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나무껍질에서 찾은 순환의 생명성

송필, 오늘 이전의 오늘1, 2024, 브론즈와 스테인레스 스틸에 야광안료, 123x80x270cm
송필, 오늘 이전의 오늘1, 2024, 브론즈와 스테인레스 스틸에 야광안료, 123x80x270cm

 

[아츠앤컬쳐] 산수화처럼 낮게 펼쳐진 산등성이를 넘어 시원한 폭포 물줄기가 넓게 쏟아져 내려온다. 산등성이는 태고의 대지처럼 메말랐지만, 죽은 나무의 등껍질을 뚫고 뻗어 나온 새순은 어느새 여린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그 매화의 꽃봉오리들은 기나긴 겨울을 버틴 후 선물로 받은 봄 햇살을 닮았다. 송필 작가의 <캐스캐이드 봄>처럼, 그의 작품들은 생명의 무한한 순환성을 상징한다. 리얼리즘 조각의 대표 조각가 송필은 자연과 시간이 만든 예술의 본을 특유의 노동집약적 조형어법으로 전해준다.

송필, 캐스캐이드 봄, 2024, 브론즈와 스테인레스 스틸에 야광안료, 152x17x110cm
송필, 캐스캐이드 봄, 2024, 브론즈와 스테인레스 스틸에 야광안료, 152x17x110cm

송필의 개인전 제목은 시간의 껍질(Skin of Time)이다. 작가의 작품 제작 방식과 신념이 담긴 제목에서 짐작되듯, 찰나의 순간이 켜켜이 쌓여 집적된 시간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송필 특유의 감성이 브론즈, 스테인레스 스틸, 야광 안료 등의 전통적인 재료를 만나 어떻게 창의적으로 재해석되는지 살펴보는 흥미로움이 넘친다. 송 작가의 경쟁력은 자연에서 흔하게 만나는 동식물의 형상을 통해, 형태와 물질, 그리고 시간의 흐름이란 철학적인 화두를 이해하기 쉽게 형상 조각으로 시각화한 점이다.

송필, 캐스캐이드 봄, 2024, 브론즈와 스테인레스 스틸에 야광안료, 152x17x110cm(조명 끈 모습)
송필, 캐스캐이드 봄, 2024, 브론즈와 스테인레스 스틸에 야광안료, 152x17x110cm(조명 끈 모습)

또한 오랜 시간 동안 천착한 생명의 선순환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작품에 담아낸다. 이번 개인전에선 의 요소도 적극적으로 도입해 눈길을 끈다. 작품 <새벽녘>에서처럼, ‘빛을 머금은 산등성이의 입체감을 표현한 작품을 벽면에 부착했다. 거친 표면(산등성이)과 부드러운 표면(매화 꽃망울)이 각기 다른 바른 방식으로 빛을 반사하거나 흡수하여 아주 독창적인 형태와 질감의 회화 작품을 보는 듯하다. 또한 높이 3미터가 넘는 작품 <이전의 오늘1>은 하늘을 향한 뿌리에서 어린 매화 줄기가 돋고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역시 야광 안료를 활용해 마치 반딧불이 불빛처럼 살아있는 생명의 상서로운 기운이 번진다.

송필, 서성이다, 2024, 브론즈와 스테인레스 스틸에 야광안료, 26x45x169cm
송필, 서성이다, 2024, 브론즈와 스테인레스 스틸에 야광안료, 26x45x169cm

안진국 미술평론가는 송필의 예술 속에서 시간은 단순히 흐르는 것이 아니라, 순간들이 모여 하나의 층을 이루고, 그 층들이 축적되어 시간의 층위를 형성한다. 그 속에는 생성과 소멸의 동시성, 순환성, 그리고 강인한 생명력이 존재한다. 순간들이 깃들어 있는 그곳에서는 생명이 끊임없이 피어나고 새로운 희망이 샘솟는다. 그는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의 흔적을 현재에 불러들이고, 이를 통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시간의 깊이를 새롭게 조망한다.” 평했다.

송필, 시간의 껍질, 2024, 브론즈와 스테인레스 스틸에 야광안료, 23x21x56cm
송필, 시간의 껍질, 2024, 브론즈와 스테인레스 스틸에 야광안료, 23x21x56cm

최근 시간의 껍질이란 주제를 작품으로 담아내는 송필 작가의 생각은 간결하다. 날카로운 칼날 위에 가까스로 버티고 선 것처럼 고된 삶의 연속일지라도, 희망의 빛줄기에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삶임을 깨닫게 한다. 실제로 죽은 나무의 줄기나 껍질을 채집해 작업한다.

5-1. 송필, 오늘 이전의 오늘2, 2024, 브론즈와 스테인레스 스틸에 야광안료, 20x20x132cm
송필, 오늘 이전의 오늘2, 2024, 브론즈와 스테인레스 스틸에 야광안료, 20x20x132cm

그의 작품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호하고 신비로운 감흥을 만나게 되는 이유도 일관된 작가적 진정성과 태도를 잃지 않기 때문이다. 쉽고 간결한 방법으로 깊은 철학적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줄 아는 송필의 작품은 청담동 호리아트스페이스에서 이달 14일까지 만날 수 있다.

송필, 오늘 이전의 오늘2, 2024, 브론즈와 스테인레스 스틸에 야광안료, 20x20x132cm(부분)
송필, 오늘 이전의 오늘2, 2024, 브론즈와 스테인레스 스틸에 야광안료, 20x20x132cm(부분)

 

송필(1970~) 작가는 경희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동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그동안 한국의 포스코미술관, ᆞ영은미술관, ᆞ아트센터 쿠ᆞ, 갤러리세줄, 중국의 상상미술관(송좡), ᆞ제로필드갤러리(베이징) 등 국내외에서 18회의 개인전과 100 여회 이상의 기획단체전에 참여했다. 학부와 대학원 시절 구상조각대전에서 특선을 수상으로 주목받기 시작해, 2015년 구본주예술상을 수상하면서 구상조각계의 대표주자로 위치를 굳혔다. 또한 장흥조각스튜디오 입주작가 (2014~2015), 영은미술관 창작 스튜디오 레지던시(2019~2020)에 참여한 바 있다. 작품은 경기도미술관(한국), 서울시립미술관(한국), 영은미술관(한국), 제주현대미술관(한국), 장욱진미술관(한국), 포항시립미술관(한국),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한국), 조이마루(한국), 메리어트 호텔(한국), 폴리옥션(베이징, 중국), MANET MUSEUM(베이징, 중국), 상하이 젠다이 MOMA MUSEUM(상하이, 중국), 왕화상미술관(중국 베이징) 등 국내외 기관 및 개인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글 | 김윤섭

명지대 미술사 박사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겸임교수
예술나눔 공익재단 아이프칠드런 이사장
정부미술은행 운영위원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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