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위대한 공연기획자이자 무용단장이었던 디아길레프는 20세기 음악의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현대음악의 대작곡가 스트라빈스키를 발굴했고 음악의 사조 창출에도 한몫한 거목이었다. 이 인물은 단순히 흥행주의 차원을 넘어서서 당대의 예술계를 이끌 수 있었던 예술적 안목의 소유자로 역사에 남았다.

1872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디아길레프는 청년 시절 법대에 다녔지만 실제로는 음악에 미쳐 있었다. 10년 연하였던 스트라빈스키도 이 점은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모두 학적은 법대에 있었지만 딴짓(?)을 하던 학생들이었다.

젊은 시절 디아길레프는 예술 매니지먼트 분야에 발을 들여놓게 되고 마린스키 극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스트라빈스키 역시 법학을 포기하고 작곡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디아길레프가 36살이 되고 스트라빈스키가 26살이 되던 1908년은 음악 예술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해이다. 이 해는 스트라빈스키의 스승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세상을 떠난 해인데, 디아길레프를 통해 스트라빈스키라는 새로운 주역이 음악예술계의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스승이 영면한 그 해 겨울, 스트라빈스키는 어느 극장에서 그의 작품 <fireworks>를 들려주고 있었다. 당시 디아길레프는 객석에 앉아 이 작품을 듣고는 몹시 감동하여 곧바로 스트라빈스키에게 음악을 부탁한다.

이듬해에 디아길레프는 자신의 러시아 발레단을 창단하고 뛰어난 안목으로 종합예술의 무대를 창출한다. 춤, 음악, 연극, 시각디자인이 창의적으로 어우러진 새로운 발레 무대가 세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제 디아길레프는 자신의 발레단을 위한 새로운 음악들을 스트라빈스키에게 위촉한다.

그래서 터져 나온 스트라빈스키의 걸작들이 <불새>, <페트루슈카>, <봄의 제전>이었다. 디아길레프는 스트라빈스키라는 젊은 작곡가와 함께 새로운 현대음악의 창조에 뛰어든 것이다. 이는 쇤베르크를 중심으로 한 독일 전위예술계에 비견되는 대등한 흐름의 탄생이라고 여겨진다. 뛰어난 현대음악의 탄생에는 뛰어난 안목의 매니저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걸작 <봄의 제전>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관중들의 소란과 비평가들의 혹평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배짱과 신념은 디아길레프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디아길레프의 예술적 취향과 안목은 이전보다도 적극적인 종합예술을 지향하는 것이어서 시각적 디자인에도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무대에서의 의상과 디자인은 피카소, 브라크, 유토릴로와 같은 인물들이 맡아서 한층 빛을 발했다. 드뷔시, 라벨, 사티, 뿔랑, 미요, 팔랴, 프로코피예프 같은 인물들의 작품이 디아길레프에 의해 대규모 무대에 올려졌고, 그리하여 지극히 내성적이고 비사교적인 천재 작곡가들의 작품들이 청중들의 눈과 귀를 자극했다.

45세가 되던 디아길레프는 새로운 예술사조를 낳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한다. 이것 역시 스트라빈스키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스트라빈스키는 본국에 재산을 압류당했고, 같은 해 그를 돌봐주던 간호사와 그의 자식들이 세상을 떠났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사랑하던 형제도 러시아에서 사망했으며 절친하던 니진스키는 정신불안증으로 무용계를 은퇴했다. 불행과 슬픔에 가득 찬 스트라빈스키를 고무시킨 것은 바로 디아길레프였다.

디아길레프는 18세기 이탈리아의 작곡가 페르골레지의 작품을 재창조하는 작업을 스트라빈스키에게 의뢰한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스트라빈스키는 창작의 추진력을 되찾게 되고 과거의 작품과 짜임새를 재창조하는 ‘신고전주의’를 이끌게 된다. ‘신고전주의’라는 예술사조와 걸작 <풀치넬라>는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다.

음악의 역사에서 기획자와 작곡가가 이처럼 작품과 사조 탄생으로 밀접하게 관련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두 사람은 예술계의 말과 마부의 관계였다고나 할까! 끝으로 스트라빈스키의 회상을 인용한다.

“그에게 <봄의 제전>의 첫머리를 들려주었을 때, 그는 즉각적으로 새로운 음악어법의 진지함과 중요성을 알아차렸다. 그는 이것에 자본을 투자하는데 대한 이익을 간파하고 있었다. 이것이 <봄의 제전>을 처음 들었을 때 그가 생각했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글 | 이석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가의집 자문위원,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심의위원, 서울대학교 음악이론 학사, 석사,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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