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한국 성악가들이 참 대단하다. 차이코프스키, 쇼팽과 함께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로 알려진 2023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12명 입상자 중 3명의 입상자와 1명의 심사위원 등 총 4명이 모두 한국인이었다.
이번 콩쿠르에는 역대 최다인 412명 지원해 최종 결선에 12명이 진출했다. 최종 결선 진출자 12명 중 1위 김태한(22), 5위 베이스 정인호(31), ‘순위 없는 수상자(Unranked Laureates) 바리톤 권경민(30) 등 3명이 한국인이었다. 여기에 심사위원 17명 중에 세계적 소프라노 조수미씨가 있었다. 한국 성악가들의 K클래식 파워를 실감하는 장면이다.
김태한은 22살의 나이로 최연소 1등, 아시아 최초 1등이라는 기록을 내며 기염을 토했다. 그는 불과 2년전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중앙일보 콩쿠르에 나가 2등에 그친 바 있다. 당시의 경연 유튜브를 들어 보면 그의 소리가 20살의 대학생 소리로 당장 세계적 오페라 무대에 설 수 있을 정도로 성숙된 것으로 보기에는 조금 부족해 보였다. 그런데 불과 2년만에 그야말로 폭풍 성장을 한 것이다.
한국인 성악가들끼리의 경쟁이 곧 세계적 경쟁이라는 것은 1등을 한 김태한과 5등을 한 베이스 정인호의 경력을 비교해보면 금방 확인된다. 김태한의 9년 선배로 서울대 음대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한 베이스 정인호는 국제콩쿠르에서도 다수 1위 입상하는 등 바리톤 김태한에 비해 압도적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퀸 엘리자베스 유튜브를 들어보면 그가 당장 밀라노 라 스칼라에서 롯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중 그 유명한 베이스 아리아 ’La calunnia’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세계 최정상급의 베이스 소리였다.
바리톤 권경민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데트몰트음대에서 공부했다. 그가 부른 레온카발로의 오페라 팔리아치 중 토니오의 처절한 아리아 ‘Si puo’를 들어보면 목소리가 아주 건강하고 표현력이 너무나 풍부하다.
퀸 1위 김태한, 5위 정인호, 입상자 권경민의 노래 유튜브를 심사위원 기분으로 들었음에도 세 사람 모두 세계 정상급으로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심사위원 12명의 귀는 날카롭고 정확했다. 심사위원단은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 대회 기간 중 서로간의 대화도 엄격히 금지됐다. 최종 결과는 심사위원들끼리 종합 토론을 거치지 않고 바로 발표되어 심사위원 조수미씨도 김태한이 최종 1위인 것을 최종 발표 후에 알게 되었을 정도라고 한다.
조수미씨는 “우승자뿐만 아니라, 결선에 진출한 한국 성악가 3명 모두 너무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덧붙여 “기뻐하는 것도 오늘 하루만이고, 내일부터 다시 열심히 갈 길을 가야 한다. 앞으로 갈 길이 매우 멀고도 험난할 수 있으니까, 제가 옆에서 잘 도와줄 것”이라며 후배 한국 성악가들을 든든하게 했다. K팝이 전세계를 흔들고 있듯이 K클래식의 국제 위상도 위에서 확인된 바와 같다. 국가는 K클래식에 대해서도 마땅히 K팝과 똑같은 관심과 지원을 보내야 할 것이다.
글 | 강일모
경영학 박사 / 에코 에너지 대표 / 차의과학대학교 법인이사 / 제2대 국제예술대학교 총장 / 전 예술의전당 이사 / 전 문화일보 정보통신팀장 문화부장 / ‘나라119.net’, ‘서울 살아야 할 이유, 옮겨야 할 이유’, ‘메타버스를 타다’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