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 <책 읽어주는 남자>를 영화화한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이하 <더 리더>)는 2008년 개봉 당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10대 소년과 30대 여성의 육체적 사랑을 다룬 덕분에 스티븐 달드리 감독은 소아성애자라는 오해까지 받았다. 더불어 아우슈비츠라는 역사적 비극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도 많은 설전이 오고 갔다.
이 작품은 누군가를 심판하거나 용서할 때, 당시의 법과 개인의 윤리적 판단 능력, 사회적 환경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또한 역사적 비극이 세대를 넘어 현재까지 주는 상처에 집중한다. 물론 그 안에 해결책은 없다. 마치 우리 한국 사회가 과거 일본과의 역사적 비극으로 인해 오늘날에도 계속 어려움과 분노를 겪는 것처럼 말이다.
1958년 독일, 15살 소년 마이클(데이비드 크로스)은 성홍열에 걸려 길거리에서 심한 구토를 하다 36살 여성 한나(케이트 윈슬렛)에게 도움을 받는다. 몇 달 후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찾아온 마이클을 한나는 알몸으로 유혹한다. 이후 둘은 정기적으로 만나 섹스를 하고 마이클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한나는 매우 복합적인 인물이다. 처음 만난 아픈 소년을 도와주는 따뜻한 마음씨를 갖고 있지만, 사랑하는 이에게 쉽게 상처를 준다. 소녀처럼 순수하고 예측 불가능하지만, 자존심이 강하고 자기의 직업에 충실하다. 둘이 관계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나는 소년에게 사랑을 나누기 전 책을 읽어달라고 요구하고, 독서와 섹스는 그들 관계의 모든 것이 된다.
이들의 위태로운 연애는 어느 날 한나가 아무 말도 없이 떠나면서 끝나게 된다. 8년 후 법대생이 된 마이클은 수업 차 참관한 제2차 세계대전 전범 재판장에서 피고인석에 앉아있는 한나를 보게 된다. 그녀는 아우슈비츠와 크라카우 근교의 수용소에서 여성 경비원으로 일하며 수감자들을 죽게 한 살인죄로 기소되었다.
한나는 주어진 임무에 충실한 성실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 임무가 잘못된 것임을 판단할 수 있는 도덕적 판단 능력이 부재하다. 동정심 많은 한나는 수용소 경비원으로 일할 당시 어린이 수감자들을 잘 보살펴 주었지만 정작 가스실로 보낼 이들을 선별할 때는 이들을 선택했다. 한나는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며 당당하게 주장한다. 다른 피고인들은 한나가 그들의 상관이고 명령을 따른 것뿐이라며, 그녀가 직접 작성했다는 명령 서류를 증거로 제출한다. 실은 한나는 문맹이어서 이 서류를 작성할 수 없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이를 숨기고 죄를 뒤집어쓴다. 이 사실을 아는 또 다른 인물은 마이클인데 증언할 경우 그녀의 죄가 경감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정의와 분노, 연정 사이에서 고뇌한다.
전범 재판으로부터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마이클은 아우슈비츠 피해자를 찾아가 이 사실을 알려준다. 하지만 무지는 무죄의 이유가 될 수 없기에 그녀는 한나를 용서할 수 없다. 당시 주어진 규칙과 법률을 따랐다 하더라도, 인간의 보편적인 도덕에 어긋나는 행위라면 스스로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리더>는 한나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문맹이었기 때문에 이런 판단 능력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고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 하여도, 끔찍한 범죄를 용서받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아우슈비츠는 현재 진행형인 이슈이다. 당시 직접적인 가해자와 피해자들에게뿐 아니라 이후 2세, 3세들에게도 큰 상처를 남겼다. 한나는 마이클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남겼고, 소년은 자라 누구와도 오랜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어른이 된다. 그에게는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 받은 딸 줄리아(한나 헤르츠스프룽)가 있다. 줄리아는 부모의 이혼과 가족에게 닥친 불행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을 가지고 자랐다. 영화 말미, 마이클은 줄리아에게 한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딸과의 화해를 시도한다.
<더 리더>는 이들의 관계를 통해 아우슈비츠 비극 당사자들과 전후 세대들이 겪는 혼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법적으로 혹은 다른 방식으로 이미 보상했다 하여 가해자들의 책임이 사라질 수 없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서로가 겪은 아픔을 그대로 소통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 과오는 세대를 걸쳐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그 주변인들 모두를 계속 괴롭힐 것이다.
글 | 도영진
이십세기폭스 홈엔터테인먼트 코리아 대표, CJ E&M 전략기획담당 상무 역임,
보스턴컨설팅그룹 이사 역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