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io silla
lucio silla

 

[아츠앤컬쳐] 마블 어벤져스 시리즈 영화의 종결은 우주 생물의 절반을 한번 손가락 스냅으로 사라지게 만드는 빌런 타노스의 거대한 힘을 막아내고자 목숨을 걸고 시간여행을 감행하면서까지 이미 한번 망해버린 세상을 다시 구하려는 어벤져스 멤버들의 활약을 그린 영화다. 어마어마한 액션과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내용으로 영화에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나오는데, ‘한정된 자원 때문에 모두가 멸망하기 전에 우주의 절반만 살려두자’라고 생각하는 타노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왠지 묘하게 설득된다. 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생명체를 누구의 판단으로 한순간 저세상으로 보낼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원래 이런 오락성 영화에는 절대 악과 절대 선이 서로 대립해야 하는데 세상은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누기가 쉽지 않다.

tan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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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로마나라고 불리던 시절에도 내부적으로는 어마어마한 내부 갈등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인간은 시대가 다르고 환경이 달라도 폭력적 DNA는 동일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결국 독재자가 나타나 상황 정리 들어가고 피바람이 한번 몰아치고 나서야 조용해지는 그런 경우 말이다. 독재자는 역사의 페이지에 영원히 악명 높은 그들의 이름을 남기는데.

인구가 늘어나고 도시국가가 생기면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양의 민주주의가 시작되고 그리스에서는 각 계층을 대변하는 대표들이 모여 토론하고 법을 만들어 서로의 생각을 절충해 나갔다. 시간이 지나 로마에서는 원로원, 집정관, 호민관 등 여러 계층을 대변하는 직책들이 있었다.

물론 계속 필요에 따라 다른 이름들이 붙여지는데 독재자를 견제한 공화정임에도 전시라든가 위기 상황에서 유독 권력이 집중되는 자리의 이름들은 계속 바뀌다가 결국 로마도 황제라는 절대 권력이 생기게 된다. 황제가 나타나기 전에 권력다툼 속에서 여러 번 피를 튀기는 내전까지 발생했는데 강력한 권력은 반대파의 숙청으로 이루어지곤 했다.

그중 군사력으로 로마를 지배한 ‘코르넬리우스 술라’라는 이름의 장군이 대표적 인물이다. 그가 출정간 사이 로마의 정치 상황이 변하면서 돌아올 수 없게 되었을 뿐 아니라 술라의 군대를 토벌하러 보내온 본국의 군대를 무찌르면서 결국 로마 도시 내 군대는 주둔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깡그리 무시하고 자신의 조국 로마로 쳐들어온 인물이다.

한국인들에게는 약간 낯선 이름인데 그가 숙청하려다 살려준 인물이 그 유명한 율리우스 시저다. 출정 갔던 술라를 로마로 돌아오지 못하게 했던 정적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조카사위라는 위치에 있었지만 술라는 시저에게 이혼하면 살려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하지만, 시저가 거부하여 바로 숙청 대상에 포함되었는데 원로원뿐 아니라 여러 인맥을 동원한 구명 요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를 숙청 대상에서 제외해 준다.

그때 술라는 귀족들을 대변하는 원로원 멤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 좋을 대로 그 친구를 데려가시오. 다만 당신들이 그리도 살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언젠가는 당신들이 나와 함께 지켜온 귀족층의 대의에 치명타를 날릴 거라는 점만 알아두시오. 이 시저라는 친구 안에는 마리우스가 여럿 들어 있으니까.” 이 말은 현실이 되었고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된 그를 두려워한 원로원에 의해 시저는 살해되었다.

원로원 구성원 몇몇은 너무나 불안해 술라에게 찾아가 누구를 살려둘 것인지 알려달라고 했으나 그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는 대답을 듣고는 처형할 인물들의 리스트라도 달라고 했다. 그 데스노트 리스트는 처음 80명에 불과했으나 결국 500명을 넘어서자 현상금 공개수배를 통해 수배자들의 재산 일부를 나누어 주면서 미국 서부시대 영화처럼 현상금 사냥꾼들을 통해서 공권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정적들을 처리해 버렸다.

이렇게 피바람이 지나가고 딕테이터(독재관, 현재도 Dictator는 독재자라는 뜻으로 쓰임) 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오랜 기간 독재하던 그는 돌연 여든 살에 독재관을 벗어 던져 버리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 알코올성 질환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에게 충성했던 이들과 그를 치를 떨며 증오했던 사람들이 그의 장례 국장 절차를 두고도 말이 많아 다시 내전이 벌어질 뻔했고 결국 국장으로 마무리되었다.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동지에게는 술라보다 더 좋은 일을 한 사람이 없고, 적에게는 술라보다 더 나쁜 일을 한 사람도 없다.’ 묘비에 쓰여 있는 내용만 보더라도 공과가 분명한 인물이었다는 게 짐작이 간다.

이렇게 역사에 지독한 독재자로 알려진 술라를 가지고 우리의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가 16세에 그의 8번째 오페라인 ‘Lucio Silla’(1772년 12월 26일, Teatro Regio Ducale, Milano)를 작곡했다. 대박 흥행은 아니었으나 오페라의 고장 이탈리아 밀라노에서의 초연은 중간 정도 성공이었다고 한다.

당시엔 악인으로 시작해 마지막은 회심 후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독재자의 모습을 통해 관객들을 감동하게 하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명암법) 기법이 있을 정도로 당시 독재자들을 그린 오페라가 꽤 있었다. 모차르트 이전에 헨델의 작품 중 유럽을 침공한 티무르왕을 소재로 ‘타메를라노(Tamerlano)’를, 영화 300에서 체인을 감고 그리스 정벌에 나선 페르시아의 왕을 소재로 ‘크세르크세스(Xerxes)’, 로마 권력의 상징이었던 ‘율리우스 시저(Julius Caesar)’가 있는데 유럽을 공포로 덜덜 떨게 했던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결론은 많은 사람이 원하는 해피엔딩이다.

현재 혼탁한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을 보면 서로를 미워하는 마음이 도를 지나쳐 혐오에 가깝다. 역사 공부를 많이 한 건지, 소설을 많이 읽은 건지 아니면 두려워서인지,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오페라적 상황이지만 또한 오페라처럼 해피엔딩을 기도해 본다.

 

글 | 신금호
'오페라로 사치하라' 저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www.mcultur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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