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위대한 스승‘. 멋진 말이다. 동시에 위대한 스승의 ’수제자‘란 말도 만만치 않게 부럽고 멋진 말이다. 공자는 3,200여 명의 제자 중 수제자로 안회(顔回)를 꼽았고, 예수의 12제자 중 수제자로는 베드로가 꼽힌다. 1946년 12월 1일 체코에서 태어난 루돌프 부흐빈더(Rudolf Buchbinder)는 베토벤의 직접 제자는 아니다. 그럼에도 부흐빈더는 베토벤의 현존하는 최고 수제자라 불리기에 충분하다. 부흐빈더는 지난 6월 28일부터 7월 9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총 7회에 걸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전곡 연주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코로나와 방역수칙으로 지난 2년 넘게 사실상 잠을 자고 있었던 예술의전당이 부흐빈더에 의해 비로소 다시 깨어난 느낌이었다.
76세의 부흐빈더는 7회 총 10시간이 넘는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할 때 그는 세상의 어떤 현역 청년 피아니스트 못지 않은 에너지, 리듬, 템포, 다이나믹을 쏟아내 감동을 주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피아니스트들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에 도전한 사례는 있었다. 이것도 모두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12일 이내에 7회의 연주회를 통해서 전곡 연주를 마친 사례는 아직 없다. 이처럼 짧은 기간에 매일 다른 10시간의 작품들을 완벽하게 암기해서 연주하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흐빈더는 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금년에 한국에 오기까지 59회나 반복했고 서울에서 60회 기네스 기록을 세웠다. 유니버설 뮤직의 공식 유튜브에서 부흐빈더는 베토벤 소나타를 공개 강의 중이다. 그는 여기서 베토벤 소나타의 핵심을 이렇게 해설한다.
”베토벤은 극단의 사람(man of extreme)이다. 다이내믹(셈 여림)은 베토벤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열정(Appassionata)을 예를 들면 그렇다. 베토벤에서 포르테와 포르티시모는 확실히 다른 것이다. 일반적 지휘자들도 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다.
베토벤은 항상 노래할 것을 주문했다. espressivo도 여러 가지다. con espressivo(감정을 담아서), con espressione(표정을 담아서), con molto espressivo(감정을 매우 풍부하게)를 구분하며 언제나 감정이 매우 풍부한 연주를 하도록 했다. 베토벤에서 잘못된 음을 연주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열정 없이 연주하는 것에는 어떠한 핑계도 용납되지 않는다. 베토벤은 결국 평생 온기와 사랑을 추구한 사람이다.”
흔히 바하 평균율 곡집 1,2권이 ’구약성서‘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총 32곡이 ’신약성서‘로 불린다. 음악적 위대성을 따지면 바하 평균율이냐 베토벤 소나타 전집이냐 논란은 있지만, 실제 대중적으로는 베토벤이 조금 더 인기가 있고 실제 음악회에서 연주 빈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물론 바하 시대에는 베토벤이 그렇게 중요시하는 음악에서의 다이나믹 즉 셈 여림을 비교적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피아노라는 악기가 아직 발명되기 이전이라 동시 비교하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76세의 부흐빈더는 8-9월에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그라페네크, 독일 함부르크, 에어랑겐, 베를린, 홍콩 등에서 지휘와 연주가 있다. 10월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5,6,7일 연속으로 안드리스 넬슨스가 지휘하는 보스톤 심포니와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K.488을 연주하고, 12, 14, 15일 파비오 루이지가 지휘하는 달라스 심포니와 브람스 피아노협주곡 제2번을 연주한다. 이후 11월 19, 20, 21일에는 독일 드레스덴에서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K. 491을 협연한다. 내년에는 다시 한국에 와서 이번에는 자기 자신의 지휘와 독주와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1번부터 5번까지 전곡 연주회를 갖는다.
브라보, 부흐빈더!
글 | 강일모
경영학 박사 / 에코 에너지 대표 / 차의과학대학교 법인이사 / 제2대 국제예술대학교 총장 / 전 예술의전당 이사 / 전 문화일보 정보통신팀장 문화부장 / ‘나라119.net’, ‘서울 살아야 할 이유, 옮겨야 할 이유’, ‘메타버스를 타다’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