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비즈니스에서 마케팅은 물건이나 콘텐츠를 생산하는 그것만큼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소비자는 같은 퀄리티라면 당연히 좀 더 낮은 가격의 제품을 찾을 수밖에 없다. 같은 품질의 낮은 가격의 제품을 생산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원자재의 가격을 낮게 구매하고 인건비를 낮추는 방법인데 현대의 노동력에 대한 가치는 정부 차원에서 조절하기에 기업은 노동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 별별 방법을 사용하지만, 변동성이 큰 인간의 생산성보다는 대량생산을 통해 생산 단가를 낮추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요 확보를 위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자 홍보와 마케팅에 어마어마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TV, 신문, 잡지, 유튜브, SNS 등 다양한 매체가 그 수요에 맞게 팔색조처럼 형태를 변형하며 발전하고 있고 소비자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를 기대하면서 광고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요즘은 인터넷 매체를 통해 유명해진 인플루언서들이 수억대 수입을 자랑하면서 기업 광고시장에 떠오르고 있다. 자라나는 차세대 학생들의 장래 희망 순위 상위권에 인플루언서가 있고 드라마의 소재로도 사용되고 있으니 이미 우리는 좋든 싫든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계에도 여러 가지 홍보 마케팅 방법이 존재하는데 그중 하나가 ‘000작곡가 탄생 및 서거 000주년 음악회’다. 특히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작곡가의 경우 대대적으로 홍보에 열을 올리고 평소보다 더 많은 공연, 더 큰 규모의 공연이 올라가면서 뉴스에도 오르내리곤 한다. 2024년 올해는 프랑스 가곡의 거장 가브리엘 포레와 이탈리아 오페라의 황제였던 자코모 푸치니 서거 100주년 기념의 해이다. 대한민국에서는 푸치니를 앞에 등장시킨 공연들이 어마어마하게 올라가고 있다. 한편으로 이렇게 많은 공연을 움직이는 자본과 관객들을 어떻게 음악회장으로 유인하는지도 궁금하다. 과연 수지타산은 맞을 것인가? 아니면 한편으로 누군가 큰 후원이 있는 것인지도 궁금해진다.
봉건주의 사회에서는 절대적 부를 독점했던 귀족 계급의 후원 아래 뛰어나 예술가들이 궁전 전속 음악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활동했지만, 시민사회로 발전하면서 주요 후원자를 잃은 음악가들과 기획자들은 대중으로 눈을 돌려야만 했다. 그래서 박리다매의 방법을 선택했고 극장은 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점차 많은 관객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사이즈로 몸집을 늘려갔다. 극장들은 기존 귀족 가문들이나 평민계급 출신의 신흥 부호층들의 사업 다양화를 위한 좋은 투자처가 되었고 점차 대형화되었다. 생산 단가를 낮추는 방법과 같이 객단가를 낮춰 보다 많은 관객이 한꺼번에 공연을 즐기도록 수지타산을 맞춘 것이었다.
워낙 푸치니 오페라가 인기가 있다 보니 여기저기 전국적으로 오페라가 올라가고 있으며 특히 '투란도트'가 대규모 공연 형식으로 한두 달 간격으로 해외 프로덕션까지 들여오고 있다. 그에 비해 프랑스 가곡의 교과서 같은 포레의 명성에 비해 작곡한 오페라가 두 편뿐이라 확실히 화제성이 덜한 듯하다. 가곡 연주회는 오페라보다는 아무래도 모객에 있어 한계성을 가지고 있기에 많은 오페라 히트작을 보유한 푸치니보다는 대중의 관심에서 거리가 느껴진다.
하지만 포레가 살아있을 당시에 작곡한 첫 번째 오페라는 하프 연주자만 따져봐도 15명이나 참여해 총 800명의 연주자와 10,000명의 관객이 함께한 오페라가 있었다. 그리스 신화 속 올림포스 신들과 경쟁 관계인 타이탄족으로 인간을 창조하고 인류에게 불을 전해준 프로메테우스(Prométhée, 1900년 8월 27일 초연)를 타이틀로 한 작품이다.
