려 만든 그의 첫 번째 교향곡을 당대의 명지휘자 한스 폰 뷜로가 ‘베토벤의 제10번 교향곡’이라는 표현으로 칭송한 것이다. 뷜로가 간파한 대로 이 작품은 베토벤의 형식과 정신을 이어받은 뛰어난 작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베토벤의 제10번 교향곡’이라는 표현이 지금까지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작곡가 브람스는 완벽주의자 기질에다가 까다로운 인물이었다. 첫 번째 교향곡이 21년이나 걸려 완성된 것도 그의 완벽주의 기질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청춘의 나이인 22세 때에 착수하여 중년의 나이인 43세가 되어서야 첫 번째 교향곡을 발표했으니 이런 인물의 작품을 비평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이다.
언젠가 브람스의 친구가 브람스에게 왜 교향곡을 작곡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에 대한 작곡가의 대답은 이러했다.
“베토벤의 위대한 발소리를 등 뒤에서 들으며 교향곡을 작곡한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아는가!”
이처럼 베토벤이 세워 놓은 교향곡의 전통과 수준은 무거운 짐이자 중요한 모티브였다. 브람스가 교향곡을 작곡해 보겠다고 처음으로 마음먹은 것은 그의 나이 22살 때였다. 고향인 함부르크에서 슈만의 작품 ‘만프레드 서곡’을 듣고서였다. 그렇지만 자기비판에 엄격했던 브람스는 베토벤의 교향곡을 다시 들을 때마다 머뭇거리기와 재구상을 반복했던 것 같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수정과 보완이 계속되었고 완성은 43살 때인 1876년에 이루어졌다.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은 베토벤의 작품 ‘운명교향곡’의 후배격임을 보여준다. 다단조로 시작해서 다장조로 끝나는 구도, 어두운 고뇌의 국면에서 시작해 밝은 모습으로 끝을 맺는 흐름 등이 그러하다. 그렇지만 브람스 특유의 우수와 애환, 목가적인 분위기 등도 포함되어 있어서 브람스다운 인상과 깊이를 지닌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브람스의 교향곡들이 모두 이처럼 오래 걸린 것은 아니었다. ‘교향곡 제2번’은 ‘교향곡 제1번’이 발표된 다음 해에 곧바로 완성되고 발표되었다. 1년밖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정황들은 예술가 브람스의 성격에 대해 중요한 정보를 알려준다. 자신이 목표로 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발표와 전시를 자제하는 완벽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완벽주의자로서의 일화는 이뿐이 아니다. 교향곡 1번을 완성해가던 때에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에서 음악박사 학위를 수여하겠다는 뜻을 전해 왔다. 그런데 브람스는 교향곡을 충실히 마무리 짓기 위해 영국으로 가질 않았다고 한다. 곡을 완성하던 해 여름에 브람스는 발트해에 있는 뤼켄섬에서 친구인 데소프에게 편지를 썼다.
“나의 교향곡은 친한 사람들과 좋은 오케스트라가 있는 조그만 마을에서 연주되길 바라네, 그런 곳에서 좋은 지휘자가 나의 교향곡을 연주한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이겠지, 이것은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던 나의 소박한 소원이라네!”
21년간의 노력 끝에 교향곡을 발표하면서 브람스는 유명한 연주장을 찾지도 않았고 사회의 화젯거리로 삼지도 않았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이 21년간의 노력은 브람스를 더욱더 진솔하고 소탈한 성격으로 이끈 것이다.
글 | 이석렬
음악평론가, 예술의전당 예술대상 평가위원, 데 이일리 문화대상 심사위원, 전한 대민국 오늘의예술상 심사위원
https://www.facebook.com/sungnyu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