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house of d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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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츠앤컬쳐]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 두 나라 사이의 오랜 갈등이 결국 큰 분쟁으로 번지려는 모양새다. 소비에트연방 시절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에 정치적으로 편입되었으나 연방이 무너지면서 분리되었다. 그후 2014년 우크라이나 혁명으로 정부가 무너져 내부 상황이 어수선한 틈을 타 친러 세력들의 반정부 시위가 시작되자, 러시아는 크림반도 인근에 군을 증강 배치하며 간접적으로 크림반도 내 자치권 투표에 힘을 실어주었다.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압도적인 찬성률로 우크라이나 땅이었던 크림반도가 다시 러시아 영토에 편입되었다.

과거 러시아는 영국과 프랑스가 지원한 터키와의 크림전쟁(1853년~1856)에 패배해 전략적 요충지였던 크림반도 주변의 주도권을 내주어야 했던 아픈 과거가 있는데, 전쟁 중 선왕이 서거하는 바람에 갑자기 제위를 물려받은 알렉산드르 2세가 패배의 이유를 분석한 결과, 러시아의 전근대적인 농노제로 인해 늦어진 산업 혁명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혔다. 그렇게 1861년 황제가 농노제 폐지에 관한 칙령에 서명함으로 당시 2천3백만 농노는 자유를 찾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수입이 없는 이들이 낯선 큰 도시로 가서 전혀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만 하는 부작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당시 수도였던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노동자들은 대부분 농노 출신들이었고 화려한 도시의 이면 어두운 뒷골목의 허름한 술집과 매춘부들만이 희망을 잃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도시 노동자들을 반겨줄 뿐이었다.

살인적인 물가와 저임금 환경은 신세 한탄을 넘어 세상의 부조리에 분노를 일으키게 했다. 정부에 대한 반감은 알렉산드르 2세 황제 암살(1881년)까지 이어지고 다음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제위를 이어받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1917년 11월 결국 레닌에 의해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된다.

청년 소설가 도스토옙스키(1821~1881)는 이러한 사회에 불만이 많았고 당시 금지되었던 페트라솁스키 모임에서 러시아 반체제 인사 벨린스키의 편지를 낭독했다는 이유로 체포되나, 사형 직전 황제의 특사로 감형받아 4년간 시베리아의 옴스크에 투옥된다. 당시 감옥에 반입 가능한 책은 오직 성경뿐이었고 그 안에서의 경험은 그의 관심사를 정치에서 철학과 종교로 바꾸어 그는 점차 혁명가에서 보수적인 슬라브주의자가 되었다.

4년간의 수감 생활을 바탕으로 <죽은 집의 기록(1862)>, <죄와 벌(1866)>,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79)> 등의 소설을 썼고 이후 도스토옙스키는 푸시킨(1799~1837), 톨스토이(1828~1910)와 함께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그의 대표 소설 <죄와 벌>에서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그가 자주 이용하는 전당포 여주인의 인정머리 없음에 치를 떨고 그녀를 죽이려는 마음을 먹는다. 그는 살인을 계획하면서 이는 숭고한 정의의 실현이라 굳게 믿으며, 사회의 부조리를 없애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빠져 결국 현장을 목격한 인물까지 죽이고 만다. 하지만 그를 사랑하는 여인의 끈질긴 설득 끝에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수하게 된다. 그는 감옥에서도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굳게 믿었지만, 어느 날 꿈을 통해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세상을 파괴했는지 느끼게 되고 감정적으로 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힘은 분노가 아니라 사랑과 용서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죄와 벌>에 앞서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의 옥중 생활을 묘사한 소설 <죽은 집의 기록>을 통해 섬세한 상황묘사와 심리묘사로 작가로서 능력을 발하기 시작했다. 주인공 고리안치코프가 감옥에 들어가 별별 죄목의 범죄자들이 가득한 그 안에서도 인종, 출신, 계급, 직업별로 파벌을 이뤄 다투는 인간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깊은 인간 내면의 악마적 심리까지 관찰하는 이야기가 전개되고 결국 그는 무죄로 감옥에서 풀려난다. 죄수들이 잡아 온 상처 입은 독수리가 마지막에 건강을 회복하고 풀려나는 장면을 통해 은유적으로 주인공의 상황을 묘사하기도 했다.

훗날 체코를 대표하는 작곡가 야나체크(1854~1928)가 이 소설에 영감을 받아 오페라 <죽은 이의 집에서(1927-28)>를 작곡한다. 야나체크의 마지막 작품이었기에 지휘자 프란티쉑 질레크가 미완성으로 남은 이 작품을 정리해 완성했고, 1930년 체코 브르노 국립극장에서 초연하여 현재까지 세계 유수의 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을 법한 경험이지만 필자에게도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해서 잠조차 이룰 수 없었던 날이 있었다. 누군가를 미워하며 그 분노를 못 이겨 항상 예민하고 폭발 직전의 정신 상태로 살아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우연히 미워하던 상대를 만났는데 그의 형편이 썩 좋지 않아 보여 내색은 안 했지만 속으로 측은지심을 느끼고, 더이상 미워하지 않기로 맘을 먹었다. 그리고는 눈을 떴다. 꿈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음 한구석에서 십 년을 묵은 듯한 체증이 갑자기 해소되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을 했다.

이성적으로 잊어버리자 여러 번 생각했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이던가? 감정의 문제는 이성으로 해결할 수 없다. 감정적으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 현대인들은 감정의 문제를 머리로 풀려고 하기에 시간이 지나도 그 응어리를 계속 마음속으로 키우며 살아가면서도 문제 해결 능력을 그 어디서도 배우지 못하고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걸작 <죄와 벌>의 주인공은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자신이 저지른 일들로 인해 세상이 파괴되는 꿈을 꾸고는 그제야 비로소 그 죄가 매우 부적절하고 잘못된 것이란 생각을 한다.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의 수많은 흉악범 중 상당수가 스스로 저지른 범죄의 원인을 사회적 문제로, 즉 자신의 잘못이 아닌 외부적 요인 탓으로 돌린다고 한다. 범죄자들이 이렇게 생각한다면 과연 감옥이라는 곳이 높은 벽과 시스템만으로 그들을 교화시킬 수 있을까.

우리는 오로지 경쟁에서 이기는 것에만 매진하면서 우리 자녀의 감정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이 알게 모르게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감정적 훈련은 어디서 받을 수 있을까? 그렇게 감정적 응어리를 푸는 법을 모르는 성인들이 결국 도스토옙스키의 라스콜리니코프와 같은 사이코패스가 되는 불행한 사회는 어두운 미래만을 보장할 뿐이다.

갈등을 해결할 방법은 복수심으로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해 남의 것을 빼앗아 공평하게 나누어주는 것이 아닌, 사랑과 용서의 씨앗을 마음에 뿌리는 예술의 간접 경험을 통해 삶의 희망을 길러내는 것이 우리 사회가 미래에 치러야 할 비싼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신금호​
​신금호​

글 | 신금호
'오페라로 사치하라' 저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www.mcultur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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