2012년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일리언’ 영화를 보면 영화상 인간에게 자신의 유전자를 지구에 전달한 창조자 외계인을 찾아 떠나는 우주여행에 관한 이야기의 제목이 ‘프로메테우스’였다는 기억을 떠올려 신화의 이야기를 이해하면서 보면 상당히 흥미롭게 볼 수 있다.
오페라 ‘프로메테우스’는 당시 프랑스 음악계에서 포레의 영향력과 인기를 엿볼 수 있는 대규모 공연기획이었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이후 공연이 거의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오페라 배역을 보면 제일 중요한 주연 3인방, 프로메테우스, 판도라, 에르메스 모두 유명 배우들이 담당해 대사로 이야기를 전달했고 성악가들이 조역을 맡는 형식으로 공연되었다. 투입된 800명에 달하는 연주자들의 출연료만 생각해도 다시 올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로 공연을 거의 못 하다가 수정을 거쳐 7년 후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공연을 올렸지만 역시 큰 인기를 얻지 못한 비운의 작품이다.
당시 55세 포레에게는 뼈아픈 기억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무너지지 않았던 포레는 이전부터 준비 중이던 ‘페넬로페’(1913년, 몬테카를로 극장)라는 오페라를 무대에 올린다. 페넬로페는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섬나라 이타카의 오디세우스의 부인이다. 오디세우스는 폼페이 전쟁에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끌려가게 되는데, 그는 아킬레우스와 함께 쌍두마차로 전쟁을 이끌어 간 명장이었으며 아킬레우스 사후에 트로이의 목마 작전을 진행해 전쟁을 끝내는 역할을 한다는 반전 결말의 주인공이다. 아무리 전쟁의 영웅이라는 타이틀도 좋지만, 고국의 가족들과는 20년간 연락 두절 상태가 되고 자신의 왕국에서는 이미 실종자로 처리되어 버린다.
그 긴 20년이라는 긴 기간을 수절하며 살았던 부인 페넬로페 왕비가 오페라의 타이틀 역할이다. 워낙 미인이었기에 주위에서 오디세우스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고 강제적 결혼을 진행하려 해도 그 시도를 슬기롭게 방어하고 지냈지만,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결혼의 상황 속에 마침내 살아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그동안의 정치적 공백을 한 번에 채워야 했기에 아내의 결혼을 위한 시험대에 서게 되어, 신분을 숨기고 도전한 자리에서 정적들을 모두 물리치고 권력을 다시 쟁취하는 줄거리다.
야심 찬 모나코의 몬테카를로에서의 공연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두 달 후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는 다행히도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며칠 후 샹젤리제 극장이 파산하면서 더 이상 공연을 올리지 못하게 된 불운의 작품이 되었다. 오페라의 원전은 호메로스가 쓴 오디세이 스토리다. 이미 르네상스 시대 본격 오페라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이탈리아 작곡가 몬테베르디가 ‘율리시스의 귀환’(Il ritorno d'Ulisse in patria, 1640년 2월 베네치아 초연)을 작곡했고 현재 포레의 작품보다 더 자주 연주되고 있다. 같은 주제로 한 재탕의 경우 뛰어난 작품성이 요구되는데 포레의 작품은 올해 2024년 5월 그리스 아테네 극장에서 한번 오페라로 올린 기록이 전부고 내년 2025년에도 뮌헨극장에서 한번 올라가는 일정 하나만 보이니 접하기가 매우 어려운 오페라 레퍼토리가 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당연히 단 한 번도 공연된 적이 없는데 이탈리아 출신 푸치니의 공연에 비해 너무나 적은 공연 수를 보고 있자니 프랑스 문화원이나 대사관에서 신경 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대대적으로 작곡가의 업적을 기리는 마케팅은 일반 클래식 애호가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좀 더 세련되고 젊은 층에도 어필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마케팅 방법도 개발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물론 경제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허들을 넘는 것이 제일 어렵지만 말이다.
글 | 신금호
'오페라로 사치하라' 저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www.mcultur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