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으로부터 차오른 슬픔
[아츠앤컬쳐] 유난히 쓸쓸한 가을날이면 샹송 ‘고엽’과 함께 떠오르는 또 하나의 노래가 있다. 바로 ‘돈데 보이’다. 슬픔에도 여러 종류가 있듯 ‘고엽’이 잔잔한 서글픔을 준다면 ‘돈데 보이’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울컥한 무언가를 느끼게 한다. 어느새 후렴구를 따라 부르다 보면 그 슬픔이 매우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된 것임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그저 입술에서 맴도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심연으로부터 끌어올려진 슬픔, 그것은 무엇보다 음악의 진정성에서 기인한다.
‘어디로 가려나’라는 뜻을 지닌 ‘돈데 보이’는 몰래 국경을 넘어온 멕시코 불법 이민자의 외롭고 고단한 삶을 표현한 노래이다. 실제로 멕시코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티시 이노호사(Tish Hinojosa)의 이 곡은 이민자들의 심정을 가감 없이 대변하며 눈물을 자아낸다. 마치 과거를 회상하듯 담담하게 고백하는 가사엔 그들의 두려움과 처절함 그리고 애끓는 그리움이 영화의 장면처럼 비쳐있다. 그리고 그 장면은 ‘어디로 가려나’라는 하나의 물음에 멈추는데, 여기엔 비참한 현실과 절절한 사랑, 그 가운데도 꺼지지 않는 꿈이 함축적으로 담겨있다.
“나는 어디로, 어디로 가야 하나요. 희망을 찾아 헤매고 있어요.
나 혼자, 나 혼자 외로이. 사막을 떠도는 도망자가 되었네요”
“Donde voy, Donde voy. Esperanza es mi destinacion.
Solo estoy, solo estoy. Por el monte profugo me voy”
구슬프지만 단순한 멕시코풍 선율은 오히려 가사의 비극성을 부각시키며 주제의 무거움보다는 애달픔을 드러낸다. 하루가 가고 일 년이 지나고.... 돈 몇 푼에 못 할 것이 없는 척박한 삶, 고국에 두고 온 연인에게 보낼 돈을 모으기까지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하는 처절한 심정이 노래 안에 눈물 자국처럼 번져있다.
‘돈데 보이’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며 감동을 주는 가장 큰 이유는 싱어송라이터 이노호사의 존재감이다. 이노호사는 텍사스에 정착한 멕시코 이민자 가정의 13남매 중 막내딸로, 멕시코 포크음악과 테하노(Tejano), 콘훈토(Conjunto) 등 텍사스-라틴 음악의 영향권 내에서 자란다. 십대 시절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인 그녀는 1979년 텍사스 커빌(Kerrville)의 포크송 창작 경연대회에서 우승하며 이를 발판으로 미국 컨트리 팝 시장에서 최고의 성과를 거두게 된다.
이노호사의 성공은 노래, 기타, 작곡을 망라한 뛰어난 음악적 능력에서 출발하며, 빌보드 컨트리 부문의 두 번의 챠트와 함께 1992년 ‘컬쳐 스윙(Culture Swing)’으로 인디레이블연합(NAIRD)의 올해의 ‘포크앨범상’을 수상하며 경력에 정점을 찍는다. 그녀를 두고 시카고 트리뷴은 ‘일류 싱어송라이터’로 평가했는데, 이는 탁월한 작품성과 가창력을 인정하는 최고의 찬사라 할 수 있다.
이노호사는 ‘돈데 보이’가 수록된 ‘홈랜드(Homeland, 1989)’와 ‘컬쳐 스윙’ 이후에도 ‘프론테하스(Frontejas, 1995)’, ‘미로를 꿈꾸며(Soñar del Laberinto, 1996)’, ‘진실의 신호(Sign of Truth, 2000)’ 등을 통해 인기와 명성을 쌓았으며 최근까지도 17번째 앨범인 ‘웨스트(West, 2018)’를 발표하며 라틴 컨트리 음악의 대표 주자로 변함없이 활동하고 있다.
지난 6월, 엘살바도르의 한 부녀가 미국-멕시코 국경 사이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는 도중 숨진 채 발견되었다. 아버지 마르티네스는 2살 된 딸 발레리아를 자신의 상의 안에 꼭 품고 있었고 딸은 떨어지지 않으려 아빠의 목을 여린 팔로 감은 상태였다. 이 한 장의 사진은 보는 이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을 안겨주었다. 꿈이란 때로는사람을 너무나 비참한 죽음으로 내몰기도 한다. 마음과 영혼의 물음인 ‘돈데 보이’는 아직도 꿈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심연의 슬픔을 안타까이 노래하고 있다.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