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unciation_Fra ANGELICO(1437~1446)
Annunciation_Fra ANGELICO(1437~1446)

[아츠앤컬쳐]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395~1455년)는 르네상스의 발원지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활동한 화가이자 도미니코 수도회의 수사였다. 또한 그는 중세 말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되는 시기에 활동하였고, 르네상스기에 발달하기 시작했던 기술인 원근법을 사용하여 중세적인 주제를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한 화가이기도 했다.

「수태고지(受胎告知, Annunciation)」는 기독교 미술의 오랜 주제 중 하나이다. 수태고지는 신약성서의 누가복음 제1장 26~38절을 따른다. 예수 그리스도가 잉태되었음을 알리는 대천사 가브리엘과 이 소식을 전해 듣는 마리아가 주요 인물이다. 때에 따라서는 시녀, 헌납자 등 제3자를 배치하기도 한다.

Annunciatio_Lorenzo_Lotto(1527)
Annunciatio_Lorenzo_Lotto(1527)

중세 르네상스 때에는 성모의 순결의 상징인 백합 또는 올리브 가지를 들었고, 성모는 서있거나 앉은 채로 이들을 맞이한다. 중세에는 기본적 형태에 성부의 신, 성모 앞에 날아와 앉는 성령의 비둘기 또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그리스도 등을 배치하기도 했다. 안젤리코의 산 마르코 수도원 벽화가 수태고지 도상 중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이다. 이처럼 전통적인 도상적 관례를 따라 그려진 작품은 플랑드르 화가인 로베르 캉팽(RobertCampin, 1375~1444년), 이탈리아의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년), 로렌초 로토(Lorenzo Lotto, 1480~1556년)의 작품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 그림들은 전통적으로 복잡한 도상적 규범에 따라 그려진다.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도 그런 전형적인 도상에 따라 그린 르네상스 초기의 작품이다. 그림을 보면 여러 가지 관례화된 표현들이 눈에 띈다. 화면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오른쪽의 건물 내부를 보면 대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명에 따라 동정녀 마리아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모습이 묘사돼 있다. 공손하게 무릎을 꿇은 가브리엘은 붉은색의 전투복 차림으로 그려졌다.

Annunciation_Robert Campin(1405~1406)
Annunciation_Robert Campin(1405~1406)

독서에 열중하고 있던 마리아는 예기치 않은 천사의 방문과 그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듣고서는 양팔을 가슴에 얹은 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왼편 상단에서 사선으로 마리아에게 투사되는 성령의 빛은 동정수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빛줄기 속에는 성령의 상징인 비둘기가 그려져 있다. 건물 왼쪽의 나무와 풀이 무성한 정원 역시 마리아의 처녀성을 뜻하는데 그곳에는 하느님의 계율을 어겨 막 낙원에서 추방되는 아담과 이브가 그려져 있다. 그들이 낳게 되는 자손은 장차 태어날 예수에 의해 구원받게 된다는 점에서 그림은 순환적이다. 한편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실적 존재라기보다 개성과는 거리가 먼 이상화되고 유형화된 존재로 묘사돼 있다.

일반적으로 고지(告知)라는 용어는 상대편에 대하여 특정한 내용의 사실을 알린다는 의미로 사용된다(민법 제559조, 제578조, 제669조 등, 형사소송법 제160조 등). 그러나 소송법 또는 행정법에서는 고지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경우가 있다. 소송법상으로는 결정(決定) 또는 명령(命令)을 알리는 것을 말한다. 판결(判決)을 알리는 선고(宣告)와는 달리 결정 또는 명령은 고지에 의하여 성립하고 효력을 발생한다. 민사소송법은 법원사무관 등은 고지의 방법, 장소와 연월일을 재판의 원본에 부기하고 이에 날인하도록 하고 있다(민사소송법 제221조). 행정법상으로는 의무의 내용과 그 부과를 알리는 것을 말한다. 납세의 고지(국세징수법 제3조) 등이 이에 속한다.

그 중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보험계약과 관련된 고지일 것이다.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는 보험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 사고발생률을 측정하기 위하여 필요한 중요한 사항을 고지하고 또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부실한 것을 고지하지 아니할 의무를 지게 된다(상법 제651조). 이것을 고지의무라고 한다. 이 고지의무는 보험계약의 효과로서 부담하는 진정한 의무가 아니고 단지 계약의 전제요건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고 손해배상의무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물론 계약의 해지라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고지의무를 부담하는 자는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이다. 고지는 계약성립시까지 하여야 한다. 고지의 방법에는 법률상 특별한 제한이 없으며 서면으로 하든 구두로 하든 또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상관없다. 고지의무의 대상이 되는 사실은 ‘중요한 사항’이며 여기에서 ‘중요한 사항’이란 보험자가 위험을 측정하여 보험의 인수여부 및 보험료를 판단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사실인바 ‘보험자가 그 사실을 알았던들 계약을 체결하지 않거나 적어도 동일조건으로는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객관적으로 판단되는 사정’이다.

이러한 중요한 사실은 손해보험에 있어서는 보험의 목적 자체의 구조 용도 장소 거주자의 직업 등이고, 생명보험에 있어서는 피보험자의 존속친의 유전적 질병의 유무, 그 건강 사망연령 사인, 본인의 결핵 뇌일혈 위암 늑막염 신장염, 배우자의 폐결핵 피보험자의 형제의 폐결핵 사망, 수치부의 질병 등은 모두 중요한 사실이다.

중요한 사항에 관한 불고지 또는 부실의 고지(객관적 요건)가 고지의무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주관적 요건)에 의한 때에는 고지의무위반이 되므로 보험자는 원칙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게 된다.

판례는 여기서 중대한 과실이란 현저한 부주의로 중요한 사항의 존재를 몰랐거나 중요성 판단을 잘못하여 그 사실이 고지하여야 할 중요한 사항임을 알지 못한 것을 의미하고, 그에 관한 증명책임은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보험계약을 해지하고자 하는 보험자에게 있다고 판시하였다.

실제로 A는 대퇴골두괴사증으로 8회에 걸쳐 치료를 받은 사실이 있음에도 보험청약서에 A가 질병으로 7일 이상 계속하여 치료받은 사실이 없다고 기재하였으므로 A는 보험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보험회사에 고지하여야 할 사항을 사실대로 고지하지 않았다고 할 것이고, 가사 ‘계속하여’의 의미를 통원 치료의 경우 연속하여 매일 병원에서 치료받는 것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A가 대퇴골두괴사증으로 보험계약 체결 전 1년 내에 일정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은 점, A의 가족이 천식이 있음을 미리 고지하고 보험계약이 거절된 경험을 A가 사전에 알고 있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대퇴골두괴사증으로 치료받은 사실은 보험계약 체결 여부 및 조건을 결정함에 있어 고려되는 ‘중요한 사항’이라고 할 것이고 A는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 이를 고지하지 아니하였다고 볼 것이므로 고지의무를 위반하였다고 한 판결이 있다.

글 | 이재훈
문화 칼럼니스트, 변호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 (주)파운트투자자문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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