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현재 우크라이나는 잿더미로 변했고 러시아의 경제는 파국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러시아가 무력을 동원해 우크라이나의 남쪽 크림반도를 2014년 합병하면서 시작된 갈등이 폭발해 올해 2022년 결국 두 국가 간 전면전으로 치달았다. 전쟁의 서막이 된 크림반도는 전설 같은 트로이전쟁의 이야기에도 등장하는 지역이다.
그리스 연합군의 왕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니아의 이야기는 굴룩의 오페라 두 편으로 만들어지는데 1편 <아울리스의 이피게니아>, 2편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아>로 제작되었다. 2편의 배경 타우리스가 바로 흑해 연안 크림반도다.
트로이전쟁 이후 여러 시리즈로 나눠진 승전한 장군들의 귀환 스토리(아가멤논, 율리시스, 이도메네오) 중 크레타섬을 배경으로 한 모차르트가 작곡한 오페라 이야기를 먼저 들여다보면 방대한 일리아드 세계관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해상교통의 요충지였기에 숱한 전쟁의 배경이 된 크레타는 미케네전쟁, 트로이의 목마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와의 전쟁은 말하자면 끝이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의 보석상자다. 인간과 신, 실제 도시의 이름과 왕의 이름 등 전설 같은 이야기와 현실이 뒤섞여 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이도메네오>만 보더라도 호메로스의 <일리아드(트로이)>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원전과는 사건의 배경이나 시간대가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당시의 공연물로서는 등장인물의 고증에 꽤나 정성을 기울여 제작되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이도메네오>의 배경을 보면, 트로이전쟁 후 돌아온 크레타의 왕 이도메네오가 트로이전쟁에서 포로로 끌고 온 적군 트로이의 마지막 왕 프리아모스의 딸 일리아(1) 공주를 억류하고 있었고 아군이었던 미케네의 아가멤논 왕의 둘째 딸 엘레트라가 이도메네오의 아들 이다만테와 결혼을 하기 위해 크레타에 와있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첫째딸 이피게니아 중심의 스토리에서 볼 때 오페라 <이도메네오>는 여동생 <엘렉트라 외전> 정도로 보면 좋다.
사건 발단은 크레타의 왕 이도메네오가 그리스 연합군의 일원으로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 후, 그의 함대가 돌아오는 항해 중 거센 폭풍우에 휩쓸리고 결국 바다의 신 넵튠에게 크레타에 도착해 처음 만나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겠다는 인신공양을 약속하고 겨우 살아서 도착한다. 운명의 장난처럼 처음 만난 사람은 왕의 아들 이다만테였던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 화장실 갈 때와 올 때가 다르다고 왕은 아들과 정략결혼 대상자인 엘렉트라 둘을 아무도 모르게 아르고스로 보낼 계획을 세운다. 문제는 아들이 지금 사랑하는 여인은 동맹국의 공주 엘렉트라가 아닌 적국 트로이에서 데려온 일리아 공주다. 왕자는 엘렉트라와 아르고스로 갈 마음이 조금도 없다는 것이다.
결국 아들을 제물로 바치지 않는 이도메네오에게 화가 난 넵튠은 거대한 뱀을 보내 크레타인들을 잡아먹도록 했다. 할 수 없이 이도메네오는 ‘넵튠이 원하는 제물은 바로 이다만테’라고 고백하고는 아들 대신 자신이 희생하려고 생각하는데 마침 아들 이다만테가 뱀괴물을 죽이고 등장한다. 결국 넵튠까지 나타나 ‘이도메네오는 왕위에서 물러나고, 이다만테가 일리아와 결혼해 나라를 다스려라.’라고 명령을 내린다. 마지막 순간에 사랑을 쟁취하지 못한 엘렉트라만이 유일하게 불행한 캐릭터로 남고 온 백성이 노래하며 축하하는 가운데 이다만테와 일리아의 결혼으로 오페라의 막이 내려간다.(2)
본론으로 돌아가 글룩의 오페라 이피게니아 시리즈의 관점에서의 트로이전쟁을 바라본 버전인데. 글룩 시리즈에서 시간적으로 떨어진 부분은 리하르트 스트라우스 오페라 <엘렉트라>로 메워진다.
아가멤논은 트로이 전쟁 직전 아가멤논이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가 아끼는 사슴을 죽임으로 여신을 진노하게 만든 탓에 바람이 전혀 불지 않게 되었고 트로이 원정길에 나선 그리스 군대는 아울리스항에서 2년 동안 출항할 수 없게 되었다. 뾰족한 방법이 없자 왕의 예언자 칼카스의 의견을 듣고 첫째 딸 이피게니아를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바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영웅 아킬레스와 결혼한다는 구실로 고향에서 불려와 여신의 제단에 산 제물로 바쳐질 뻔했으나 그녀를 불쌍히 여긴 여신이 사슴을 대신 제물로 바치게 하고는 흑해 연안의 크림반도로 탈출시켰다. - 여기까지가 굴룩의 1편 <아울리스의 이피게니아>
이후 트로이와 전쟁에서 아가멤논은 승리하고서 여러 차례 고비를 넘기고 귀향하지만 이피게니아를 제물로 바친 일에 원한 품은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에 의해 죽게 된다. 엘렉트라와 남동생 오레스테스는 아버지가 살해당한 후 8년 만에 미케네로 돌아가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와 살인을 도왔던 어머니의 정부 아이기토스까지 살해한다. - 여기까지가 리하르트 스트라우스의 오페라 <엘렉트라>
시간이 지나 아버지의 복수를 마치고 아르테미스 신상을 미케네로 가져오라는 미션을 받은 아들 오레스테스가 타우리스 현재의 크림반도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신전의 여사제로 일을 하던 누나 이피게니아와 극적으로 상봉한다. 이방인으로 체포된 동생을 왕명에 의해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이피게니아는 그리스군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아르테미스 여신은 오레스테스에게 누나와 함께 미케네로 돌아가 왕이 될 것을 명하면서 해피앤딩으로 마친다. - 여기까지가 글룩의 오페라 2편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아>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대해 적어도 2주 안에 러시아의 승리로 종식될 듯 이야기하던 국내외 통신사들의 우려와는 달리 아직까지 우크라이나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중심으로 결사항전을 이어가고 있고, 이미 러시아는 재래식 무기를 동원한 수도 점령에는 실패한 듯해서인지 계속해 크루즈 미사일과 항공 폭격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평화 협상의 진전이 조금씩 있다고 하니 희망이 보이는 듯하다.
아무 이득 없는 전쟁을 왜 일으켰는지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 결코 남의 일처럼 바라볼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상황인 것 또한 슬프다. 오페라에서는 전쟁이 비극을 거쳐 결국에 해피엔딩으로 끝난 것처럼 이번 사태도 조속히 평화로운 방향으로 해결되기를 기도한다.
(1) 일리아 공주의 이름은 일리아드(트로이)의 공주라는 대명사쯤이거나 프리아모스의 첫째 딸 일리오나 공주가 아닐까 추정해본다.
(2) 원전 이야기에서는 이다만테를 넵튠의 제물로 바치고 다른 신들의 분노를 받아 크레타에는 전염병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글 | 신금호
'오페라로 사치하라' 저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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