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역사화의 배경이나 종교화의 공간 처리를 위한 부속 장치였던 풍경은 1750년대 이후, 풍경화라는 하나의 가치 있는 미술 장르로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당시 사회 변화와 그에 따른 삶의 방식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18세기 후반 유럽은 전쟁 등이 없는 평화로운 시기였고, 이에 많은 사람들이 자국 내 여행이나 다른 국가로의 여행을 쉽게 떠날 수가 있었다. 이렇게 여행을 하며 보고 느낀 자연의 아름다움과 추억을 남겨두고자 여행객들은 화가들에게 풍경화를 주문하게 된다.
풍경화의 부상과 함께 이 분야에 두각을 나타낸 작가들이 나타났는데, 그중에서도 영국의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1775~1851)는 폭풍우와 난파선, 화산 폭발, 눈사태, 화재 등 재난의 모습을 화폭에 많이 담았다. 영국을 대표하는 풍경화가 중의 한 명인 윌리엄 터너는 유럽에서 낭만적인 풍경화가로 큰 명성을 얻었다.
건축가이자 화가였던 토마스 말튼(Thomas Malton)(1748~1804)에게 그림을 배운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며 빛과 색의 연구에 몰두했다. 그는 특히 재난을 주제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가 이 주제를 선택한 이유는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경험한 자연의 위대한 힘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터너가 1835년쯤 완성한 <불타는 국회의사당(The Burning of the Houses of Lords and Commons)>은 1834년 10월 16일 발생한 영국 국회의사당 화재사건을 사실적으로 잡아낸 수작이다. 화염에 휩싸인 국회의사당을 템스강의 배에서 목격한 그는 곧바로 스케치했고 몇 달 뒤에 유화로 재구성했다.
오른쪽 측면에 다리가 보이고, 뒤쪽으로 강물에 반사된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림을 가까이서 보면 국회의사당의 화재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풍경처럼 보이지만 멀리서 응시하면 강렬하지만 불분명한 색채의 혼합처럼 다가온다. 터너의 이 작품은 처음으로 역사적 사건을 예술로 승화한 동시에 20세기 추상화 탄생의 초석을 깔아줬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터너가 당시에 자신있게 공개한 이 그림이 많은 혹평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국회의사당과 같은 주요 관공서에서 발생한 화재는 그림의 구매자인 부유층에게 달가운 소재가 아니었다. 껄끄러운 소재도 문제였지만 그것을 다룬 방식도 당대의 심미안에 맞지 않았다. 터너는 다리 위와 앞쪽 강둑에 바글바글 모여서 불구경을 하는 사람들을 그려 넣었다. 고상해야 할 예술작품에 하층계급을 그려 넣은 부분이 문제였다. 결국 국회의사당 화재 사건을 소재로 한 이 그림은 영국에서는 살 사람을 찾지 못해 미국으로 팔려가게 된다.
방화와 관련하여 우리나라 형법은 사람이 주거로 사용하거나 사람이 현존하는 건물, 기차, 자동차, 선박, 항공기 등에 불을 놓거나(현주건조물 등 방화) 공용(公用) 또는 공익을 위해 사용하는 건조물을 불태우면(공용건조물 등 방화) 무기징역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앞선 장소 이외의 일반적인 장소에 불을 놓는 경우(일반건조물 등 방화)에는 2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장소가 아닌 어떠한 물건을 불태워 공공의 위험을 발생하게 한 자는 1년에서 10년 사이의 징역에 처하고, 자기 소유의 물건을 불태워서 공공에 위협을 주는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다.
화재와 방화와 관련된 사건사고는 심심찮게 일어나는데, 남이 버린 재활용품이나 쓰레기에 불을 낸 경우에는 어떠한 처벌을 할 수 있을까? 무주물(無主物)에 불을 낸 것을 어떻게 처벌할 수 있을지가 쟁점이었는데, 여기서 무주물이란 현재 소유자가 없는 물건을 말한다. 과거에 누군가의 소유물이었을지라도 그 후에 무주(無主)로 되면 무주물이 된다. 또 하나의 쟁점은 재활용품이나 쓰레기에 불을 낸 것을 공공의 위험을 발생시켰다고 볼 수 있는지였다.
실제 2009년 1월 추운 겨울 어느 날 A는 노상에서 그곳 전봇대 주변에 놓인 재활용품과 쓰레기 등을 발견하고 소지하고 있던 라이터를 이용하여 불을 붙인 다음 불상의 가연물을 집어넣어 그 화염이 사람 키만큼 커지도록 하여, 법원에서 이를 판단한 적이 있다.
대법원은 형법에서 방화의 객체인 물건이 자기의 소유에 속한 때에는 이를 감경하여 처벌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바, 방화죄는 공공의 안전을 제1차적인 보호법익으로 하지만 제2차적으로는 개인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점, 현재 소유자가 없는 물건인 무주물에 방화하는 경우에 타인의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 점은 자기의 소유에 속한 물건을 방화하는 경우와 마찬가지인 점, 무주의 동산을 소유의 의사로 점유하는 경우에 소유권을 취득하는 것에 비추어(민법 제252조), 무주물에 방화하는 행위는 그 무주물을 소유의 의사로 점유하는 것이라고 볼 여지가 있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불을 놓아 무주물을 소훼하여 공공의 위험을 발생하게 한 경우에는 ‘무주물’을 ‘자기 소유의 물건’에 준하는 것으로 보아 처벌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이 당시는 건조한 겨울밤이었고 당시 강추위로 바람도 어느 정도 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이 사건 장소는 주택가인데다가 근처에 현수막, 의자, 합판 등 가연성 물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던 점, A가 라이터를 이용하여 재활용품과 쓰레기 등에 불을 붙인 다음 다른 가연물을 집어넣어 처음에는 작았던 화염의 높이가 A의 키 정도(약 160cm)까지 달하게 된 점, 위 전봇대에 설치된 전선의 높이는 그 옆에 세워진 화물 차량 높이의 약 3배에 이르지만, 위와 같은 화염에 의하여 그 전선에 직접 불이 붙지는 않더라도 그 열기에 의하여 그 전선이 손상을 입을 수도 있는 점, 이에 더하여 이 사건 장소는 A의 부모님 집에서 30~35m 거리에 불과하여 A가 단순히 추위를 피하기 위하여 이 사건 장소에서 불을 피울 이유가 없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A가 라이터를 이용하여 재활용품과 쓰레기 등에 불을 붙인 다음 불상의 가연물을 집어넣어 그 화염을 키움으로써 전선을 비롯한 주변의 가연물에 손상을 입히거나 바람에 의하여 다른 곳으로 불이 옮아 붙을 수도 있는 공공의 위험을 발생하게 하였고, A가 그러한 위험발생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고 할 수도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공공의 위협이 되는 행위였다고 보았다.
글 | 이재훈
성신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국가과학기술연구회 감사위원회 감사위원
변호사 / 변리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