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위에
습한 간(肝)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서스 산중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肝)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던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찌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沈澱)하는 프로메테우스
- ‘간(肝)’ -윤동주
[아츠앤컬쳐] 윤동주가 지은 이 시는 용궁 유혹에 빠져 간을 잃을 뻔 한 토끼 이야기를 담은 ‘구토지설’ 설화와, 나약한 인간을 위해 제우스를 속이고 불을 훔친 죄로 코카사스의 큰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매일 쪼아 먹히는 형벌을 감내한다는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모티프로 전개 된다. 간(肝)은 우리 신체의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장기이자, 두 설화와 신화를 매개 한다.
여기에서, 나는 또 다른 ‘간(間)을 주목해본다. 정신적 자아와 육체적 자아, 이상적 자아와 현상적 자아, 동양의 설화와 서양의 신화, 그 ’사이‘, 그 ’사이‘의 겹침으로 이 시는 새롭게 탄생 되었다.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신화와 설화, 전통과 현대 등등. 무수한 시공간의 교집합인 틈 속에, 그 의외의 조합 속에 새로움과 생명, 예술은 탄생한다.
틈 만나면... In Between
시공간의 ‘틈’, ‘사이’, ‘between’ 이라 명명되는 빈 공간, 이 빈 공간은 카오스(chaos)의 세계이다.
‘between’은 공간적으로 겹친 곳에서 생겨나고, 시간적인 겹침 떄문에 생긴다. 안도 바깥도 아닌 부분이며, 그것은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다. 시간 또한 선형으로 흐르지 않는다. 서로 겹쳐있다. 양자의 세계에서도 과거와 현재, 낮과 밤, 삶과 죽음 등이 중첩되고 얽혀있다.
과거와 현재, 미래는 일직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present present)는 과거에도 존재했던 현재(past present)이며,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의 현재(future present) 교집합 으로 존재한다. 우리의 시간은 혼돈이다. 이 혼돈 속에서 예술은 탄생된다.
그러므로 예술은 혼돈이다. 반인반수(혼돈) 같은 기괴하고 섬뜩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예술가 또한, 신과 인간 사이에서 신도 인간도 아닌 괴물의 모습으로 존재 한다.
익숙하고 친숙한 것이 어느 날, 낯설고 섬뜩한 모습으로 다가 온다. 그 괴물스러움이 오늘도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평소에, 버려지는 것(바리데기)들, 이름없는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과 같은 미미한 존재에 관심이 갖는다. 우리가 “1”과”2“라고 규정짓는 순간 사라지는 1과 2사이의 수많은 존재들, 그 존재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거시세계로 안내하는 작업에 일종의 사명감을 갖고 있는 듯 하기도 하다.
예술가들도 여기에 위치한다. 자본주의가 낳은 철저한 ’sold out' 신화 속에, 작품보다는 유명 예술가들의 사인만을 탐하는 마케팅의 수단으로 자리 한다. 예술 시장 안에서 정작 예술가들은 배제되어지는 잔혹한 현실! 예술가들 또한 이 시대의 바리데기들이 아닌가....
오늘날, 정보화 시대에 미끄러지고, 버려지고 배제되는 것들, 그 속에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그들의 작은 이야기들을 익숙하고 사랑스럽지만 조금은 기괴한 모습으로 그려나 갈 것이다. 사무엘 베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두 주인공 디디와 고고처럼, 헤겔이 그랬듯이, 이미 항상 와 있는 ‘always’와 아직 아닌 ‘not yet’의 틈에서 오늘도 반복되는 고된 삶을 살아내고 있는 바리데기들... 틈 만나면 그곳에 새로운 꽃이 핀다.
‘작지만 위대한 바리데기들의 이야기’_ To be continued
나는 오늘 그리고 그 이전의 존재이지만, 내 안에는 내일과 모레, 그리고 미래가 있다.
작가 이유주
동덕여대 회화과, 영국 센트럴세인트마틴스 런던대학교 학사, 영국 왕립예술대학 디자인과 석사, 동덕여대 회화과 박사수료. 파리 메종&오브제, 런던사치갤러리 브릭라이브&YG엔터테인먼트 콜라보 특별기획전, 한국민화뮤지엄기획전, New Power 34 월간민화 특별기획전, 2022 Artfesta in Jeju-Loop전, 한국의민화 이야기전, 초대개인전, 다시 피는 꽃 개인전, In Between 개인전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