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 광장. 헬싱키 대성당이 구심점이다.
상원 광장. 헬싱키 대성당이 구심점이다.

 

[아츠앤컬쳐] 오늘날의 핀란드는 세계에서 여러모로 가장 모범이 되는 선진국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핀란드’란 지명이 국명이 된 것은 1917년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이후이니 핀란드는 이제 100년이 조금 넘은 신생국인 셈이다.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의 중심축을 이루는 도로는 신생 핀란드의 국부(國父) 만네르헤임(C. Mannerheim 1867~1951)을 기념하는 만네르헤이민티에(Mannerheimintie), 즉, ‘만네르헤임 대로’이다. 헬싱키 시가지의 중심부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길게 뻗은 이 도로에는 알렉산테린카투(Aleksanterinkatu), 즉 ‘알렉산드르의 거리’가 동쪽으로 연결된다. 여기서 ‘알렉산드르’는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를 말한다.

핀란드는 오랜 기간 동안 스웨덴의 한 지방으로 존속했는데 당시 수도는 스웨덴과 가까운 남서해안의 투르쿠였다. 그러다가 1809년 스웨덴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하자 핀란드는 러시아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는 핀란드를 대공국으로 만들면서 러시아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당시 인구 4천 명 밖에 되지 않던 보잘 것 없는 헬싱키를 대공국의 수도로 격상하고는 대대적으로 도시계획을 단행했는데, 헬싱키가 수도로서 기념비적인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게 된 것은 헬싱키 도시계획을 전담하던 정치가 요한 에렌스트룀(1762~1847)과 독일 건축가 카를 루트비히 엥엘(1778~1840)의 노력과 열정에 힘입은 바가 크다.

대성당 계단 위에서 본 광장의 옛 의사당 건물
대성당 계단 위에서 본 광장의 옛 의사당 건물

‘알렉산드르의 길’을 따라 동쪽으로 약 400미터 가면 좌우 대칭의 널따란 장방형 광장이 펼쳐진다. 이 광장의 이름은 핀란드어로 세나아틴토리(Senaatintori). ‘상원광장’이란 뜻이다. 이 광장에서는 높은 계단 위 언덕에 솟아오른 듯한 하얀 헬싱키 대성당이 시선을 사로잡는데 마치 아크로폴리스 위에 세워진 파르테논 신전처럼 엄숙하고 정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대성당을 포함하여 상원 광장의 건물들은 모두 신고전주의 양식이고, 광장 자체도 완전 좌우 대칭이다. 광장의 서쪽 건물은 1832년에 건립된 헬싱키 대학 본관, 동쪽 건물은 1822년에 건립되어 1918년까지 의사당으로 사용되었으며 그 이후에는 수상과 각료의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니까 이 광장은 핀란드의 정치와 종교와 학문의 중심이며 헬싱키의 심장인 셈이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알렉산드르 1세의 손자 알렉산드르 2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는 러시아가 지배하던 폴란드에 대해서는 강압정책을 폈지만 핀란드에 대해서는 의회를 인정하고 핀란드어를 스웨덴어와 함께 공용어로 격상해 줄 정도로 유화정책으로 일관했다. 농노를 해방하는 등 러시아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던 그는 1881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암살당하고 말았는데 핀란드 대공국 의회는 그를 기념하여 1894년에 이 동상을 세웠던 것이다.

알렉산드르 2세 동상과 대성당의 돔
알렉산드르 2세 동상과 대성당의 돔

그런데 1884년에 제위에 오른 그의 손자 니콜라이 2세는 1899년부터 핀란드를 본격적으로 러시아화하기 시작했다. 이에 핀란드 사람들은 이 동상에 헌화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알렉산드르 2세를 기억하라는 무언의 항거였다. 바로 이 시기에 음악가 시벨리우스는 관현악곡 <핀란디아>를 작곡했는데, 러시아는 이 곡이 핀란드인의 민족의식을 고취시킨다는 이유로 <핀란디아>라는 제목으로 연주되는 것을 철저히 금지했다.

그후 1917년에 러시아 혁명으로 니콜라이 2세와 제정 러시아는 완전히 몰락했고 핀란드는 러시아의 정세가 혼란에 휩싸인 틈을 타서 그해 12월 6일 전격적으로 독립을 선포했다. 핀란드 민족주의자들은 이 동상을 철거하자고 했다. 사실 알렉산드르 2세가 핀란드를 위해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했다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외세의 지배자였던 것이다. 또 1935년에는 이 동상을 치우고 광장 양쪽에 핀란드의 문호 알렉시스 키비와 핀란드의 국부(國父) 만네르헤임의 동상을 세우자는 목소리도 있었다. 어쨌든 이 동상은 오늘날까지 원래 자리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니 이 광장은 핀란드와 제정 러시아와의 관계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역사의 현장임에는 틀림없다.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culturebo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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